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색 도시

Day 2 - 페루 리마(Lima) 구시가지 & Day 4 - 신시가지

by 바다의별

인천에서 LA를 거쳐 24시간 만에 리마에 도착했다. 일반적으로 2회 이상 경유하면 30시간은 거뜬히 넘는 노선인데, 짧게 걸린 셈이다.


밤 12시 40분에 착륙했는데, 착륙 직전 창문을 올려보니 노란 가로등 불빛들이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호텔까지 가는 길에는 새벽 1시 반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차들이 꽤나 많았다. 공항 근처여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리마를 노란색으로 기억하는 것은 그러한 수많은 가로등 불빛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첫날부터 바쁜 일정이었다. 초반 약 2주간은 한 도시에 하룻밤 묵고 이동하는, 스파르타식 여행이었다. 완전한 자유여행이었다면 절대 이런 일정을 짜지 않았을 텐데, 여행사를 통한 세미배낭여행을 하다 보니 온전히 내 마음대로 계획을 세울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편리함과 안전성이라는 장점을 무시할 수 없으니, 결국 타협의 문제인 것이다.


어쨌든 날 오전에는 리마의 구시가지에 갔다. 많은 도시들이 그렇듯 리마의 신시가지는 비교적 안전한 동네이지만, 구시가지는 다소 위험한 곳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일정상 리마에서 오전 반나절, 오후 반나절을 머물게 되었는데, 구시가지를 낮에, 신시가지를 저녁에 둘러보기로 했다.

DSC00168.JPG 산 마르틴 광장 주변에는 환전소가 많다.

산 마르틴 광장에서 시작해, 아르마스 광장으로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산 마르틴 장군은 아르헨티나 사람인데 남미 해방을 이끈 사람이며 페루에서 정치생활도 했다. 남미 여러 나라에서 영웅으로 추대받는 듯했다.

DSC00186.JPG 리마의 아르마스 광장, 좌측 건물은 리마 대성당(La Catedral de Lima)

산 마르틴 광장에서 아르마스 광장까지는 약 10분 정도 걸었다. 아르마스 광장은 남미 어느 도시를 가도 있는 광장이다. '아르마스(armas)'란 무기류를 뜻하는데, 이는 스페인 침략 당시 이 광장을 전략적 요충지로 사용하며 유사시 무기를 배급하는 등의 용도로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식민지 시대에 탄생한 광장임에도 불구하고 남미의 주요 도시들 대부분은 이 아르마스 광장을 중심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어딜 가나 아르마스 광장은 메인 광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 주변에는 관공서 등 중요한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있다. 수도인 리마의 아르마스 광장 주변에는 대통령궁 또한 위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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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의 경우 아르마스 광장을 중심으로 도시 대부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어 전체 경관을 해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매우 엄격하게 제한을 한다. 그리하여 피자헛, KFC 등 원래는 다양한 색상의 각종 체인점 간판들도 모두 검은색이다. 그뿐 아니라 건물 색도 잘 어울리게 칠해야 하는지 밝은 색의 예쁜 건물들, 특히 개나리빛의 밝은 노란색 건물들이 참 많았다. 특별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리마라는 도시와 상당히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가 밝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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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정면으로 보이는 것이 페루 문학의 집(Casa de la Literatura Peruana) / 우) 페루 문학의 집 내부

산프란시스코 교회로 향하던 중, 대통령궁 옆길 정면에 서 있는 건물이 예뻐서 들어가 보니 페루 문학의 집이었다. 그저 잠시 들어가 본 것이었는데 직원이 너무나 친절하게 맞이해주어 조금 더 머물렀다. 아래층에는 도서관도 있다.

DSC00200.JPG 산 프란시스코 교회 (Basílica y convento de San Francisco)

일반적으로 성당이나 교회를 떠올려보면 모노톤의 건물들이 많은 것 같은데, 여기는 교회까지도 연노랑색을 띠고 있었다. 햇살이 좋아 더욱 밝아 보였다. 산 프란시스코 교회 내부에는 카타콤(catacombs)이 있는데, 40여분의 가이드 투어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시간이 여유롭지 않아서 하지 않기로 했다.

DSC00218.JPG 산토 도밍고 교회

대통령궁을 사이에 두고 산 프란시스코 교회의 반대편에 위치한 산토도밍고 교회는 연분홍색을 띠고 있었다. 마주 보고 있는 건물은 역시나 노란색이었고, 간판 또한 역시나 검은색이었다. 나는 아마 앞으로도 이런 건물을 보면 리마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DSC00226.JPG 매일 11시 45분부터 대통령궁에서 교대식이 있다.

대통령궁의 교대식을 잠시 볼까 하였는데, 너무 더운 탓에 군악대의 연주만을 조금 듣다가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이동하였다. 그래도 습도가 아주 높은 편은 아니라우리나라의 한여름 날씨보다는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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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의 거리들

식당으로 향하는 길, 깔끔하고 예쁜 건물들에 셔터를 계속 누를 수밖에 없었다. 노란색이 대부분이었지만 사실 빨간색, 분홍색, 연두색 등 다양한 색상의 건물들도 볼 수 있었다. 색색의 건물들과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산물인 다양한 문양의 발코니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어쩌면 나는 페루, 그리고 남미에 대해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여행 출발 전 많은 사진들을 보았음에도 막연하게 덜 정돈된 도시를 상상했던 것 같다. 도심을 벗어나면 내가 생각했던 그런 광경들이 펼쳐졌지만 리마의 도심은 한 나라의 수도이기 때문에 기대 이상으로 깔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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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페루 맥주인 쿠스케냐(Cusquena)와 음료 잉카 콜라(Inca Cola) / 수정과 같은 치차 모라다(Chica Morada) 한 잔과 페루 식당에 가면 으레 기본으로 내어주는 말린 바나나와 옥수수 / 대표음식인 해산물 요리 세비체(Ceviche) / 해산물 수프인 빠리우엘라(Parihuela) / 중국식 해산물 볶음밥(Chaufa de Mariscos)>


