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ng

모든 걸 말하지만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by 바다의별

오래전 영화 중에 대사의 반 이상을 '거시기'라고만 하는 캐릭터가 있었다. 그 한 마디만으로도 대화가 가능한 것이 영화의 웃음 포인트였다. '거시기'는 놀랍게도 표준어다. 이제는 잘 쓰지 않지만.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생각나지 않는 단어나 한 마디로 콕 집어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을 '이거', '그거', '저거'라고 표현하곤 한다. '그거 있잖아, 그거' 혹은 '저기야, 그걸 잘 좀 이렇게 해봐'. 모든 걸 말하면서도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지시어들을 이용해 대충 얼버무리거나 덮어버리지만, 희한하게도 대화가 된다.


영어에도 비슷한 말이 있다. 바로 thing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물건, 사물 등이라고 그 뜻이 열거되곤 하지만, 그건 고작 새발의 피일뿐이다.


How are things? (요즘 어때?)

It’s not my thing. (내 취향은 아니야.)

They have a thing going on. (쟤네 둘 썸 타.)

Is this still a thing? (이거 아직도 유행이야?)

Poor thing! (가여운 것!)

Pens, pencils, notepads... things like that. (펜, 연필, 메모장... 뭐 그런 것들.)


위의 예문 중 그 어떤 것에서도 thing은 물리적인 '물건'을 의미하지 않으며, 예문마다 각기 다른 걸 뜻한다. thing의 의미에는 한계가 없다.

우선 일반적인 것들 또는 여러 가지를 뭉뚱그려서 구체적인 명명 없이 'thing'으로 퉁 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How are things lately?'는 '요즘 하는 일들 잘 돌아가니?' 정도의 안부 인사이고, 'Things like that'이라고 하면 '그런 것들', '기타 등등'의 의미가 된다.

한 단어로 정의하기 어려운 게 있을 때 갖다 붙이기도 참 좋은 말이다. '사랑하는 사이'라고 이름 붙이기는 한참 이르고, '데이트를 한다'라고 말하기도 아직 낯간지럽고, 그렇다고 둘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닐 때. 뒤에서 소곤소곤 '저 둘 사이에 뭐 있지?'라고 말하면 누구나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일만할 때, 그냥 둘 사이에 'thing'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유행이나 취향처럼, 일시적으로 지나갈 수 있거나 너무 개인적이어서 보편적이지 않은 일들도 'thing'으로 통칭된다. 나의 thing (my thing)이라고 하면 내가 좋아하고 추구하는 것들, 혹은 나의 습관이나 성향까지도 뜻할 수 있으며, 세상의 thing은 지금 세상에서 인기 있는 것들, 유행하는 것들을 의미한다. 굳이 따지려 들면 구체적으로 구구절절 보태야 할 것들도, 그저 thing이라는 말 하나로 가볍게 넘어갈 수 있다.

또한 대단한 이유 없이 그저 단어가 생각나지 않을 때도, 그냥 당당하게 thing이라고 하면 문맥상 혹은 상황상, 상대방이 적당히 알아듣는다.

영화 속에서 '거시기'만으로도 대화가 이어졌듯, thing 역시 그만한 마법의 대화를 이끌 수 있다. 원어민들도 모든 단어가 모든 순간에 생각나지 않기에, 급할 때는 thing 만 한 것이 없다.

You know... that thing? (그거 알지?)

Give me that... that thing! (저거 좀 줘!)

정확한 낱말을 모른다고 겁먹지 말고, 지금 상황에서 어떤 표현을 쓰는 게 맞을지 애써 고민하지 말고, 그냥 냅다 갖다 써도 대충은 말이 통할 것이다. 대화에는 언제나 눈치가 수반되기 마련이니까. 누가 아는가? 일단 던져본 그 한 마디가 길고 긴 대화의 시작이 될지. You never know how things will turn out! (일이 어떻게 풀릴지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니까!)



다양한 예문들

There are so many things going on.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어.)

Coffee is not really my thing. 커피는 내 취향이 아니야. (잘 안 마셔.)

Starting things and leaving others to finish them up is kind of his thing. 일만 벌여놓고 다른 사람들이 뒷수습하도록 하는 게 걔 주특기야.

Apparently, 'Dubai chewy cookie' is no longer a thing. 듣자 하니, '두바이 쫀득 쿠키'는 이제 유행이 끝났다더라.

Does she have a thing for him? - No, not anymore. 걔 그 남자한테 마음 있어? - 아니, 더 이상 안 그래.

Things are looking up. 상황이 나아지고 있어. (일이 잘 풀리고 있어.)

It’s just one of those things. 살다 보면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 뭐.

The thing is, I don't have any money. 문제는 (사실은), 내가 돈이 하나도 없다는 거야.

서울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