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31,32-에콰도르 갈라파고스 산타페, 산타크루즈
섬 투어를 한 번 더 하기로 했다. 원래는 이사벨라 섬에 가볼까 했는데, 당일치기는 많이 권유하지 않았다. 이사벨라 섬까지 가려면 왕복 5시간 가까이 배를 타야 하는 데다 하루 안에 섬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산타페라는 섬으로 가기로 했다. 산타페 섬은 핀존 섬처럼 주로 스노클링을 하러 가는 섬이라 핀존과 너무 비슷하지 않을까 살짝 걱정되기도 했는데,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날 투어는 다른 여행사를 통해 예약했다. 첫날 처음으로 들렀던 여행사에 갔다. 처음부터 이곳 주인이 신뢰가 가서 마음에 들었는데 나중에 너무 싼 곳을 발견하는 바람에 덜컥 예약해버린 것이었다. 애초에 이 사람을 통해 예약했다면 핀존도 더 편하게 다녀왔을 텐데. 약 10불의 차이는 배의 수준 차이였다. 더 크고 자리도 넓은 배였고, 구명조끼도 나누어주었다.
산타페까지는 약 40~50분. 내가 뱃멀미를 자주 하는 편인 줄은 여기서 처음 알았다. 핀존 때는 그냥 속이 별로 좋지 않은 줄로만 알았는데, 이 짧은 거리에도 멀미를 했다. 앞으로는 배를 타기 전에 멀미약을 꼭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산타페 역시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이어서 앞에서 스노클링만 가능했다. 물이 핀존보다 차가웠지만 막상 들어가서 움직이니 금세 괜찮아졌다. 물속에서 바다사자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두 번째로 들어간 곳은 바닥이 하얀 모래였는데, 그래서인지 꼭 수영장 같았다. 물이 맑았지만 모래 때문에 핀존보다는 탁해 보여서 아쉬웠다. 이곳에서도 가오리와 장어 등을 보았지만, 열대어의 종류는 핀존이 더 많았다. 그러나, 산타페 섬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따로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낚시! 스노클링 후 배에 낚싯대를 3대 올려두고, 수면 위에서 헤엄치는 거북이와 빨간발 부비새 등을 보며 30~40분 넘게 달렸다. 하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어 허탕인가 보다 싶어 졸고 있었는데 갑자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한쪽 낚싯대 줄이 팽팽해져 있었다. 줄을 한참, 거의 10분 가까이 끌어올렸는데도 물고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지칠 때쯤, 크기가 어마어마한 물고기가 배 위로 올라왔다. 끌어올리자마자 작살로 쳐서 기절시켜야 했다. 1.5m가 넘어 보였는데 이름이 와후(Wahoo)라고 했다. 이날 우리의 점심식사는 전날 잡았다는 80cm 참치였고 이건 다음날 투어 간 사람들의 점심식사가 될 것이라고 했다. 나머지는 각자 집에 가져가려나?
이 투어 역시 푸에르토 아요라 항구로 돌아가기 전에 산타크루즈 섬의 한 해변에 들렀는데, 이름이 히든 비치(Playa Escondida)였다. 이름이 히든 비치인 이유는 만조 때 물이 차면 해변을 다 덮어버려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모래가 질겨서 찰흙 같았다.
이곳에서 큰 파리에 물려 피도 나고 따가웠지만 그늘 아래 해변에 앉아있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엄마와 둘이 나란히 앉아 모래찜질을 하며 도란도란 수다를 떨었다.
갈라파고스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는 또다시 키오스크 거리에서 했다. 저 붉은 생선의 맛이 궁금했다. 이름이 브루호(Pescado brujo)라는 붉은 점박이 생선이었다.
오랜만에 먹는 익숙한 생선구이. 살도 많고 정말 맛있었다. 같이 주문한 코코넛 새우도 맛있었다.
숙소는 여전히 개미 천국에 노란색의 이구아나가 돌아다녔다. 첫날 본 이구아나보다는 큰 녀석이었다. 평화로운 마지막 밤을 보내려고 했는데 갑작스러운 날갯짓에 깜짝 놀라 보니 조금 큰 파리가 있어서 잡았다.
그리고는 한참 뒤, 더 큰 날갯짓 소리가 들려서 돌아보니 새가... 아니, 가까이서 보니 새가 아니라 나방이었다. 엄마는 먼저 주무시고 계셨는데 내가 기겁을 하고 소리를 빽빽 질러대서 깜짝 놀라 깨셨다. 도망 다니다 결국 엄마가 때려서 잡아주셨다. 남미 여행이 끝나가는 것이 아쉬웠는데, 덕분에 아쉬움이 좀 사라졌다. 나에게는 이제 문명이 필요하다. 새 크기의 나방이 없는 도시에 가고 싶어 졌다.
이렇게 친근하게 보이는 바다사자와 공항 내에서 날아다니는 새는 귀엽고 그립지만 나방은 싫다.
그리고 에어컨 없이 선풍기가 하나만 있는 뜨거운 갈라파고스의 공항도.
# 사소한 메모 #
* 바다가 다 같은 바다가 아니다. 가는 곳마다 색이 다 다르다.
* 루트를 잘 짠 것 같다. 적당히 냉탕과 온탕을 오가야겠다.
* 아무리 더운 곳이 싫어도, 그걸 이기는 풍경이 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