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34 - 미국 뉴욕(New York City)
남미 대륙을 떠나는 비행 중 키토 공항에서 리마 공항까지는 엄마와 함께 왔지만, 이제는 갈라져야 했다. 나는 마이애미를 거쳐 뉴욕으로, 엄마는 LA를 거쳐 인천으로. 내 항공편이 엄마 항공편보다 1시간 일러서 내가 먼저 비행기에 탑승하게 되었다. 엄마와 웃으며 인사하기는 했지만, 앞으로는 온전히 혼자라는 생각에 아쉽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다. 둘이 있으면 훨씬 편리한 일들이 많기 때문에 이후 힘들 때마다 '누군가와 함께 여행하고 있었다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다음 목적지는 남미보다 여행하기 훨씬 편리한 북미였고 그 첫 지점이 바로 뉴욕이었다는 것이다. 마이애미 공항에 도착한 순간부터 나는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이제 그 지긋지긋한 스페인어는 들리지 않고 알아들을 수 있는 영어만 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조금은 편안해진 마음으로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비행 노선이 동부 해안을 따라 올라가는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예뻤다. 하늘과 바다가 구분되지 않아 시원했다. 마치 뻥 뚫린 내 마음처럼.
새로운 도시에 도착한 날 당일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다. 너무 아침 일찍 도착해 숙소 체크인이 불가능한 경우가 아니라면 웬만하면 숙소에서 쉬는 것을 선호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행지에 도착한 순간부터 떠나는 순간까지 매일 열심히 돌아다녀도 피곤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는 편도 5시간 이상인 곳이면 비행기 또는 기차 탑승만으로도 지쳐버린다.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인지 회사생활로 인해 몸이 축 났다는 증거인지는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은 쉴 수가 없었다. 중요한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남편과 함께 약 1년 반 정도 살던 친구를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친구가 이틀 뒤에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어서 반드시 그날 만날 수밖에 없었다. 신기한 건, 그 친구가 1년 반 전에 뉴욕으로 출국한 날, 나는 2시간 뒤 아이슬란드로 휴가를 떠날 예정이었어서 출국 직전 공항에서 만나기도 했었다는 사실. 이번에는 내가 하루만 늦게 도착했어도 못 만났을 텐데, 참으로 다행이고 신기하다.
우리 가족은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미국에서 잠시 살았었는데, 그때 뉴욕에 여행 간 적도 있다고 한다. 나는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으니, '여행 간 적이 있다'가 아니라 '간 적이 있다고 한다'가 맞다. 그럼에도 나는 한 번도 뉴욕이 궁금했던 적이 없다. 여행지로는 늘 대자연을 느낄 수 있는 지역을 선호했고, 뉴욕과 같은 대도시는 그 복잡함이 막연하게 싫었다.
그러나 33일간의 남미 여행 이후 도착한 뉴욕은 너무나도 멋졌다. 당시의 나에게는 뉴욕 같은 곳이 필요했던 것 같다.
언어 다음으로 가장 크게 변화를 느낀 것은 바로 화장실이었다. 돈까지 받으면서 어쩜 그렇게 더럽게 관리할 수가 있는지 믿을 수 없었던 화장실. 휴지도 없고, 냄새나고, 가방을 걸 곳도 없는 (99% 가방걸이가 있던 흔적은 있는데, 실제로 있는 곳은 없었다. 도대체 누가 뜯어간 건지, 일부러 뜯어낸 건지, 알 수가 없다.) 더럽고 불편했던 화장실. 뉴욕 와서, 아니 마이애미 공항 화장실에서부터 탄성을 질렀던 것은 화장실 칸 내 가방걸이였다.
두 번째는 와이파이. 휴대폰을 정지해놓고 여행을 출발했는데, 남미에서는 급할 때 엄마 휴대폰을 쓰면 됐지만(그런 일은 없었지만) 북미부터는 어찌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북미에 있던 43일 동안 나는 휴대폰을 그대로 정지상태로 두었음에도 불편함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뉴욕 도착 첫날, 숙소에 가기 위해 배낭을 메고 겨우 내린 지하철역에서 나는 1시간 가까이 헤맸다. 사전에 적어둔 주소가 정확한 주소가 아니었던 것이다. 메일로 보내준 바우처를 다시 확인했어야 했는데 갈라파고스에서 와이파이가 거의 안 되는 바람에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비까지 내렸다. 그러다 던킨도넛에서 와이파이가 되는 것을 확인하고는 거기서 숙소 주인에게 연락을 해 무사히 들어갈 수 있었다. 힘들고 지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기분이 좋았다. 어디든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진 것이다. 북미에 있는 내내 와이파이가 필요하면 언제든 카페나 패스트푸드점에만 가면 되었다. 사실 그 근처에 서 있기만 해도 되었다.
저녁에 친구를 타임스퀘어에서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식당으로 걸어가는데 친구가 기념으로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남미에서는 카메라를 목에 걸고 손목에 한번 더 걸어서 소매치기를 방지하며 다녔는데, 친구는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다른 사람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자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그렇게 건네줘도 되냐고 물었고 친구는 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도 한 듯 웃었다. 저녁 식사를 한 일식집에서도 나는 속으로 놀랐는데, 컵에 물이 담겨 나오는 것이 왠지 어색했다. 이 물은 돈을 낼 필요가 없는 거냐고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이번에도 친구는 웃었다.
1년 반 만에 만난 친구 덕분에 엄마와의 헤어짐으로 스멀스멀 올라온 외로움과 섭섭함이 금세 가라앉았다. 역시 고등학교 친구는 언제 어떻게 만나든 변한 것 하나 없이 집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바로 이틀 뒤 귀국이라 정리할 것들도 많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을 텐데 그럼에도 나를 만나러 나와줘서 고마웠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뉴욕에 온 내게 친구는 참고가 될만한 정보도 많이 주었고 맛집들도 추천해주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보다도, 낯선 곳에 홀로 도착한 첫날 함께 익숙한 저녁을 먹고 커피를 한잔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는 것만으로 큰 힘이 되었다.
# 사소한 메모 #
* 만남과 헤어짐에 익숙해져야 하는 그 어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