블루라군 온천
10년 전.
"엄마, 거기는 날씨가 진짜 이상하더라. 버스에 타 있는데 한쪽만 비가 오고 다른 한쪽은 맑다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건 좀 너무 과장하는 거 아니야?"
10년 후.
레이캬비크 공항에 도착해 우리는 블루라군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5분 후 그쳤다. 그리고 다시 5분이 지나, 버스 왼쪽 창문에 빗발이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른쪽은 이미 빗물이 다 마른 상태로 깨끗했다.
"아, 이 얘기였구나?"
엄마는 바로 인정하실 수밖에 없었다. 10년 만에 오해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아이슬란드 날씨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5분만 기다리라'는 말이 있다. 버스 안에서 두 가지 날씨를 동시에 목격하기도 하고, 마른하늘을 바라보다 갑자기 우박을 맞기도 하고, 비가 그쳐 무지개를 즐기다가도 곧장 소나기를 맞는 곳이다. (다 이번 여행에서 겪은 일들이다) 하지만 너무나 변화무쌍해서, 5분만 기다리면 대개 날씨는 조금 바뀐다. 물론, 좋은 날씨도 5분 후면 사라지기 마련이지만.
어쨌든 아이슬란드는 대단히 아이슬란드다운 방식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공항에서 블루라군까지는 버스로 고작 20분 거리였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아주 멋지게 룰렛 같은 날씨 풍경을 보여주었다. 다행히 우리가 내릴 때쯤에는 비가 그치고 구름 사이로 햇빛이 등장하는 날씨가 나설 차례가 되었다.
블루라군은 레이캬비크 시내에서는 40분 정도 소요되지만, 공항에서는 20분이면 갈 수 있어 입출국 일정에 맞추어 들르는 사람들이 많다. 10년 전에는 마지막날 들렀는데, 이번에는 맨 처음으로 간 곳이 되었다. 버스에서 내려 큰 캐리어는 보관소에 맡겨두고, 물과 화산석 사이 길을 걸어 온천으로 향했다.
가장 저렴한 옵션, 저렴한 시간대에 예약했음에도 1인 10만 원이 훌쩍 넘는 가격. 요즘은 블루라군 외에도 다양한 온천들이 유명해져서, 이곳 대신 다른 곳들을 찾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비용도 절약하면서 인파도 피하기 위한 선택이다. (우리도 일정 후반부에는 다른 온천에도 가보았는데 그곳도 참 좋았다)
하지만 블루라군은 그럼에도 여전히, 아이슬란드 하면 빠질 수 없는 명소다. 밀키스 색처럼 푸르스름한 우윳빛의 물이, 곳곳의 검은 용암 바위들과 진한 대비를 이루는 곳. 생각보다 거대해서, 2시간 동안 머물러도 지겹지 않은 큼직한 공간.
탈의실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뒤 밖으로 나왔을 때는 뼛속까지 얼어붙는 듯했지만, 뜨거운 물속으로 몸을 서서히 담글수록 노곤한 행복감이 밀려왔다. 찬 공기와 뜨거운 물이 맞닿은 곳에는 계속해서 모락모락 김이 올라왔고, 서로 닮은 하늘빛과 물빛이 그 경계를 모호하게 했다. 뚜렷한 형체가 없는 포근함이 온몸을 감싸주었다. 은은하게 밀려오는 유황 냄새도 싫지 않았다.
"진짜 좋다!"
"피로가 다 풀리는 것 같아."
분명 이전에도 왔던 곳인데, 그때보다 인파가 덜했던 것인지 이번에는 더 넓게 느껴졌다. 이용권에 포함된 무료 음료를 하나씩 받아 시원하게 마시면서 뜨거운 온천을 즐겼다. 차가움과 뜨거움은 역시 함께 섞일 때 가장 포근해지는 것 같다. 잔잔하게 파동이 이는 보드랍고 탁한 물을 가르며,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역시 이용권에 포함된 실리카 머드 마스크팩도 얼굴에 발랐다. 머드팩은 사실 이용 횟수 제한은 따로 없지만, 너무 과하게 바르는 건 피부에 좋지 않다고 한다. 그래도 가능하면 한 번은 더 발라야지 싶기도 했지만, 바르자마자부터 자꾸만 눈으로 흘러들어와 따가워져 그런 생각은 사라졌다. 우리도 안내받은 대로 딱 15분만 참고 재빨리 깨끗한 물로 세수했다.
온천물이 지하 2000m 지점에서 퍼올려져 이곳으로 흘러들어오는 지점들은 유난히 더 뜨거웠는데, 한국 온천의 온탕에 익숙한 우리들은 자꾸만 그런 곳들을 찾아가게 되었다. 따뜻하다가 뜨끈해질 때, 한 번씩 온천이 더 세게 끌어안는 듯한 느낌이 들어 좋았다.
그렇게 한 번 달궈지고 나면, 온몸을 바깥공기에 맡길 용기가 아주 잠깐 생겼다. 그럴 때면 물 밖으로 나가 습한 증기가 가득한 스팀룸이나, 건식 사우나에도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아쉬움 없이 구석구석을 모두 탐방하는 것이 이날의 작은 목표이기도 했으니.
온천을 하는 동안에도 비가 오다가 맑아졌다가 또 오기를 반복했고, 구름의 색과 모양은 수시로 계속 바뀌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어차피 물속, 우리는 수영복차림이었으니. 차가운 빗방울이 떨어져도 곧 뜨거운 온천물의 열기에 따스해져, 온천하는 시간을 더 다이내믹하게 만들어주었을 뿐이다.
"피로 다 풀렸으니, 시내 가서 구경 좀 하고 저녁에 오로라 투어도 해볼까?"
"그러자!"
없던 피로도 녹여내는 블루라군 온천물 안에서, 자신 있게 이날 오후부터 밤까지의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물속에 있으면 왠지 몸이 뜰 것만 같은 기분. 그곳에서의 노곤한 편안함에, 현실적인 신체 상태를 다소 착각했다. 20시간 비행기를 타고 와서 아직 시차 적응이 덜 된 몸이라는 걸 잠시 망각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