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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여행을 마치며

Day 1~33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에콰도르

by 바다의별

포기

남미 여행을 하면서 조급하고 다혈질적인 성격을 고쳐보려고 노력하였다. 남미에서는 아무것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있어야 할 것 같은 건 없고, 없어도 될 것 같은 건 있다. 그리고 대체로 각자 자기 페이스에 맞추어 급할 것 없이 살아간다. 그게 가끔은 나 같은 사람의 속을 뒤집어놓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느긋함이 부럽기도 했다. 물론, 나는 성격을 바꾸지 못했다. 30년 가까이 지녀온 내 성격과 성질을 바꾸기에 5주라는 시간은 지나치게 짧았다. 그래도 아주 조금은, 지나치게 조급해하거나 답답해하지 않고 내려놓는 법을 배우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점차 포기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여행에서의 포기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욕심내지 않고 여행지의 방식에 순응하며 관광이 아닌 진짜 여행을 하는 과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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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어

이렇게까지 영어가 안 통할 줄은 몰랐다. 나는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는 프랑스어, 제3외국어는 스페인어를 공부했다. 발음을 어렵게 굴려야 하는 프랑스어보다는 있는 그대로 발음하면 되는 스페인어에 더 큰 매력을 느꼈지만, 대학 때 프랑스어를 전공하게 되면서 스페인어와는 더 멀어지게 되었다. 그래도 늘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학원에도 다녀보고 독학도 해보고 회사에서 제공하는 무료 강의도 들어보곤 했다. 늘 초급 수준에 머물렀지만, 그렇게라도 간간히 공부한 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여행을 하는 동안 스페인어가 조금 늘기도 했다. 특히 엄마랑 병원에 다니면서. 역시 언어는 현지에서 배워야 하나보다. 한국 돌아가면 꾸준히 공부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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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

성인이 되고 나서, 특히 직장생활을 하면서부터 나이 드신 분들에 대한 편견이 생겼다. 대부분 꽉 막혀 있다고, 새로운 걸 받아들일 마음도 없고 자신이 살아온 방식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고. 물론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자신들이 밟아온 '평범한' 절차를 따르지 않는 젊은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 편견은 이번 여행으로 인해 싹 사라졌다. 나이 상관없이 열정을 가진 분들, 현실적 문제로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잊지는 않고 사는 분들, 그렇기에 내 꿈과 불확실한 미래까지 이해해주고 응원해주신 분들과 함께하며.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엄마

여행 초반에 알레르기로 인해 입원하는 등 엄마가 너무 고생을 많이 하셔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괜히 같이 오자고 했나 미안하고 후회되기도 했다. 그래도 중반부터는 점차 몸도 좋아지시고 활기차지셔서 안심이 되었다. 엄마와 둘이서 한 달 넘게 여행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것도 남미를 말이다. 다시 한번 큰 행운이고 행복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두고두고 반복할 이야깃거리들을 많이 만들었다. 아빠도 함께 하셨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나중에 두 분이 다시 함께 가신다고 하니 그때 두 분 만의 추억을 많이 만드셨으면 좋겠다. 분명 힘들고 피곤하셨을 텐데 묵묵히 따라와 준 엄마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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