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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의별 Mar 30. 2017

첫 번째 휴식, 아따까마

Day 13 - 칠레 산 페드로 데 아따까마(Atacama)

역시나 밤에 잠을 설쳤다. 낮에는 고산증을 크게 느끼지 못하다가도 밤이 되면 괴로워지나 보다. 그래도 다행히 고산지대에서의 밤도 이날이 마지막이었고, 먼지 날리는 울퉁불퉁 사막 길도 당분간 마지막이었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여러 개가 수시로 솟아나고 있던 게이시르

우유니 투어의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간헐천과 야외 온천이었다. 아이슬란드에서 했던 완전한 자연 속의 온천을 기대했는데 생각보다는 많이 상업화되어 있어 아쉬웠다. 바로 옆에 탈의실이 있어서 옷을 갈아입는 것은 편했지만, 그 옆 화장실은 6 볼(약 1천 원, 보통은 1~2 볼)이나 받으면서 여태껏 썼던 화장실 중 최악이었다. 악취와 오물 때문에 너도나도 구역질을 했다.

야외 온천

부대시설은 없느니만 못했지만 몸을 따뜻하게 녹일 수 있던 온천은 노곤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2박 3일 우유니 사막 일정을 마치고 칠레 국경으로 향했다. 국경에 도착하기 직전 라구나 베르데(초록색 호수라는 뜻)에서 운전기사(겸 가이드 겸 요리사)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단체사진을 찍었다. 막상 국경에 도착했을 때에는 지프차 위에 싣고 달리던 짐을 내려받고 차를 옮겨 타는 등 여러모로 정신이 없어서 추가적인 작별인사는 어려웠다. 그저 Gracias, Ciao 정도의 짧은 인사말만 던지고 서둘렀다.

라구나 베르데(Laguna Verde)

오전에 온천에서 6 볼짜리 더러운 화장실을 이용한 뒤 볼리비아에 완전히 질려버린 나는, 칠레 입국 사무소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우유니 사막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남미의 유럽으라 불리는 칠레로 간다는 설렘이 더 앞섰다. 우유니는 환상적이었지만 그걸 보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온몸을 뒤덮은 소금과 먼지를 제대로 씻어낼 수 없는 불편함, 악취 나는 화장실, 고산증으로 밤새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것 등.


그리고 칠레로 향하는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차에 타고 있던 모든 사람들은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며칠을 울퉁불퉁, 먼지투성이 오프로드만 달리다가 국경을 넘자마자 포장도로의 부드러움을 맛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칠레 입국 사무소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을 달려야 했지만, 국경을 기준으로 두 나라가 얼마나 다른지 몸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볼리비아가 얼마 슬픈 역사를 지닌 나라인지를 느끼게 되었다.

산 페드로 데 아따까마(San Pedro de Atacama), 멀리 보이는 산이 멋지다.

칠레에 도착해 멀끔한 호텔에 체크인을 하자, 오전에 온천에서 미처 풀리지 않은 피로가 마저 싹 풀리는 기분이었다. 3일 만에 보게 된 휴대폰의 와이파이 신호 역시 한몫했다.


하지만 소금사막의 여파로 눈은 여전히 빨개서 안약을 사야 했다. 환전을 하고 약국에도 들르고 점심 식사를 했다. 다른 사람들은 오후에 모두 '달의 계곡' 투어에 갔지만, 나와 엄마는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달의 계곡이 굉장히 멋지다는 것은 글로도 사진으로도 알 수 있었지만, 엄마의 피부에도 내 눈에도 더 이상의 사막은 좋지 않을 것 같았다. 거기다가 건조해서 그런지 기침도 나기 시작했다.

나의 이번 여행에는 앞으로도 여러 번의 사막이 있을 것이기에 크게 아쉽지 않았다. 이후 일정을 위해 쉬어가는 것도 중요하니까. 호텔에서 이후 일정을 위한 각종 계획도 세우고 숙소 및 교통편 예약을 하고, 지난 여행 정리도 조금 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여유롭게 낮잠도 잤다.

달의 계곡에는 가지 못했지만 산 페드로 데 아따까마 마을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날씨도 좋았고, 건물들도 독특하고 예뻤다. 건물들의 모양과 색깔에서부터 사막임을 느낄 수 있었는데, 상당히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어 놀랐다.

여행 출발 2주 만에 처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맞이했다. 여유롭게 과일가게에서 달디 단 복숭아도 사 먹었고, 저녁도 근사하게 먹기로 했다. 저녁은 메로 구이와 퀘사디아를 먹었는데, 꽤 좋은 식당이라 가격은 비쌌지만 그만큼 맛있었다. 며칠간 제대로 씻지도, 제대로 된 밥을 먹지도 못한 고생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페루와 볼리비아를 워낙 바쁜 일정으로 다녔기에 상대적으로 무척 여유로운 오후와 저녁이었다. 혼자 하는 여행이 아니니 내가 조정할 수 없는 일정이었지만, 사실 대부분의 여름휴가들을 이렇게 보냈던 것 같다. 이번에는 장기 여행이니 적절한 휴식의 중요성을 잊지 말아야겠다. 오랜만에 여유롭게 호텔에서 쉬며 이후로도 최소한 열흘에 한번 정도는 이런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 사소한 메모 #

* 같은 여행지에 가더라도 사람마다 그곳에 간 목적은 다르다. 또한 선호하는 여행 방법도 다르다. 어느 곳이든 ‘반드시 하고 와야 하는 것’ 또는 ‘반드시 보고 와야 하는 것’이란 없다.
* 무리하지 말고, 쉬어야 할 때는 쉬어가자.
* 너덜너덜해진 가방끈을 엄마가 꼬매 주었지만 임시방편일 뿐. 어디선가 새로운 가방을 사야 할 텐데 마음에 드는 걸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 가방을 고쳤더니 손목시계가 멈췄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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