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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일정을 세우는 것에 대하여

나의 '첫 번째' 세계일주

by 바다의별

출발일이 다가올수록 설렘보다는 걱정이 더 앞서고 있다. 남미 여행에 대한 조사는 엄마가 거의 도맡아 하고 있고, 나는 다음 행선지인 북미 일정을 아직도 완성시키지 못했다. 최종본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해도 다음날 어느새 나는 또다시 수정하고 있다. 그리고 완벽한 일정이 만들어지지 않는 데에 대한 불만이 생기고 있다.


일정을 세우기가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돈과 시간은 제한적인 반면, 가고 싶은 곳과 하고 싶은 일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가고 싶은 곳들이 명확하다고 생각했음에도 검색을 하다 보면 알지 못했던 매력적인 곳들을 새로이 발견하게 된다.

두 번째 이유는 모든 지역을 가장 이상적인 시기에 방문할 수 없다는 것이다. 3월의 북미는 여전히 겨울이기 때문에 여름처럼 투어나 대중교통 등의 선택권이 없어 나처럼 운전을 못하는 사람에게는 여행하기 좋은 시기가 아니다. 하지만 내가 그 시기에 북미에 가려는 것은 알래스카의 겨울을 느끼기 위이니, 결국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무언가를 위해서는 다른 것을 포기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들로 나는 일정을 짜는 과정에서부터 지치고 있었다. 직장에 다니면서 1년에 고작 일주일의 휴가를 다녀올 수 있는 것이 불만스러워 시원하게 세계일주를 하고 싶다고 한 것이었는데, 막상 세계일주를 준비하면서도 나는 시간이 모자란다고, 일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푸념하고 있었다. 예전에 일주일짜리 휴가를 계획할 때에도 비슷한 마음이었으리라. 마치 다시는 여행을 안 떠날 사람처럼, 그렇게 바쁜 마음으로 초조하게. 결국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였던 거다.


나는 이제 겨우 서른인데,
이번이 마지막 여행인 것처럼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완벽한 여행'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마음에 쏙 드는 완벽한 여행 일정을 짰다 할지라도 그 여행이 완벽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어차피 여행을 떠나면 수많은 변수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 변수들은 때로는 나의 임기응변을 시험하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했던 광경을 보여주기도 하고, 뜻밖의 친구에게로 이끌어주기도 한다. 그동안 수많은 여행을 통해 다양한 변수들을 만났음에도 나는 아직도 '완벽한 여행'을 계획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만약 평생 여행만 하고 산다면 '완벽한 여행'에 가까워질 수 있을까? 쉽게 긍정적으로 대답하지는 못하겠다. 여행이 일상이 된다면 여행으로서의 가치를 조금은 잃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집이 있으니 여행지가 있을 수 있고, 일상이 있으니 여행이 가능한 것이지 않을까.


그러므로 아쉽더라도 여행에는 언제나 끝이 존재해야 한다고 믿는다.


일상이 있어 여행이 빛나는 것일 테니까.


8개월이든 8일이든 여행 후 아쉬움을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사실 아쉬움이 남아야 좋은 여행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아쉬움은 여행을 마무리할 무렵에 온전히 느낄 감정이다. 이제는 더 이상 출발 전부터 아쉬움을 느끼는 여행은 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들뜬 기대감과 막연한 설렘에 좀 더 집중할 것이다. 아쉬우면 언제든 다시 떠나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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