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7 - 페루 마추픽추(MachuPicchu)
다 벗은 것보다 아슬아슬하게 무언가를 걸치고 있는 것이 더 섹시하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때로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부분을 남겨두어야 하는 법이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배부른 소리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대부분 마추픽추(Machu Picchu)에 가면 오전에는 비가 오거나 안개가 자욱해서 제대로 볼 수가 없고, 흔히 말하는 마추픽추 중심지역이 아닌 근처 선 게이트(Inti Punku)나 와이나 픽추(Huayna Picchu) 등에 다녀온 뒤 낮이 되면 안개가 걷히면서 장관을 볼 수가 있다고 한다. 안개가 서서히 걷히는 모습이 대단히 경이롭다고 들었다. 하지만 우리가 갔을 때는 이른 아침부터 구경을 마칠 때까지 날이 맑았다. 하루 종일 안개가 자욱해서 제대로 보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하던 중이었에 처음에는 기뻤지만, 나중에는 우기임에도 불구하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도리어 아쉬워졌다.
아구아스 칼리엔테스에서 마추픽추로 오르는 첫 버스는 아침 5시 반이다. 첫차 시간에 맞추어 나가니 이미 줄이 꽤 서 있었다. 다행히 버스는 5시 반부터 수시로 다니기 때문에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버스 탑승 전에는 버스표와 마추픽추 입장권을 동시에 확인한다. 구불구불한 길을 약 30분가량 지난 뒤에야 마추픽추 입구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들어가서 조금 걸어 올라가니 마추픽추의 멋진 전경을 볼 수 있었다.
어쩜 이렇게 드리워진 구름 한 점 없이 하늘이 깨끗하게 맑았는지 모르겠다. 마추픽추와 그 뒤에 뾰족하게 올라와 있는 와이나 픽추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마추픽추 시티 주변에는 몇몇의 관광 포인트들이 있는데, 보통 선 게이트와 잉카 브리지 구경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먼저 선 게이트부터 가기로 했다. 가볍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꽤 긴 여정이었다.
왕복 1시간 반이라고 듣고 갔는데, 원래 등산을 잘하는 편도 아닐뿐더러 너무 더워서 지친 나머지 영 진도가 안 나갔다. 2시간은 족히 걸린 것 같다. 그래도 가는 길에 차츰차츰 저 멀리 마추픽추와 와이나 픽추가 보여서 멋졌다. 밑으로는 버스를 타고 올라왔던 구불구불한 길도 보였다.
선 게이트는 원래 하지 때 이곳에 햇빛이 비추어지면 그것이 마추픽추를 반사해서 이름이 선 게이트라고 들었는데, 정확하지는 않다. 사람들이 이곳까지 오는 이유는 대부분 마추픽추와 와이나 픽추의 전경 때문이다.
마추픽추와 와이나 픽추의 전경뿐 아니라, 삐죽삐죽한 안데스 산맥의 모습 또한 멋졌다. 안개가 끼었거나 비가 왔다면 보지 못했을 풍경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 드문 날씨가 무척 감사했다. 바람을 충분히 맞은 뒤, 등지고 올라왔던 풍경을 바라보며 다시 마추픽추 시티로 내려갔다.
마추픽추의 전경을 다시 한번 감상한 후, 이번에는 잉카 브릿지로 향했다. 잉카 브릿지는 왕복 약 30분 정도 걸린다고 했지만, 느긋하게 걸어서 4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가는 길에 갑자기 앞에서 나랑 마주 보며 걸어오던 어떤 남자가 자꾸 나에게 손짓을 했다. 왜 저러나 하고 쳐다보니, 뒤를 돌아보라는 신호 같았다. 그리하여 뒤를 돌아보았는데.
라마 한 마리가 당당하게 서 있었다. 마추픽추 시티에 라마 몇 마리가 풀을 뜯어먹고 있는 것은 얼핏 보았는데, 이렇게 멀리까지 나왔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것도 이렇게 무방비 상태에서 라마에게 등을 보이고 있었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
라마가 놀라지 않게 살금살금 사진 찍은 뒤, 다시 잉카 브릿지로 향했다. 가는 길의 난간이 굉장히 낮고 밑으로는 거의 절벽에 가까웠기 때문에 조금 겁이 났다. 나 같은 새가슴은 와이나 픽추에는 절대 가지 못할 것 같다. 네발로 기어오르고 네발로 기어 내려와야 하는 곳이라고 하니.
잉카 브리지 바로 앞은 단단하게 막아놔서 시야가 막혀 있다. 제대로 보려면 오히려 조금 멀리 떨어져서 보는 것이 더 낫다. 중간 부분을 나무로 연결해놓은 것은 적들이 올 경우를 대비한 것으로 보였다. 낭떠러지 길의 모습이 아찔해 보였다.
주변 관광지를 모두 보았으니 이제 느긋하게 마추픽추 시티를 구경할 시간. 잉카 브릿지에서 마추픽추로 되돌아가는 길, 멋진 경치가 보이는 곳에 사람이 많지 않아서 엄마와 둘이서 손가락 하트를 하고 뒷모습 사진을 남겨보았다.
전날 쿠스코 근교의 유적지들을 돌아봤을 때처럼 가이드 투어를 했다면 더욱 재미있게 봤을 것 같다. 이 산속에 이런 풍경이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멋있고 감동적이었지만, 뒷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다면 더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사실 마추픽추 입구에는 언어별로 가이드들이 서 있다. 하지만 여러 가지로 귀찮을 것 같아서 우리는 그냥 우리 마음대로 구경했다.
이렇게 높은 산 위에 마을이 있다. 집들도 있고, 사원도 있고, 경작지도 있다. 15세기에 지어진 마을이 지금까지 거의 완벽한 모습으로 남아있다는 것이 경이로웠다. 얼마나 단단하고 정교하게 지어졌으면, 얼마나 깊숙이 숨어있었으면.
그들은 왜 이곳까지 올라왔으며, 이 많은 돌들은 어디서 구해서 어떻게 쌓아 올린 것일까. 뒤로 함께 보이는 와이나 픽추와 그 뒤로 쭉 이어진 안데스 산맥, 그리고 맑은 날씨를 아쉬워하는 마음을 읽었는지 내려갈 때가 되어서야 살짝 드리워진 구름이 신비로운 감동을 더해주었다.
내려올 때도 다시 버스를 타야 했는데, 마추픽추에서 5시간을 걸어 많이 피곤했는지 엄마도 나도 깊이 잠들어버렸다. 모르는 사람이 깨워주어 겨우 일어났다.
늦은 점심식사 후 아구아스 칼리엔테스에서 다시 기차를 타고 오얀타이탐보로 돌아갔다. 전날은 어두워서 몰랐는데, 기차에는 이렇게 위로 창이 나 있어 산맥을 계속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기차는 비행기처럼 음료와 간식을 나누어주었다.
오얀타이탐보에서는 버스를 타고 다시 쿠스코로 이동했다. 다음날 일정은 원래 푸노로 이동해 티티카카 호수와 우로스 섬을 볼 예정이었으나, 변동이 생겼다.
# 사소한 메모 #
* '날씨가 좋다'는 말이 반드시 '날씨가 맑다'는 말과 상통하지는 않는가 보다.
* 사진으로 지겹도록 봤어도 실제로 보는 것은 또 다른 경험이다. 사진으로는 바람을 느끼지도, 냄새를 맡지도, 바닥을 밟아보지도 못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