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층 한층 올리는 내 이야기
이야기를 뜻하는 story는 건물의 층수를 표기할 때도 쓰인다. 2층, 3층 등 특정 층을 말할 때는 보통 floor를 쓰지만, 'three-story building'(3층짜리 건물)과 같이 통칭을 할 때는 story가 널리 쓰이곤 한다.
영국에서는 건물에 대해서는 storey로 표기한다고도 하지만, story나 storey나 그 어원은 같다. 중세시대의 story란 역사적 이야기나 성경 속 이야기들을 건물의 스테인드글라스나 외벽 등에 그려 넣은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실과 종교적 교훈에 한정되었던 과거의 이야기들은, 점차 창의적인 이야기들로 확장되었다.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들,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혹은 없는 상상, 아직은 이른 공상과학이나 터무니없어 보이는 판타지까지.
이야기는 쓰는 것이기도 하고, 그리는 것이기도 하고, 짓는 것이기도 하다. 어쩌면 건물을 짓는 것과도 비슷하다. 구조를 설계한 뒤, 하루하루가 벽돌처럼 쌓이면, 차곡차곡 요소들을 채워 넣는다. 틈이 없는지 세세하게 살펴보고, 그 안에 또 이것저것 가구와 소품을 가져다 둔다. 매일 그렇게 층마다, 방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된다.
물론 건물을 짓는 일이 늘 즐겁지만은 않다. 때로는 강풍에 창문이 깨지기도 하고, 폭우에 물난리가 날 수도 있다. 공들여 쌓아 올린 벽에 균열이 생겨 보수를 해야 할 때도 있고, 아예 기반부터 잘못 지어져 무너뜨리고 새로 지어야 할 때도 있다. 삶의 많은 것들이,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을 수 있다.
그렇게 좌절감을 느낄 때면, 때로 "That's the story of my life(내 인생이 늘 그렇지 뭐)"라며 비관하고 자조하게 된다. 역시 나는 일이 안 풀린다고,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더니 또 이렇게 되어버렸다고.
하지만 우리의 이야기가 건물과 딱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그건 결코 완성점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 이야기는 언제나 만들어지는 중이기에, 언제든지 과감하게 방향을 틀어도 되고, 새로운 목적을 가져도 된다. 처음의 설계도를 고집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어떤 모습의 몇 층짜리 건물이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다.
누군가는 아직 저층에 머물러있다는 생각에 조급하고, 누군가는 고층을 지어놓고도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를 이루는 모든 층은 저마다의 의미로 내 안에 계속해서 존재할 것이며, 그 층이 있기에 그 위로 또 하나의 새로운 층들이 켜켜이 쌓일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내일의 모습이 더 중요하다. 이미 그려져 있는 이야기를 보며 '이게 내 이야기'라고 단정 짓는 대신, 앞으로 그려질 이야기들을 준비하는 정성스러운 마음가짐. 지금 층이 끝이 아니라, 다음 층, 그다음 층이 계속해서 있을 것이기에. 거기에 좀 더 집중하고 싶다.
관련 예문들
What's his story? 저 사람의 사연이 뭐야? (저 사람 대체 정체가 뭐야?)
That's the story of my life. 내 인생이/내 팔자가 늘 그렇지 뭐.
It’s a whole different story. 그건 완전히 다른 문제야.
Long story short, I lost everything. 요약하자면, 난 모든 걸 잃었어.
End of story! 여기까지! (더 이상 뭐라 덧붙이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