첫 페루식 식사는 성공적이었다. 세비체는 새콤하면서도 상큼한 해산물 요리였는데 입맛에 아주 잘 맞아서 참 맛있게 먹었고, 시원한 해물 수프였던 빠리우엘라와 익숙한 해산물 볶음밥 역시 생각보다 입맛에 아주 잘 맞았다. 기본 안주처럼 나오는 옥수수는 고소하니 맛있어서 이후 다른 식당에서는 더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사진으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세비체 밑에 깔려 있는 것도 옥수수인데, 역시 원산지라서 그런지 이 동네 옥수수는 엄청 컸다. 쿠스케냐는 이후로도 몇 번 주문해서 마셨는데 흑맥주도 맛있었다. 잉카 콜라는 궁금해서 주문해보기는 했지만 인공적인 맛이 짙어 다시는 주문하지 않았다.

어찌 된 일인지 주문한 음식들까지도 죄다 노란색이었다.



리마의 신시가지인 미라플로레스 지역은 4일 차, 오전에 나스카 구경을 하고 난 오후에 돌아와서 보았다. 평소 5시간 거리라는데 이날은 주말이라 길이 막혀서 7시간이 넘게 걸렸다. 해안가 지역이다 보니 일몰이 멋지다고 하는데, 일몰 시간이 지난 뒤에 도착하고 말았다. 하지만 일찍 도착했어도 보지 못했으리라 위안했다. 연간 강수량이 총 1cm 남짓이라는 리마에 이날 빗방울이 떨어져 무척 흐렸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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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숙소 근처의 센트럴 공원과 케네디 공원을 지나 해안가의 사랑의 공원(Parque del amor)과 해안 절벽 위에 지어진 쇼핑몰 라르꼬마르(Larcomar)에 가보기로 했다. 야자수 나무들 뒤로 살짝 붉게 물든 하늘이 보였다. 하늘이 가장 뜨거울 시간이 지나고, 어두워지기 직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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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길을 잘못 들어서 사랑의 공원이 아닌 옆 다른 공원(Antonio Raimondi Park)으로 갔다. 내가 동네 주민이라면 화려한 사랑의 공원보다는 은은한 이 공원을 더 자주 찾을 것 같다. 평범한 듯 보이지만 이곳 역시 사랑의 공원처럼 절벽 아래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작고 예쁜 공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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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공원은 안토니오 공원 건너편에 있었다. 대표적인 관광지들 중 하나인만큼 화려한 불빛들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사랑의 공원이라는 이름이 먼저인지, 연인의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청년들을 위해 만든 공원답게 관광객들뿐 아니라 현지 젊은 커플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공원을 둘러싼 모자이크 벤치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구엘공원을 연상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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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들도 쇼핑몰 라르꼬마르도 절벽에 위치해 있어 주변 풍경이 멋졌다. 낮에 보면 더 멋있을 것 같은데 늦은 밤이라 절벽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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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라르꼬마르에서 간단한 저녁식사를 하려 했는데, 늦게 먹은 점심이 소화가 덜 되어 배가 고프지 않았다. 엄마와 나는 사랑의 공원에서 마주친 다른 일행과 함께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 먹고, 함께 택시를 타고 분수공원(Parque de la Reserva)으로 향했다. 사실 시간도 그렇고 치안도 살짝 걱정되어 가고 싶으면서도 망설였는데, 마침 일행이 생겼으니 함께 가기로 했다. 택시는 30 솔(약 1만 원)을 달라고 하기에 25 솔로 깎아서 갔는데, 나중에 돌아올 땐 20 솔(약 7천 원)이었다. 아마 25 솔도 비싸게 내고 탄 거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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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공원은 입장하는 줄이 어마어마하게 길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라 당황스러웠다. 여기까지 와서 포기하고 돌아가기도 아쉬운데 어쩌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줄이 비교적 빨리 줄어들었다. 끝도 없어 보였는데 30분도 채 되지 않아 들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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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원은 기네스북에도 등재된 공원이다. 분수 자체의 크기도 크지만 공원 내에 분수 종류가 정말 많았다. 특별히 뛰어난 분수 쇼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색색의 불빛을 받은 분수들이 다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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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이 계속해서 바뀌기도 했고, 살랑살랑 분수의 모양이 움직이기도 했다. 리마의 더운 밤에 분수 곁에 있으니 몸도 마음도 한결 시원해졌다. 긴 여행의 첫 목적지였던 리마에서의 시간을 기분 좋게 마무리할 수 있는 장소였다. 앞으로의 긴 여행, 느낌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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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소한 메모 #

* 여행 첫날은 얼떨떨하다. 시차 적응처럼 시야 적응도 필요한 것 같다.
* PP카드를 두고 왔다는 것을 인천공항에서 깨닫고야 말았다. 환승 엄청 많은데... 액땜했다고 치자.
* ♬ Moby - Dream about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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