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33 - 에콰도르 키토(Quito)
꿈같았던 갈라파고스를 뒤로 하고, 남미 여행의 종점인 에콰도르 키토에 도착했다. 이곳을 마지막으로 나는 북미 여행을 시작하러 뉴욕으로 갔고, 엄마는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셨다. 함께 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키토에도 볼 게 꽤 많은데 우리에게 주어진 건 하루밖에 없어서 아침부터 바쁘게 돌아다녔다. 가장 보고 싶었던 건 시내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적도 박물관이었다. 적도 박물관이라는 곳이 두 군데 있는데, 한 곳은 GPS가 있기 전에 탑을 세워 만든 곳이고, 다른 한 곳은 GPS가 생긴 이후 정확히 측정해 세워진 곳이다. 후자가 더 의미가 있는데 심지어 후자의 입장료가 더 저렴하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탑 사진만 찍고, 곧장 진짜 적도 박물관으로 이동했다.
적도 박물관의 이름은 인띠냔 박물관(Museo Intiñan)이다. 적도 위에서 계란을 세워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이곳에서는 옛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도 볼 수 있었고, 적도를 해시계 등을 통해 어떻게 찾게 된 것인지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적도를 기준으로 북반구와 남반구의 차이도 체험해볼 수 있다.
박물관에 가면 이렇게 가이드들이 있는데, 사람들이 얼추 모이면 가이드를 시작하는 것 같았다. 박물관을 한 바퀴 돌면서 유창한 영어로 재미있는 설명들을 해주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물이 어떻게 내려가는지였는데, 북반구에서는 시계방향, 남반구에서는 반시계 방향으로 물이 빠지는가 하면 적도에서는 회오리 없이 뚝 떨어지듯 물이 빠졌다. 이것 말고도 적도를 중심으로 지구본을 돌려보며 북반구와 남반구가 어떻게 반대로 돌아가는지를 보여주었다. 볼리비아 라파스에 있던 반시계 방향의 시계가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적도에서 계란을 세울 수가 있다는 것이다. 가기 전 블로그 등에서 후기를 보면서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것인 줄 알았는데, 30% 정도만이 성공시킨다고 한다. 실제로 같은 가이드 설명을 들으며 함께 움직인 9명의 사람 중 2명만이 성공했다. 나는 3번이나 성공해서 증명서도 발급받았다. 우리 엄마는 여러 번 시도했지만 끝내 실패하셨다.
적도를 가운데 놓고 사진 찍기. 적도 위에서는 힘도 약해지고 똑바로 걷는 것도 쉽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큰 차이를 느끼지는 못 했다.
다시 시내로 돌아와, 시티투어 버스에 올라갔다.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투어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 것 같았다. 시티투어버스는 정시마다 한 대씩 있었는데, 우리가 가장 먼저 내리기로 결정한 곳은 바실리카 성당(Basílica del Voto Nacional)이었다. 다음 버스는 1시간 뒤에 오는데, 이곳에서 다음 정류장인 산 프란시스코 광장(Plaza de San Francisco)으로 걸어가 충분히 구경하고 점심식사를 할 생각이었다.
소박한 집들 사이, 바실리카 성당은 혼자 화려하게 자태를 뽐내고 있다. 성당 안 스테인글라스가 화려했지만, 사람이 없어서 전체적으로는 조금 무겁고 어두운 느낌이었다. 이런 오래된 성당 또는 교회 건물을 보고 있으면 종교란 참 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성당에는 다소 황당한 전설이 얽혀 있는데, 이 성당을 짓기로 한 사람이 약속만 해놓고 돈을 받고는 놀다가 나중에 마음이 급해져 악마와 거래를 했다고 한다. 성당을 다 지어주면 자신의 영혼을 팔겠다고 해서 악마가 다 지어줬다는데, 영혼을 팔지 않기 위해 마지막에 벽돌을 하나 빼서 미완성으로 놔뒀다고 한다. 아이슬란드 여행 갔을 때 굴포스(Gulfoss) 폭포에 얽힌 러브스토리를 읽고 황당했던 기억이 났다. 폭포를 사이에 두고 사랑에 빠져 힘겹게 폭포를 건너서 사랑을 이루었다는 감동적이지도 않고 재밌지도 않은 러브스토리.
바실리카 성당 구경 후 산 프란시스코 광장으로 걸어갔다. 광장까지는 약 10분 정도 걸렸는데, 다행히 내리막길이었다. 키토도 지대가 높은 편이라 오르막길을 걸을 때는 숨이 찼다. 건물들의 색이 은은하게 밝아서 거리도 예뻤다. 저 멀리 언덕 위에 키토의 천사상이 희미하게 보였다.
산 프란시스코 광장은 키토에서 가장 대표적인 광장 같았다. 이곳에는 대통령궁과 성당들이 있었다. 건물들이 대체로 새로 칠한 듯한 선명한 흰색이라 오히려 화려한 색을 칠했을 때보다 더 화사해 보였다.
특이했던 것은 대통령 궁 밑에 저런 작은 가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상점도 있고 이발소도 있었다. 왜 대통령궁 바로 밑에 저렇게 상가 건물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보통은 이런 궁 근처도 조심할 텐데 말이다.
다음 버스를 타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간단히 식사를 해결할 곳이 보이지 않았다. 식당에 들어가기에는 시간이 빠듯한데 샌드위치 파는 곳이 없어 한참을 헤맸다. 그러다 발견한 간판도 없는 작은 가게에 무언가에 이끌리듯 들어갔다. 오렌지주스를 직접 짜주는 곳이었는데 크롸상 샌드위치가 단돈 1달러였다. 샌드위치 하나씩 먹고 오렌지주스를 마셨는데 1달러짜리 샌드위치가 기대 이상으로 굉장히 맛있었다. 칠레 푼토 나탈레스 공항에서 공짜로 받은 형편없는 샌드위치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무사히 시티투어 버스에 올라탔다. 다음 목적지이자 키토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는 다름 아닌 천사상이었다. 쿠스코의 예수상, 산티아고의 마리아상, 리우의 예수상, 그리고 키토의 천사상. 네 곳 모두 그 자체를 보러 간다기보다는 전망을 보기 위함이 더 큰 것 같다.
달동네에 자리 잡은 화려한 천사상. 천사상에서는 버스가 30분간 멈추어 서는데 기사의 휴식시간인 것 같았다. 사실 30분을 보낼 정도의 관광명소는 아니었다.
우리는 천사상 주변을 둘러싼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서 키토의 풍경을 보았다. 산비탈 아래 노란 벽에 붉은 지붕들로 이루어진 페루의 쿠스코 시내가 떠올랐다. 가벼운 바람을 맞으며 남미 여행을, 엄마와의 여행을 마무리 지었다.
엄마와의 마지막 만찬. 공항에서 먹은 아웃백 스테이크인데 감자가 더 커서 스테이크가 상당히 초라해 보였다. 역시 남미의 감자는 남다르다며, 끝까지 웃을 일이 생겼다. 각자의 설렘과 두려움으로 시작했던 엄마와의 마지막 저녁을 마무리했다. 지난 5주간 겪었던 당황스러운 일도, 황당힌 일도, 우스운 일도 에콰도르 맥주와 함께 잠시 머금었다 흘려보냈다.
# 사소한 메모 #
* 키토에서 리마로, 리마에서 나는 마이애미를 거쳐 뉴욕, 엄마는 LA를 거쳐 인천으로. 리마에서 여행을 시작했는데 리마에서 엄마와의 여행도 마무리 지었다.
* ♬ 10Cm - 새벽 4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