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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의별 Mar 28. 2017

호수와 은하수

Day 12 -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Salar de Uyuni) 2

전날 숨이 막혀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3,800미터는 결코 숨쉬기 편한 지대아니었다. 자다가 숨을 헐떡여 몇 번을 깼다. 덕분에 하루 종일 피곤했고 눈도 새빨갛게 충혈되어 아팠다. 둘쨰날 숙소는 4,300미터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아침부터 걱정이 한가득 되었다. 히말라야에서 고생했던 것이 떠올라 나는 더 두려웠다. 원래 막연한 공포보다 잘 알고 있는 공포가 더 무서운 법이다. 당시 나는 2,500미터 지점에서부터 짐에서 잠옷을 꺼내는 것조차 힘겨웠었고, 걸을 때는 어지럼증을 먹을 때는 구역질을 해 일분일초가 괴로웠다. 이번에는 다행히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잠자는 것은 여전히 힘겨웠다.

전날 묵은 숙소

둘째 날은 소금사막을 벗어나 화산과 호수들을 보는 일정이다. 또 한 번 드는 생각이지만 소금사막만 보겠다거나, 소금사막에서 사진을 조금만 찍어도 만족스러운 사람이라면 전체 1박 2일로도 충분히 소화 가능한 일정이었다.

사실 이날은 몸이 피곤하고 힘들었던 만큼, 썩 기분 좋은 하루는 아니었다. 다양한 색의 호수들이 예뻤고 가까이 서 있는 홍학들이 신기했지만 그뿐, 얼른 쉬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긴 여정 속에서 크게 기억에 남는 하루는 아니었다. 밤이 되기까지는.

그래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산에 구름 그림자가 지는 것이었다. 지대가 높아서인지 산마다 구름들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활화산에서 연기가 나고 있다.

호수들을 보러 가던 중에 본 활화산 역시 새로운 광경이라 인상적이었다. 연기가 나고 있는 화산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그 앞에 있던 브로콜리 같은 식물은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옷에 초록색 가루가 묻어 모두에게 초록색 기념품을 선사했다.

라구나 까냐파(Laguna Canapa)

비가 2주째 끊겼기 때문에 물이 없는 호수들도 많아 물이 어느 정도 차 있는 호수들만 들러서 구경했다. 호수에 따라 초록색, 푸른색, 붉은색 등 다양한 색을 띠고 있었다.

라구나 에디온다(Laguna Hedionda)

하지만 호수들이 특별히 예쁘다거나 멋있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아무래도 잠을 제대로 못 잔 데다 고산증으로 숨 쉬기도 힘들고 어지러워서 여행할 상태가 아니었던 것 같다. 몸이 힘들면 뭘 봐도 기쁘지 않다.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해 아쉬웠다.

드넓은 땅에 혼자 어슬렁거려서 외로워 보였던 사막여우

게다가 땅이 모두 소금이었던 전날과 달리 이날은 모두 흙과 모래여서 차가 달릴 때 먼지가 훨씬 더 많이 날려 앞을 보기도,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창문을 모두 닫고 있어도 어디서 들어오는 건지 차 내부에서도 먼지를 느낄 수 있었다.

라구나 온다(Laguna Honda)
7가지 색이 있다는 산. 얼룩덜룩하기는 했으나 색이 비슷비슷해서 정말 7가지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르볼 데 피에드라(Arbol de piedra)

지쳐갈 무렵, '돌나무'라는 뜻의 Arbol de piedra를 보러 갔다. 이날 본 것들 중에 가장 멋진 것이었다. 제일 유명한 나무 모양의 돌뿐 아니라 주위에 함께 놓인 돌들, 바위들이 모두 멋졌다.

어떻게 이런 모양으로 생성될 수 있었던 것인지 설명하는 표지판이 있었으나 고산증으로 고생 중이었던지라 자세하게 읽어보지 못했다. 그냥 모처럼 다른 풍경이 반가웠다.

라구나 콜로라다(Laguna Colorada)

모든 일정이 끝나고, 숙소로 향했다. 숙소 앞에는 오늘의 마지막 호수, 라구나 콜로라다(Laguna Colorada)가 있었다. 콜로라다는 스페인어로 붉은색이라는 뜻이다. 이날 본 대부분의 호수들에 홍학이 있었지만, 붉은색의 호수에 붉은 홍학들이 있으니 더더욱 예뻤다.

숙소는 들은 대로 전날보다 훨씬 열악했다. 샤워는 아예 할 수도 없었고, 악취가 나는 화장실에서는 세수와 양치질만 겨우 할 수 있었다. 여전히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있어 일행 한분으로부터 안약과 눈물약을 얻었다. 4,300미터, 전날보다 더 높은 지대에서의 밤은 끊임없는 기침과 헐떡임과 함께 해야 했다.


그러나, 오늘도 도전은 해보아야 했다. 별 보기.

숙소 문에서 한 발짝 한 발짝 더 나아갈수록 별이 수십 개씩 더 보였다. 계속해서 감탄사가 나왔다. 그냥 들어가서 잤으면 얼마나 후회했을까. 하루 종일 몸도 피곤하고 특별한 감흥도 없어 지쳤는데, 밤에 은하수를 보고는 피곤이 다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오늘은 웬일인지 달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어제 우리한테서 원망을 너무 많이 들어 안 나왔나 보다.

몽골에서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보았지만, 우윳빛 은하수를 본 건 처음이었다. 난생처음 보는 은하수에 넋을 놓았다. 추웠지만 숙소 안으로 다시 되돌아갈 수가 없었다. 이걸 두고 어떻게 들어가.


# 사소한 메모 #

* 여행도 일상처럼 아쉬운 날도 있어야 멋진 날들이 더 빛나지 않을까. 여행은 늘 새롭고 특별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것 같다.
* ♬ 백예린 - 우주를 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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