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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의별 Mar 27. 2017

그곳에 가야 하는 가장 좋은 시기란 없다

Day 11 -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Salar de Uyuni) 1

앞뒤 좌석 간격이 넓어서 편하다.

라파스에서 우유니까지는 비행기를 타도 되지만 대부분은 야간 버스를 이용한다. 시간은 꽤 걸리지만(약 9시간) 까마 버스(cama: 침대)의 좌석은 꽤 넓어서 잠자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비행기 이코노미석과 비즈니스석 사이 정도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의자가 완전히 눕혀지지는 않지만 공간이 충분해서 편안히 자면서 갈 수 있었다.

새벽 5시, 우리는 아직 한창 어두울 시간에 우유니에 도착했다. 원래는 호스텔에 자리가 있으면 큰 방을 하나 잡아 단체로 들어가 좀 쉬고 씻으려고 했는데 안타깝게도 방이 없었다. 대신 호스텔 로비와 사무실에 앉아있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어 그렇게 옹기종기 앉아 수다를 떨었다. 피곤했지만 아줌마들의 수다를 듣고 있다 보니 재미있어서 잠도 오지 않았다. 8시쯤 환히 밝아진 뒤에야 아침식사를 하러 나갔다. 한두 시간 뒤에 마켓이 열리면 살떼냐(Salteña, 볼리비아식 만두) 등 시장 음식을 살 수 있다고 하던데, 그 시간까지 기다리기는 힘들 것 같아서 근처 카페에서 팬케익을 먹었다. 2박 3일간의 험난한 우유니 사막 투어 전에 마지막으로 먹는 바깥 음식이었는데 팬케익이 다 태워져서 나와서 아쉬웠다.

사륜구동 지프차에 5명씩 올라타 덜컹거리는 2박 3일 투어를 시작했다. 소금 사막만을 보고 싶으면 당일치기 또는 1박 2일 투어로도 가능하지만, 우리는 우유니 사막을 가로질러 칠레까지 갈 것이었기에 2박 3일이 걸렸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기차 무덤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이곳에는 폐차된 기차들이 모여있었다.

한때는 중요한 운송수단으로 쓰였을 터인데, 지금은 관광객들의 기념사진 촬영을 위해 남아 있었다. 미국 서부 영화를 촬영할 법한 세트장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기차 무덤 다음에는 콜차니라는 작은 마을에 들렀다. 침대와 테이블 등 모든 것이 소금으로 만들어진 소금 호텔을 잠시 구경하고, 필요한 것들을 샀다. 다음날 산후안이라는 또 다른 작은 마을에 들르기는 하지만 그전까지는 이 곳이 마지막으로 들르는 마을이기 때문이다. 나는 마실 물과 소금사막에서 사진 찍는 용도의 병맥주를 샀다.

사실 우리는 투어 시작 전부터 실망할 수밖에 없었는데, 우기임에도 2주째 비가 끊긴 상태였고 달은 하필 보름달이라 물도 없고 별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미리 아쉬워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물이 약간  찬 곳

가장 먼저 물이 얕게 차 있는 곳에 도착했다. 물이 많은 곳은 기사들끼리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물색해보는 듯했다. 하지만 막상 이 끝없이 펼쳐진 소금 사막 한가운데에 서 있으니, 물이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다. 하얀 땅과 푸른 하늘, 그리고 하얀 구름이 만들어내는 색감이 너무나 예뻤기 때문이다.

물이 꽤 많이 찬 곳

점심식사 후에는 물이 조금 더 많이 찬 곳으로 이동했다. 물이 아주 많이 차 있을 때는 장화를 신어야 한다고 하던데, 우리는 그 정도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들어갔다. 그래도 사진을 열심히 찍느라 바지와 신발이 소금 때문에 허옇게 말라비틀어져 그날 저녁 숙소에서는 물론, 이후 아따까마 사막에서도 꽤나 고생스럽게 빨래를 해야 했다.

사람들이 물이 찬 곳을 찾는 이유는 아래에 반사되는 모습 때문인 것 같다.

우유니 사막은 그저 사진을 찍는 것만으로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사진 욕심이 많지 않다면 칠레 국경까지도 1박 2일이면 충분히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워낙 하늘과 땅의 경계가 모호할 정도로 예쁜 곳이다 보니 셔터 누르는 것을 그만 두기가 쉽지 않다.

