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6 - 페루 쿠스코(Cusco) 근교, 잉카 유적지
쿠스코까지 왔다면 이제 마추픽추를 보러 가야 한다. 아니, 페루까지 왔다면 마추픽추를 보러 가야 하는 것일까. 어쨌든 페루 여행의 꽃인 마추픽추에 가기 위해서는 오얀타이탐보(Ollantaytambo)라는 곳에서 기타를 타고 아구아스 칼리엔테스(Aguas Calientes)라는 곳으로 가, 약 30분가량 버스를 타야 한다(걸어가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전에, 마추픽추를 제외하고도 쿠스코 근처에는 볼만한 잉카시대 유적지가 많이 남아있다. 쿠스코 근교의 잉카 유적지들은 쿠스코만큼이나 매력적이었다. 멋진 자연에 그 자연과 잘 어우러지는 인간의 예술품이 얹어져 기대 이상의 풍경들을 볼 수 있었다. 현지인 가이드가 설명해주는 가이드 투어를 했는데, 그 덕에 더욱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날 인솔자가 고산병 증세가 심한 분과 쿠스코에 남아있느라, 얼떨결에 가이드의 영어 설명을 내가 통역했다. 덕분에 점심식사 장소에서는 무료로 가이드 식사도 제공 받고, 나중에 염전에서 일행 한 분으로부터 소금 선물도 받았다. 왜 하필 소금인지는 아래에 나온다.
글에 앞서, 흔히 쉽게 '잉카'를 붙이는데, 잉카는 왕을 가리키는 말이고(제국을 4개 구역으로 나누어 통치했다), 그 민족과 언어는 케추아(Quechua)라고 명하는 것이 맞다고 한다. 그러니 잉카제국, 잉카시대라고는 말해도 될지 몰라도 '잉카인'이라는 건 말이 안 맞는다는 것이다. '잉카인' 대신에 케추아족 또는 케추아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고 한다.
가장 먼저 간 곳은 전날 밤 야경을 보기 위해 예수상으로 가며 지나쳤던 삭사이와망이었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사원이었다고 하는데, 나중에 찾아본 바로는 요새였다는 추측도 있다고 한다. 굉장히 큰 돌들이 층별로 겹겹이 쌓아 올려져 있었다.
이중 가장 큰 돌은 높이가 무려 8m인데, 그중 2m는 땅 속에 파묻혀 있다고 한다. 고대 잉카 시대에는 바퀴가 있었다는 증거가 없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많은 돌들을 이곳까지 가져왔을까. 통나무를 바퀴 대신 밑에 깔고 옮겼으리라는 추측을 할 뿐이다.
한쪽에서는 삭사이와망의 전경을, 다른 쪽에서는 쿠스코 전경을 볼 수 있다. 삭사이와망은 푸른빛으로 탁 트였고 쿠스코 시내는 짙은 장밋빛이 빼곡했다. 상반된 두 풍경이 함께 있는 것 또한 멋졌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켄코(Q'enqo). 켄코는 케추아어로 미로라는 뜻인데,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이 미로 같아서 얻게 된 이름인 것 같다. 미로 같은 길을 따라 들어가 보면, 라마 등을 제물로 바치던 제단이 있다. 밖에는 해시계가 있는데 해가 이곳에 비추어지면 곰 모양 그림자가 나타난다고 한다. 해시계는 조선시대 앙부일구가 훨씬 정교했던 것 같다.
세 번째로 간 곳은 탐보마차이(Tambomachay)였는데, 탐보는 'shelter(주거지, 보호소)', 마차이는 'hidden(숨겨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물 사원인데(목욕탕이라는 추측도 있는데, 직접 가본 바로는 사원이 더 유력한 것 같다) 옆에는 군인들이 망을 보는 곳도 있었다. 물 사원인만큼 물이 졸졸 흘러내리는데, 그 모습이 참 예뻤다. 온라인 정보에 의하면 물이 어디서 나오는지 모른다고 하던데, 가이드 말로는 60km 떨어진 빙하에서 흘러오는 물이라고 했다. 어쨌든 주위에 물이 흐를 만한 곳이 없는 이 고지대까지 물을 끌어왔다는 것만으로 대단한 것 같다.
물이 흘러내리는 벽은 오랜 시간 동안 완성된 것이다. 층마다 지어진 방식이 다른데, 이는 각기 다른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1층과 2층은 작은 돌들을 이용하여 딱 맞게 맞추어 쌓아 올린 것이고, 3층은 돌들 사이에 시멘트 같은 걸 발라서 올린 것이며, 4층은 쿠스코의 12각돌처럼 돌을 깎아서 딱 맞게 만들어 끼워 맞춘 것이다. 잉카 시대의 각 시기별 건축양식을 한눈에 볼 수 있어서 신기했다.
