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포에서 폭포로, 그리고 다시

셀야란드포스, 글리우프라뷔이, 그리고

by 바다의별

"어푸푸!"


바람 때문에 눈을 뜨지 못했던 어제를 지나, 물 때문에 눈을 뜨지 못하게 된 오늘.


하늘은 구름으로 가득했고 빗줄기는 점점 더 세고 두꺼워졌지만, 이날도 가이드만 믿었다. 가이드의 센스 있는 조율 덕분에 웬만한 곳들은 전날 이미 다 들렀기 때문에, 빙하 투어를 마치고 나서의 오후 일정은 조금 여유로웠다.


레이니스피아라 해변이나 라바필드 같은 곳은 안 그래도 강한 바람에 비까지 내렸으면 정말 괴로웠겠다고, 그리고 스코가포스나 크베르누포스 같은 곳을 흐린 날 갔다면 그 아름다움이 충분히 빛나지 않았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비 오는 날에도 그것만의 거친 매력이 있겠지만, 우리가 본 것에 감사했다.


레이캬비크를 향해 되돌아가는 길, 가장 먼저 들른 곳은 호프스키르캬(Hofskirkja)라는 교회였다. 1884년에 지어진 건물로, 이끼 같은 '잔디 지붕(turf roof)'으로 유명하다. 스칸디나비아 지역 특유의 구조로, 나무나 돌로 뼈대를 잡고 지붕에는 흙과 잔디를 덮은 형태다.



단열 효과가 뛰어나다고 하는데, 장난감 같아 보이기도 해서 건물 자체가 너무 귀여웠다. 마침 비가 내리니 지붕에 물을 주는 것처럼 보여서, '지붕 위 잔디가 자라면, 결국 지붕이 계속 자라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보았다.


다시 거세진 빗발 속을 조금 더 달리다, 화장실 이용 겸 스카프타르스토파(Skaftárstofa) 방문자 센터에 들렀다. 근처의 이끼 표본들, 그리고 화산 소리 등 체험해 볼 수 있는 게 많아서 재미는 곳이었다. 이곳에서는 먼발치에 두 줄기로 내려오는 폭포도 보였다. 자매폭포라는 뜻을 가진 시스트라포스(Systrafoss)인데, 그러고 보니 전날 달리는 차 안에서도 보았던 폭포다.



사진으로 보면 마치 정적인 얼음절별처럼 보이지만, 물살이 거세게 내려왔다. 꽤 먼 거리였는데도 웅장한 물소리가 들렸다. 이틀 동안 다양한 폭포들을 여럿 지나왔지만 이곳 역시 독특한 모양의 매력이 있었다.


이제 전날 들르지 못했던 두 개의 폭포에 가면, 투어 일정은 마무리될 것이었다. 폭포로 시작해 폭포로 끝이 나는 투어. 비가 추적추적 내렸지만 아무 상관없었다. 어차피 우리는 곧 폭포수를 쫄딱 맞을 운명이었으니까. 이왕 맞을 거, 비까지 내려주면 더 멋진 일이었다.


셀야란즈포스(Seljalandsfoss)는 뒤까지 360도 걸어서 들어가 볼 수 있는 곳이라, 걷는 동안 불가피하게 물을 뒤집어쓰게 된다. 그런데 우비를 입고 먼저 내린 곳은 그곳이 아니라 그 옆 글리우프라뷔이(Gljúfrabúi)였다. 이곳은 나 역시 처음 들러보는 곳이었다.



글리우프라뷔이의 별명은 비밀폭포다. 그도 그럴 것이 폭포 소리는 요란하게 들리지만 입구에 가까이 다가가기 전에는 그 앞을 가리는 협곡 지형 때문에 반만 보인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는 길도 제대로 나 있지 않아서, 물이 위협적으로 흘러내려오는 미끄러운 돌길을 징검다리 건너듯 밟고 가야 한다.


그렇게 조심조심 발에 힘을 주며 들어가면, 그제야 동굴 위 하늘에서 쏟아져내리는 힘찬 폭포를 볼 수 있었다. 흐린 날이라 더 무섭고 매섭게 느껴졌다.



우비는 셀야란즈포스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내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게 비인지 폭포수인지 구분할 수가 없을 지경이 되었다. 자꾸만 눈을 공격하는 물살에 눈을 몇 번이나 깜빡이고 손으로 얼굴을 몇 차례 쓸어내리고 나서야 겨우 폭포를 볼 수 있었다. 이미 흠뻑 젖은 채로, 그 험한 길을 다시금 되돌아 나왔다.



