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3, 24 - 브라질&아르헨티나 이과수 폭포(Iguazu)
폭포가 멋져봤자 폭포일 뿐이지!
내 섣부른 생각은 이과수 폭포를 보자마자 쏙 들어갔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푸에르토 이과수(Puerto Iguazu)로 향하는 비행기 안, 기장이 날씨가 좋다면서 이과수 폭포를 보여주었다. 평소 창가 자리를 선호하는 편은 아닌데, 이날은 창가 자리에 앉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보자마자 떡 벌어진 입은 쉽게 닫히지 않았다. 나는 시선을 폭포에 고정시킨 채 가방에서 주섬주섬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원래 이 노선이 그런 줄 알았는데, 나중에 승무원에게서 들으니 기장이 일부러 항로를 살짝 벗어나서 간 거라고 했다. 아주 가끔 있는 일이니 운이 정말 좋은 것이라면서.
이과수 폭포는 걸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전에 찍은 사진들을 지우게 되고, 아르헨티나령 이과수를 보면 브라질령에서 찍은 사진들은 지우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브라질령에 먼저 갔다. 아르헨티나령까지 모두 보고 난 느낌은, 브라질에서는 전체적인 경관을 잘 볼 수 있고 아르헨티나에서는 구석구석 세세하게 볼 수 있다는 것. 아르헨티나령에는 그 유명한 '악마의 목구멍'이 있지만, 브라질령도 멋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이과수에는 코아티(Coati)라는 동물이 많이 있다. 한두 마리 있는 것을 보면 참 귀여운데, 음식이 있는 곳에 여러 마리가 득달같이 달려드는 것을 보면 조금 무서웠다. 물리면 크게 다친다고 하니 함부로 음식물을 꺼내서는 안 된다.
너무 더워서 괴로웠지만 풍경이 상상 이상으로 멋져서 걷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땀이 줄줄 흘러내렸지만 계속해서 걸어 들어갔다.
길을 따라 쭉 걸어 들어가 보니 폭포 앞으로 가까이 가볼 수 있는 산책로도 있었다. 가까이 가면 갈수록 물이 많이 튀었는데, 너무 더웠기 때문에 그 물방울들이 오아시스처럼 행복하게 했다. 무지개도 예뻐서 여러 번 사진으로 남겼는데 이후에는 무지개를 너무나 자주 봐서 사진조차 찍지 않은 것들도 많았다.
여기서도 일이 터졌는데, 엄마가 벌레에 쏘인 것이었다. 순식간이라 뭔지는 못 봤지만 팔에 침 같은 것이 박혔다. 내가 침을 뽑아내고 다른 분께 약도 얻어서 발랐는데, 아무래도 불안해서 전망대 근처 응급처치실로 찾아갔다. 갔더니 간호사가 괜찮다면서 약을 발라주고 거즈도 붙여주고, 찜질하라고 얼음팩도 주었다. 그리고는 다시 구경을 마저 하러 가는데, 이번에는 내가 벌레에 쏘였다. 엄마보다는 덜 심했지만 목이 따가워서 다시 그 간호사에게 가서 약을 받았다. 간호사도 웃고 나도 웃고 엄마도 웃었다. 아무래도 우리 이제 집에 가야 할 시간인 것 같다고 했다.
아르헨티나령 이과수를 둘러보는 데에는 브라질령에서보다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구석구석 들어가 볼 곳도 많고, 가장 유명한 악마의 목구멍의 경우 입구에서 거리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걸어도 되지만,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는 기차를 타는 것이 좋다.
브라질령도 충분히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아르헨티나령에 오니까 사람들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밀림처럼 나무가 가득했는데, 정말 하나도 건드리지 않은 것 같았다. 그 덕분에 폭포는 깊은 산속에 숨어있는 보석 같았고 신비로웠다. 영화 속에서 탐험을 하다 길을 잃은 주인공이 한 손으로 우거진 나뭇가지들을 걷어내고 나면 비로소 짠 하고 펼쳐지는 풍경 같은.
브라질령은 한쪽 길로 쭉 올라가면 전망대가 있고 그게 전부였는데, 아르헨티나령에는 가까이서 볼 수 있는 폭포들이 더 많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쪽은 정말 세세하게 산책로가 있었다. 폭포들을 여러 각도로 볼 수 있었고 매번 새롭게 느껴졌다. 굉장히 더웠지만 폭포를 보고 그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마음만은 시원해졌다. 산책로를 오르락내리락하며 땀이 줄줄 흘러도 폭포를 볼 때마다 힘이 났다. 그리고 사실 이날은 하이라이트가 따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견딜만했다.
그건 바로 스피드보트였다. 보트를 타고 폭포 안으로 들어가 시원하게 폭포수를 맞는다. 스피드보트는 브라질령에서도 탈 수 있지만, 브라질령에서는 극히 일부분만 들어가 볼 수 있어 대부분은 아르헨티나령에서 탄다. 우비를 입고 타도 된다는데, 우리는 더우니 그냥 제대로 맞아보기로 하고 대신 갈아입을 옷을 준비해 갔다.
앞쪽에 앉았더니 보트가 빨리 달릴 때 살짝 위로 들려서 더 스릴이 넘쳤다. 보트를 타는 것만으로도 바람이 불어 시원했는데, 폭포수까지 맞으니 더위가 다 날아갔다. 그런데 물이 너무 세게 내려와서 누군가가 뺨을 연속으로 때리는 기분이었다. 아프고 눈도 못 뜰 지경이었지만 재미있어서 사람들은 모두 한번 더 들어가자고 했다. 3~4번 폭포 속에 들어갔다 나오니 추워졌다. 그렇게 물에 빠진 생쥐가 되었는데도 어찌나 날이 덥던지 옷을 갈아입기 위해 화장실에 도착하기도 전에 옷이 조금 말라있었다.
옷을 갈아입은 후 점심식사를 했다. 서브웨이에서 샌드위치를 사 먹었는데 밖에서 먹으면 코아티들이 달려와서 실내 바닥에 앉아서 후다닥 먹었다. 식후에는 아르헨티나령에서 가장 중요한 곳인 악마의 목구멍으로 향했다. 기차를 타고 올라가도 1km 넘게 걸어 들어가야 한다. 구름과 하늘이 너무나 예뻐서 들뜬 마음으로 걸어 들어갔다. 걸어 들어갈수록 물소리가 조금씩 우렁차져서 폭포가 가까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1분을 보면 근심을 잊고 10분을 보면 인생의 시름을 삼켜버리지만, 30분을 보면 영혼을 잃는다는 악마의 목구멍에 드디어 도착했다. 실제로 이곳은 자살률이 상당히 높다고 한다. 한참을 보고 있노라면 나 역시 그 속으로 빠져들 것만 같았다. 그래서 29분 정도만 보고 나왔다.
이날의 감동을 오롯이 간직하고 싶어 정성스레 남긴 동영상이다. 현실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규모와 풍경이었다. 악마의 목구멍뿐 아니라, 이과수 폭포는 어디서 보아도 그림 같았다. 예쁘면서도 무섭고 신비로운 이 폭포는 내가 꼽는 남미 최고의 절경이다.
# 사소한 메모 #
*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를 보았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게 최고일 것 같다.
* ♬ Coldplay - Viva la vi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