네 번째 들른 곳은 피사크(Pisac) 유적인데 안데스 산맥의 경치가 너무나도 멋져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곳이다. 산 밑의 피사크 마을을 지키기 위한 곳이었다고 하던데, 역시 망을 보는 곳이다 보니 높은 곳에 있어 전망이 좋았다. 아래에는 마을이, 산비탈에는 농경지가, 산 위에는 군인들이, 산 너머에는 사원이 있어 자급자족이 가능했다고 한다. 바람도 적당히 불고, 질리지 않을 것 같은 풍경이었다.
우루밤바(Urubamba) 강을 끼고 있는데, 우루밤바 강은 우루밤바에서 쿠스코, 마추픽추를 거쳐 아마존까지 간다고 한다.
잉카 시대 이전에는 여러 개의 부족들이 있었다. 티티카카 호수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으로 유명한 우로스족은 농업 중심 부족이었는데 비옥한 토지를 찾으러 이곳까지 내려왔다고 한다. 이곳에서 그들은 군임 중심 부족을 새로 만나 합쳐져 가장 강력한 부족이 되었다고 한다.
봐야 할 곳들은 많은데 오얀타이탐보에서 타야 하는 기차 시간 때문에 조금 바쁘게 움직여야 해서 아쉬웠다. 여유롭게 돌아볼 수 있었다면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 봤을 텐데.
차는 더 달려 모라이(Moray)로 갔다. 모라이는 아주 오래된 온실 또는 재배실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빙글빙글 원형으로 아주 밑에서부터 올라오는데, 각 층마다 온도 차이가 많이 난다고 한다. 그래서 층별로 다른 작물을 심기도 하고, 하나의 작물을 서서히 한 층씩 올려가며 심어서 추위에 강해지도록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실험재배소라고도 불린다. 남미에서 먹는 대부분의 작물들이 유전적으로 이곳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중요성에 비해 특별히 볼 건 없지만 가는 길에 꽃이 예쁘게 펴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염전인 살리네라스(Salineras)였다. 건기에 오면 색이 하얘서 더 예뻤을 텐데, 우기라 일을 하지도 않을뿐더러 흙탕물이 섞여있어 아쉬웠다. 그래도 주변 산들과 잘 어울리는 매력적인 색이었다.
가이드는 이 염전이 잉카 시대 훨씬 전부터 있었던, 약 3천 년 된 염전이라고 설명했다. 안데스 산맥이 융기되기 전에는 이 지역이 바다였기 때문에 지하에 소금물이 있다고 한다. 보통 바닷물의 염도는 18~50%인데 이곳은 70%에 이른다고 한다. 몸이 좋은 핑크 소금으로 유명한 곳이다.
스페인어로 소금이 'sal'인데, 스페인 침략 시 잉카인(케추아인)들을 노예처럼 일을 시켜놓고 한 달 뒤에 소금으로 월급을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sal'에서 'salary(월급)'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옛날에는 소금이 화폐 노릇도 했다고 하니 그럴듯한 이야기다. 그래서 나도 소금으로 이날의 팁을 받았다.
살리네라스에서 나오는 길, 어떤 가족이 길 한복판에서 양 떼를 몰고 있어서 버스가 지나갈 수가 없었다. 신기하고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결국 우리를 위해 옆으로 살짝 비켜주었는데, 우리 버스가 지나갈 때 아이들이 환히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주었다.
쿠스코 근교 유적지 투어를 마치고 오얀타이탐보에 도착했다. 기차에 타면 밀린 일기도 쓰고 눈도 좀 붙이려고 했는데, 실상은 내가 타본 기차 중 가장 흔들리는 기차였다. 글씨를 쓸 수도 없고 편히 잠이 들지도 못했다. 그렇게 아구아스 칼리엔테스에 도착해 저녁도 거른 채 잠이 들고, 마추픽추에 가기 위해 다음날 새벽 4시 반에 기상했다. 그리고 이번 남미 여행에서 있었던 가장 큰일이 일어났다.
# 사소한 메모 #
* 역사적 유적지는 가이드 투어를 하는 것이 더 좋은 것 같다. 그들이 보여주는 것들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가장 최소한의 노력.
* 건강이 최고라는 말이 그냥 하는 말 같아도 정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