예상치 못한 물폭탄을 한 번 맞고, 이제는 다시 한 번 더 강력한 물폭탄을 맞을 시간. 대망의 셀야란즈포스는 비 덕분에 폭포수가 더 불어난 듯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요란한 굉음이 귀를 울렸다. 함께 쓸려가지는 않을지 걱정하며, 아이슬란드 자연의 위엄을 온몸으로 받을 차례였다.


자연밖에는 없었던 글리우프라뷔이와 달리, 이곳은 인기 관광지답게 폭포 주변으로 산책로가 마련되어 있다. 험한 날씨에도 인파가 엄청났다.



정면을 향해 가까이 다가갈수록 눈앞으로 튀어 오르는 폭포수가 우리를 덮쳤다. 폭포는 정면으로도 후면으로도, 동시에 힘차게 튀어올라, 산책로 그 어디서도 물살을 피할 길이 없었다.


"아빠! 나 뒷모습 좀 찍어 줘!"


언제나처럼 내 실루엣을 담고 싶어서, 아빠께 부탁을 하고 (요란한 소리에 소리를 질러야 했지만) 돌아선 뒤, 재빨리 폭포에 가까이 다가갔는데...



나는 금방 다시 정면으로 돌아서서 얼굴을 보였다. 폭포를 바라보고 서 있으니 오래전 예능에서 물폭탄 맞는 게 이런 거였을까 싶을 정도로, 좋은 선택이 아니었던 것이다.


전날은 바람에 전투적으로 맞섰다면, 이날 투어는 물에 전투적으로 맞선 날로 마무리되었다. 폭포는 거리낌 없이 직선으로 세게 내리쳤고, 비까지 합세했으니. 근처에만 가도 빗방울인지 폭포방울인지 모를 것들이 온몸을 강타했다.



이틀 동안 보고 들른 폭포들 중 셀야란즈포스의 규모가 단연 압도적이었다. 두텁고 거친 물줄기가, 지금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웅장하고 눈을 움찔거리게 한다. 역시 피날레를 장식하기에 최고의 장소였다.


그렇게 폭포수를 가득 맞고 나서야, 투어가 끝이 났다. 우비로도 가려지지 않은 머리칼과 바지 곳곳은 폭포수로 물들었는데, 레이캬비크에 도착할 때쯤 되니 다행히 어느 정도 말라있었다. 하늘의 비도 서서히 그쳐갔다.



버스에서 내리며 가이드와 일행들에 작별 인사를 하고, 처음 2박을 묵었던 숙소로 돌아와 맡겨둔 짐을 찾고 새로이 다시 체크인을 하고 나니 7시 반이었다.


피곤했지만, 조금 더 힘을 내어 외식을 하기로 했다. 어차피 다음날은 하루 종일 레이캬비크에서만 있을 테니, 늦잠을 자도 괜찮은 날이었다.


10년 전에도 맛있게 먹었던 곳, 시바론(Seabaron)에 가기로 했다. 한국인들은 발음에 유의해야 하는 곳으로, 친구와도 킥킥 웃었던 기억이 난다. 바닷가 항구 쪽에 위치한 수많은 해산물 맛집 중에서도 오래되고 유명한데, 특히 랍스터 수프와 생선꼬치가 유명하다. 덜 마른 머리카락을 산들거리는 바람에 맡긴 채, 식당으로 향했다.



아이슬란드에서 랍스터라 칭하는 것은 대게 랑구스틴인데, 뭐가 되었든 맛있으니 되었다. 랑구스틴 수프는 기억하는 것보다 짰지만 여전히 뜨끈하고 감칠맛 났고, 꼬치구이는 기억하는 것보다도 더 맛있고 고소했다. 연어, 새우, 그리고 흰살생선인 블루링까지, 모두 숯불향이 났다.



오래전에는 도전정신으로 고래스테이크도 주문했었지만, 이번엔 익숙한 음식들과 시원한 굴 맥주만을 택했다. 뜨끈하고 시원하게, 요란했던 하루를 마무리하기에 최고의 식사였다.


전날 들른 스코가포스와 크베르누포스, 둘째 날 들른 셀야란즈포스 모두 에이야퍄들라이요쿨 빙하에서 흘러내려오는 폭포다. 같은 곳에서 출발했지만 그 크기와 세기와 모양은 모두 다르다.


똑같이 출발한 투어도 결국 그때마다 다른 모양으로 마무리된다. 일단 출발하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 이 여행이 어떻게 될지. 우리는 목적지 하나만 알고 가는 거고, 여행의 완성은 출발 이후에 되는 것이다.


부모님과 맥주잔을 부딪치며, 다사다난했던 1박 2일간의 투어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여행의 미지 속을 지나는 중이었다.


이제는 레이캬비크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될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