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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의별 Apr 17. 2017

이상하게 음산했다

Day 27 - 에콰도르 과야킬(Guayaquil)

브라질까지는 짜인 일정에 맞추어 열심히 다녔지만, 에콰도르부터는 직접 계획한 일정에 따라 움직였다. 장점은 여유롭게 다닐 수 있다는 것이었고 단점은 계획을 세우는 것이 생각보다 피곤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도 엄마도 과야킬(Guayaquil)에서 특별히 하고 싶었던 게 없었다는 것. 그렇기에 오랜만에 느긋한 마음으로 동네 한 바퀴 산책하듯 구경하기로 했다.

그런데 과야킬은, 내가 여태껏 가본 도시들 중 가장 이상한 도시였다. 수도인 키토(Quito)보다도 큰 도시라고 들었는데, 거리에 사람도 하나도 없고 그나마 있는 사람들도 모두 우울해 보였다. 조용하고 음산했으며 을씨년스러웠다. 폭풍전야 같았고 유령도시 같았다.

중심가인데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동양인들도 별로 없는지, 나와 엄마가 함께 지나가면 모두들 힐끔거리면서 쳐다보았다. 가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인사를 건네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무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그런 시선들은 우리를 더 위축되게 만들었고 대낮인데도 겁이 나게 만들었다.

치안이 좋지 않아서일까? 문을 연 가게들도 저렇게 철창을 해놓고 그 사이로 물건과 돈을 주고받는다.

거리에도 사람이 많지 않았고, 가게들도 열린 곳들이 많지 않았다. 공항에서 우리를 태운 택시 기사 말로는 축제 기간이라서 사람들이 일을 안 한다고는 했지만, 그렇다 해도 브라질의 축제 기간과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게다가 철창으로 뒤덮인 동네 건물들의 모습이 이 도시의 분위기를 더욱 어둡게 만들었다. 치안이 좋지 않아서인지, 대부분의 건물 입구에는 경비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앉아있었고 모든 문과 창문에 이중, 삼중으로 방범 철창을 해놓아 폐쇄적인 동시에 위협적이었다. 

결국 점심은 맥도널드에서 해결했다. 한국에서 먹던 것과는 패티가 달랐던 치킨버거와 치킨너겟을 주문했는데 둘 다 뜨거울 정도로 따뜻해서 맛있었다. 패스트푸드점 같지 않게 직원이 직접 서빙도 해주고, 돌아다니면서 음식 맛이 괜찮냐고 물어보며 더 필요한 게 없는지도 물어봐주었다. 케첩을 더 달라고 했더니 환히 웃으면서 메고 있던 크로스백에서 케첩을 두 개 꺼내 주었다.

맥도널드 직원으로부터 긍정적인 에너지를 조금 받은 우리는, 숙소로 바로 돌아가지 않고 강가로 걸어나가 보기로 했다. 그곳에는 기대치 않은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울리지 않게 이런 발랄한 색과 모양의 'Guayaquil' 이름을 세워뒀다니. 뒤쪽에는 시몬 볼리바르와 산 마르틴 동상도 있어 다시 한번 남미 영웅들을 마주했다.

축제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강가 공원은 도시와 굉장히 다른 분위기였다. 아이들의 놀이터도 있었고 공원도 밝고 화사하게 꾸며져 있었다. 우리를 경직되게 만들었던 중심가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이곳에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대부분 관광객들이었지만.

주위에 사람들이 있으니 우리는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 일찍 숙소에 되돌아가자고 했던 다짐을 조금 미뤄둔 채 덥지만 강가를 따라 쭉 걸어갔다.

대관람차까지 가니 저 멀리 빈민가 언덕이 보였다. 저 위 등대에 올라가 보기도 하던데, 우리는 먼발치에서 보는 것으로 과야킬 시내 관광을 마치기로 했다. 강가에서 조금 풀린 기분을 다시 잃고 싶지는 않았다. 다시 생각해보아도 분위기가 참 이상한 동네였다.


# 사소한 메모 #

* 나중에 찾아보니 나 말고도 과야킬이 음산했다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원래 그런 도시인가 보다.
* 동네 꼬마가 엄마한테 공을 차 달라고 했다. 우리 엄마 공 잘 차는 걸 처음 알았다. 스페인어를 눈치로 알아듣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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