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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의별 Apr 18. 2017

사진으로 남길 수 없는 것들

Day 29 - 에콰도르 갈라파고스 핀존 섬(Pinzon)

나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일상 속에서 좋아하는 것들을, 사람들을, 그리고 그 속에 함께 있는 나 자신을 찍는 것까지도 모두 좋아한다. 시간이 지나 모든 기억이 바랬을 때에도 사진만은 그 상태 그대로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진은 어디까지나 기억의 보조자료가 될 수 있을 뿐,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던 그 순간의 감정 상태, 머리카락을 헝클이는 바람소리, 걸을 때마다 느껴지는 진흙땅의 질퍽함까지 담아내지는 못한다. 미래에 느낄 아쉬움과 그리움에 대비해 사진 촬영에 집중하는 동안, 오히려 현재 온전히 느껴야 할 것들을 놓칠 수도 있다.

푸에르토 아요라(Puerto Ayora) 항구를 떠나며

그나마 필름 카메라를 사용할 때에는 놓치는 것이 많이 없었다. 어차피 촬영할 수 있는 사진의 수가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한 장소에서 찍는 사진의 양은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셔터 한 번 누르는 것이 굉장히 소중했기 때문에 어떤 주제를 어떤 구도로 촬영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래서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주변을 깊이 살펴보는 시간이 필요했고, 그런 관찰 끝에는 나만의 사진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하면서부터 셔터 한 번의 소중함 같은 건 사라진 지 오래다. 보이는 대로 사진을 여러 장 찍어놓은 후, 나중에 잘 나온 사진들을 선별하면 그만이니까. 그러다 보니 여행 초반 내 사진들 역시 비슷한 사진들이 굉장히 많았다. 멋지다고, 예쁘다고, 무분별하게 셔터를 눌러댄 탓이었다. 그랬더니 주제의식이 전혀 없는,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언제든 찾아볼 수 있는 흔한 사진들만 많아졌다. 그게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미 검색하면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사진을 굳이 한 장 더 만들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핀존(Pinzon) 섬으로 가는 길, 부비새를 보기 위해 잠시 들른 섬

갈라파고스 도착 첫날, 어떤 섬 투어를 할까 고민하다 여행사에서 추천해준 핀존 섬 투어를 하기로 했다. 가는 길에 내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푸른발 부비새와 빨간발 부비새도 볼 수 있고, 스노클링 하면서도 가장 많은 동물을 볼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여행사 3곳에서 100, 110달러를 불렀는데, 마지막으로 간 곳에서 90달러를 불러 거기서 예약을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돈의 차이는 배의 수준 차이였다. 이 날 탄 배는 작고 불편한 데다 구명조끼도 주지 않았다.

푸른발 부비새
푸른발 부비새와 빨간발 부비새
사람이 살지 않는 핀존 섬(Pinzon). 사람이 살지 않는 섬에는 내릴 수 없고, 근처에서 스노쿨링만 가능하다.

핀존 섬은 나도 엄마도 생애 첫 스노클링을 한 곳이다. 물속에 처음으로 고개를 넣었을 때 보였던 큼지막한 열대어들, 너무나 깨끗하고 고요했던 물속, 그리고 생각보다 깊은 바닥을 보고 생겼던 두려움. 이 모든 것들을 나는 다 잊을 수가 없다. 스노클링 하면서 물속에서 만난 모든 열대어들, 상어들, 바다사자들과 가오리, 바다거북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우아하고 신비로웠다.


사실 스노클링 내내 가이드가 고프로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판매를 한다기에 투어가 끝나면 그 사진들을 사기로 했다. 그러나 끝내 나는 그 사진들을 받지 못했다. 가이드는 투어 후 우리 숙소에서 만나 사진을 옮겨주겠다고 했는데 숙소를 잘못 찾아가 이날 저녁에 만나지 못했고, 이틀 뒤 선착장에서 마주쳐 다시 약속을 잡으며 숙소 주소를 다시 알려주었는데도 가이드는 오지 않았다. 더 아쉬웠던 것은, 고프로를 대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는 것이다. 다음 섬 투어 때에는 고프로를 대여해갔지만 핀존이 훨씬 예뻤기 때문에 더 아쉬웠고 약속을 지키지 않은 가이드에게도 짜증이 났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다행인 것 같다. 그 멋진 곳에서 대여한 고프로를 들고 서툴게 사진과 영상 촬영에 집중했다면 나는 그 날의 느낌을 온전히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가이드가 촬영한 자료를 받았다면 필요할 땐 언제든지 사진과 영상을 찾아보면 된다는 생각에 지금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진으로 찍어둔 기억은 새로운 기억으로 바로바로 덮어 씌워지는 것 같다. 하드 드라이브로 옮긴 카메라 사진들을 카메라의 메모리카드에서 바로바로 지워버리는 것처럼.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이날의 추억을 더 오래도록 선명하게 기억하기 위해 나는 지금도 머릿속에서 가끔씩 꺼내보고 있다.



약 2시간 반 동안의 스노클링 후 다시 산타 크루즈 섬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배가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돌고래 떼가 우리 주위를 맴돌았다. 핀존 섬이 주는 마지막 선물 같았다.

푸에르토 아요라 항구로 돌아가기 전에, 산타 크루즈 섬의 라페(La Fe)라는 해변에 잠시 들렀다. 바다 이구아나가 많은 곳이었는데, 굉장히 커서 무서웠지만 가까이 다가가니 도망가버리는 것으로 보아 이구아나가 사람을 더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섬에는 태평하게 늘어져 자고 있는 바다사자도 있었는데 귀여우면서도 부러웠다. 

이구아나들을 본 해변가에서 다시 한번 스노클링을 했다. 조금 더 멀리 헤엄쳐 나가면 상어가 있다는데 상어는 이미 핀존에서 보았고 구명조끼 없이 그렇게 깊은 곳에 가는 것은 부담이 되어 얕은 물에서 작은 열대어들하고만 놀았다. 덕분에 이날 나와 엄마는 타다 못해 익어버렸고, 지금까지도 그 흔적이 몸에 남아있다. 상의는 래시가드를 입었지만 하의는 아무런 보호를 해놓지 않은 탓이었다. 난생처음 한 스노클링이 약 3시간에 이를 줄은 상상도 못 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밤중에 감자를 사 와서 마사지하고 촉촉한 바디로션을 듬뿍 바른 후 브라질에서 산 장미 오일(피부 재생을 도와준다는)까지 바르고 잤다.

가이드가 사진을 판매하러 오겠다고 해놓고 30분을 기다려도 안 오자 포기하고 저녁 식사를 하러 키오스크 거리로 나갔는데, 낮에는 왼쪽 사진처럼 한적하지만 밤만 되면 오른쪽 사진처럼 북적거리는 곳이다.

랍스터 철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갈라파고스에 왔으니 한번 먹어보았다. 큰 랍스터를 둘이서 나눠 먹었는데, 그냥 중간 크기를 하나씩 먹을 걸 하고 후회했다. 맛은 괜찮았지만 양이 많지 않았다. 그래도 함께 나온 밥과 맛있는 바나나 튀김이 있어 배부르게 식사를 마쳤다.


# 사소한 메모 #

*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지만, 추억할 수 있는 방법은 굉장히 많다. 글 몇 줄이든, 티켓 한 장이든, 하다못해 영수증이든.
* 스노클링을 할 때는 반드시 위아래 완전무장을 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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