온갖 국기가 꽂혀 있는 곳. 태극기도 있다.

여행을 계획하며 ‘우유니 사막은 우기에 가야 한다’는 코멘트를 많이 발견했다. 물이 차야 예쁘고, 그렇지 않으면 예쁘지 않다면서. 내 여행의 시작이 2월이었으므로 출발지점을 남미로 잡은 데에는 그것 또한 꽤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막상 물이 한 방울도 있지 않은 소금 사막 위에 서 있어보니 이것 또한 물이 찬 곳만큼이나 환상적이었다. 벌집 모양의 땅이 신비로웠다. 서양인들은 건기에 더 많이 찾는다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소금사막에 물이 차 있지 않으면 예쁘지 않다'는 말은 명제가 아니라 의견일 뿐이니까.

물이 찬 곳은 찬대로 매력적이었지만, 안 찬 곳은 안 찬대로 매력적이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물 한 방울 없이 말라 있는 곳이 더 인상적이었고 기억에 남는다. 게다가 물에 젖을 일도 없으니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것도 더 편했다.

내가 준비했던 맥주병 사진은 내가 준비해 갔기에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제일 잘 찍었다. 생각보다 찍기 쉬운 사진은 아니었다. 공룡 피규어는 운전기사들이 하나씩 들고 있는 아이템이었고, 함께 온 사람들은 저마다 아이디어를 내어 다양한 아이템을 내놓았다. 한참을 이런저런 포즈로 사진을 찍어대니 시간이 훌쩍 흘렀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난 후, 숙소로 이동하기 전에 잉카와시(Incahuasi)라는 선인장 섬에 갔다. 물이 차 있을 때 보면 물에 섬이 반사되어 물고기처럼 보인다고 해서 물고기섬이라고도 불린다는데, 실제로 물고기 섬이라는 이름을 가진 섬은 따로 있다고 한다.

선인장 섬 (잉카와시, Incahuasi)

사막에 웬 섬인가 싶어 갸우뚱했지만, 조금 높은 곳에 올라가 보니 소금사막이 꼭 바다 같고 이 섬과 이어진 부분은 해변 같았다.  

게다가 선인장은 상상 이상으로 키가 컸다. 나중에 갈라파고스 등에서도 꽤 큰 선인장들을 보기는 했지만, 이곳에서 보았던 선인장들을 능가할만한 건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원래는 선인장 섬에서 바로 숙소로 이동할 계획이었는데, 사진 찍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던 것인지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샴페인 한 잔씩 나누어 마시며 일몰을 보았다. 아마 물이 많이 차 있었을 때 보면 해가 완전히 반사되어 더 예뻤을지도 모르겠지만 물이 애매하게 차 있어서 특별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해가 진 후의 모습이 훨씬 예뻤다. 파스텔로 칠한 듯, 셔벗 색의 하늘과 구름이 환상적이었다.



숙소는 사전에 들은 대로 혼숙에 화장실도 더럽고 샤워실은 더 더러운 곳이었다. 뽑기를 잘해서 운 좋게 가장 먼저 씻을 수 있었지만(한 명당 5분) 4번째 순서부터는 따뜻한 물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숙소에서 겨우 씻은 후, 아무래도 그냥 잠들기는 아쉬워 밖으로 나와보았다.

주위에 불빛이 없어 별이 꽤 보였다.

하지만 인공적인 불빛이 없는 대신 보름달의 강렬한 빛이 방해하고 있었다. 달이 떠 있는 쪽에는 별이 하나도 보이지 않고, 나머지 반쪽 하늘에만 별이 보였다. 보름달이 이렇게 원망스러울 줄이야. 별은 다음날을 기약했다.


# 사소한 메모 #

* 여행하기에 완벽한 시기란 없다. 어떤 시기에 가든 그 시기만의 매력이 있다. 게다가 원하는 시기에 맞춰갔다 하더라도 기상 상황 등의 각종 변수는 생기기 마련이다.
* 여행 후 사람들이 고생한 부분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는 것은, 그만큼 너무나 멋져서 고생을 잊을 정도여서일까?
* ♬ 에피톤 프로젝트 - 선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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