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

Day 8 - 페루 쿠스코(Cusco)

by 바다의별

남미 여행 내내 엄마가 하시던 말씀이 있다.

"나는 내가 남미 여행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


텔레비전과 사진들을 통해 남미의 모습들을 보면서도 참 멋지다고만 생각했지, 당신이 갈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다고 하셨다. 실제로 내가 같이 가자고 했을 때에도 엄마는 5주라는 긴 기간만큼이나 남미라는 여행지에 대해 부담스러워하셨다. 늘 입버릇처럼 세계일주를 하고 싶다 말하던 딸이 갑자기 정말로 퇴사를 하겠다고 하고, 다짜고짜 남미에 함께 가자고 하니, 당황스러우실 수밖에. 딸과 남편의 꾸준한 설득 끝에 얼떨결에 떠나기로 결정하긴 하셨지만, 이 낯선 곳에 대해 엄마는 설렘보다는 두려움과 걱정이 훨씬 더 앞섰을 것이다.


그래서 엄마가 아픈 것이 나는 더욱 가슴이 아프고 미안했다.


쿠스코에서부터 엄마의 입술이 부르트기 시작했었다. 종종 피곤하시면 그래 왔기 때문에 잠을 푹 자면 괜찮을 거라고, 약 좀 바르면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추픽추에 올라가야 하던 날, 새벽에 눈 떠 보니 입술만 부르텄던 것이 얼굴 전체에 번져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그러나 그날은 마추픽추에 가는 날이었고, 아구아스 칼리엔테스라는 작은 마을의 병원 또는 약국에 갈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때도 여전히 피곤해서 생긴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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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오후가 되었고, 피부는 여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아무리 피곤하다 해도 이 정도로 번진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쿠스코로 돌아가 의사를 만나기로 했다. 인솔 가이드의 도움으로 피부과를 찾았다. 의사는 알레르기성 반응이라고 했다. 먹은 과일이나 고기, 접촉했던 식물, 벌레 등 모든 것이 그 원인일 수 있다고 했다. 평소 한국에 있을 때는 별다른 알레르기 증상이 있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추측이 불가능했다.


일정상 다음날 버스를 타고 푸노에 갔다가 볼리비아에 갈 예정이라고 했더니 의사는 푸노는 시골 마을이라 마땅한 병원도 없고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은 지금 이 상태로는 갈 수가 없다고 완고하게 말했다. 나는 푸노와 우유니는 안 봐도 좋으니 엄마와 함께 남미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방받은 약을 먹으면 나아질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다음날 아침에 보니 더 심해져 있었다. 엄마는 자꾸 푸노에 갈 수 있다고 하셨지만 나는 안 된다고 했다. 엄마는 당신이 갈 상태가 아닌 것을 아시면서도 내 여행에 방해가 될까 봐 우기셨을 것이다. 여행 내내 엄마가 자주 말씀하시던 또 한 가지는, "네 여행이니 네 마음대로 해." 였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나는 항상 짜증을 냈다. 이게 왜 나만의 여행이냐고. 그래서 나는 더 속상했다.


쿠스코는 아주 작은 도시라서 병원 시설이 아주 좋은 편은 아니다. 그래서 바로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로 가려고 했더니 그 날 직항은 이미 예매가 끝나 있었다(그래도 작은 도시보다는 한 나라의 수도가 시설들이 여러모로 낫다). 어쩔 수 없이 전날 갔던 병원보다 조금 더 큰 병원으로 가보았는데, 다행히 전날 갔던 병원에서보다는 덜 심각하게 얘기해서 조금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병원에서 하룻밤 지내며 수액을 맞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리하여 나는 호텔로 가서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찾아오기로 했다.

병원에서 통역관 및 보호자 역할을 하다 호텔로 돌아오니 긴장이 풀렸다. 눈물이 쏟아졌다. 스스로도 나 자신이 그렇게까지 긴장하고 걱정하고 있었는지 몰랐다. 심각하게 안 좋을까 봐 무서웠던 마음과, 괜히 남미 오자고 했나 미안했던 마음이 뒤섞여 속상함에 한동안을 울었다.


마음을 추스르고, 호텔 로비에 짐을 맡겨놓고 점심식사를 하러 나갔다. 엄마는 병원에서 식사가 나오니 나는 따로 해결해야 했다. 저녁 시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병원에는 간병인 식사도 함께 주었다. 그래서 저녁은 병원에서 함께 먹었다. 미리 알았더라면 따로 점심 먹지 않았을 텐데.

내가 페루에서 먹고 싶었던 음식들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중 마지막 날까지 먹지 못했던 음식들이 바로 꾸이(기니피그)와 알파카였다. 엄마는 그게 마음에 걸렸는지 자꾸 먹고 들어오라고 하셨다. 엄마가 병원에 있는데 음식이 편히 넘어갈 리가 만무하지만, 알파카라도 먹지 않으면 엄마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 것 같아서 아르마스 광장 근처 식당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고급 식당이었는지라 페루 화폐를 공항 갈 택시비만 남겨놓고 깔끔하게 다 쓸 수 있었다. 알파카는 특유의 냄새가 있었지만 부드러워서 맛있었고, 함께 나온 안데스식 야채 타르트 또한 상큼하고 맛있었다. 고기는 양이 너무 많아서 아깝지만 남길 수밖에 없었다.

식후 아르마스 광장에서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벤치에 잠시 앉아있었다. 마음을 추스르고 페루 여행을 마무리지으며 엄마의 쾌유를 빌었다. 5분에 한 번씩 잡상인들이 말을 걸었지만 화창한 날씨에 기분이 조금 풀렸다. 그렇게 쿠스코에, 페루에 작별을 고하고 병원으로 돌아왔다.

수액을 맞은 엄마는 한결 좋아져 있었다.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하룻밤 머물고 나면 괜찮아지실 거라는 안심이 되기 시작했다. 마음이 한결 편해지니, 그제야 병실이 눈에 들어왔다. 1인실 병실은 꽤 좋았다. 넓고 간병인 침대도 별도로 있고 간병인 식사도 나왔다.(맛도 꽤 괜찮았다.) 사진에는 없지만 소파도 있었고 쓸데없는 장식장도 있었다. 방에 딸린 화장실 겸 샤워실도 괜찮았고 뷰도 좋았다.

저녁식사가 함께 나와 병원 침대에서 같이 식사를 하고, 라파스행 항공권을 예약했다. 그리고 약을 바른 피부에 물이 닿지 않도록 엄마가 머리를 감으시는 걸 도와드렸다. 엄마가 고생하시는 모습에 속상하기도 했지만 내가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안심이 되기도 했다.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아 초급 스페인어 실력으로 맞닥뜨려야 했지만, 그래도 고등학교 이후로 스페인어를 열심히 공부하지는 않았어도 완전히 놓지는 않았던 것에 감사했다.

엄마는 계속 당신 때문에 내가 푸노에 가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하셨지만, 나는 지금 생각해도 전혀 아쉽지 않다. 그때는 엄마의 쾌유만이 중요했기 때문에 어차피 푸노에는 아무 관심도 없었고,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쿠스코의 병원에서 하룻밤 묵은 것은 우리 둘만의 엄청난 추억이기 때문이다. 아마 나는 엄마와 평생 동안 이 일에 대해 웃으며 이야기할 것이다.


# 사소한 메모 #

* 낯선 지역을 여행할 때는 필수 검사/접종뿐 아니라,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여러 가지 검사를 받고 약을 처방받는 것이 좋겠다.
* 처음으로 엄마의 보호자, 간병인이 되었다. 엄마가 든든하게 느끼셨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앞으로 그럴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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