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42, 43 - 캐나다 토론토 (Toronto)
2017.03.15, 16
나이아가라에서 토론토까지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버스로 2시간이 걸리기에 버스 회사 중 하나인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예약해두었는데, 숙소에서 터미널까지 나를 태워줄 우버를 찾는 것부터 어려웠다. 오후 12시를 기점으로 갑자기 눈보라가 심해진 탓이었다. 겨우 탑승한 우버 기사는 나에게 토론토까지 안전하게 잘 가길 바란다고 해주었지만, 터미널에 도착해보니 이날 그레이하운드 버스는 모두 출발을 하지 않는다는 종이 한 장이 작은 터미널 곳곳에 붙어있었다.
직원에게 다시 한번 확인하고는 다음날로 예약을 변경해달라고 했다. 숙소로 어떻게 돌아갈 것인지, 방은 있을지 고민해보고 있는데, 다른 회사인 메가버스는 운행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직원에게 물어보니 메가버스는 운행을 한다고 했다. 그러면 좀 알려주지. 서둘러 메가버스 티켓을 구입했는데, 기존에 예약했던 그레이하운드 버스보다 10분 일찍 출발하는 버스였다. 그러나 티켓 구입을 하고 버스에 탑승하려는 순간, 그레이하운드가 운행을 재개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혹시나 하여 메가버스를 환불해줄 수 있느냐고 했더니 환불이 안 된다고 했다. 결국 더 일찍 출발하고 가격도 비쌌던 메가버스를 선택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차라리 그레이하운드를 환불해달라고 했더라면 해주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그날은 당장 버스에 탑승해야 해서 마음이 급했고 약 20분 동안 오랜만에 머리를 너무 많이 써서 그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계획 변경 없이 이동할 수 있었으니 그것만으로 다행이었다.
토론토로 향하는 길에는 눈이 꽤 많이 내렸지만, 다행히 토론토에 도착해보니 눈이 그친 상태였다. 내가 도착하기 전까지는 꽤나 따뜻했다는데, 갑자기 한파가 몰아쳐 추웠다. 그래도 눈이 오지 않는 것만으로 감사할 따름이었다. 나중에 보니 미국 동부는 전체적으로 휴교령이 내려졌다고 했다.
도착 첫날은 바로 숙소로 들어가 푹 쉬고, 다음날부터 여행을 시작했다. 여행 블로그들을 보면 대부분 1~2일 정도 머물다 가는듯해 보였는데 나는 3박 4일을 머물렀기 때문에 여유로웠다. 게다가 토론토 여행할 때 많이들 가는 토론토 아일랜드로 가는 페리는 겨울에 운행하지 않아서 (토론토 전경을 볼 수 있는 메인 아일랜드로 가는 페리는 운항을 하지 않는다.) 더욱 할 일이 적었다. 하지만 워낙 느긋하게 다녀서 3박 4일은 결코 지루하지 않았고, 만약 하루 이틀 더 있었다면 갔던 곳들을 한 번씩 더 가도 좋았을 만큼 예쁘고 편안한 도시였다.
사실 일정을 길게 잡았던 이유는 미리 끊어놓은 항공권 때문이었는데, 원래 계획으로는 토론토, 몬트리올, 퀘벡시티, 그리고 가스페 반도를 며칠 구경한 후 알래스카로 떠나려고 했었다. 하지만 겨울에 가스페 반도에 갈 수 있는 방법이 도저히 보이지 않아 (버스도 없고, 투어도 없고, 차 렌트만이 유일한 방법인데 나는 왕초보 운전자다.) 포기하고 대신 토론토와 퀘벡시티 일정을 조금씩 늘렸다. 나중에 퀘벡시티에서도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지만 이 여유로운 일정은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어쨌든, 첫날 푹 쉬었으니 둘째 날 힘차게 출발했다. 뉴욕에 머무는 동안 첼시 마켓에 가보지 않은 것이 조금 아쉬워서, 이번에는 마켓에 가장 먼저 가보았다. 세인트 로렌스 마켓은 실내에 있는 대형 시장인데 규모가 크고 식료품 등 파는 것도 많았지만 무엇보다 마켓 자체가 깔끔하고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이곳의 명물은 토론토 전통 음식인 피밀베이컨(Peameal Bacon)으로 만든 샌드위치인데 투박하게 생겼지만 맛이 좋았다. 베이컨이라기보다는 패티처럼 두툼한 고기가 여러 장 가득 들어있어 양도 많았다. 많이 먹다 보니 퍽퍽하기도 했지만 처음 절반은 굉장히 맛있게 먹었다.
세인트 로렌스 마켓에서 조금 걸어가면 오래전 증류주 공장이었던 곳을 탈바꿈시킨 디스틸러리 디스트릭트가 나온다. 지금은 예쁜 카페와 갤러리 등이 자리하고 있는 골목이 되었다.
역시 비수기라 그런지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참 예쁜 동네였다. 주얼리와 작은 소품들을 판매하는 가게들 몇 군데에 들어가 보았다. 근처에 산다면 자주 산책하고 구경하러 올 것 같은 곳이다.
디스틸러리 디스트릭트는 중심가에서 살짝 떨어져 있지만, 나는 시간이 많으니 시청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중간에 이튼 쇼핑몰도 구경했다. 알래스카 가기 전 필요한 물건들을 사려고 했지만 세일을 하지는 않아서 구입한 것은 없다. 다만 쇼핑몰이 너무 커서 한 바퀴 도는 데에만 시간이 꽤 걸렸다.
옛날 시청 건물과 현시청 건물, 그 앞의 아이스링크까지 구경하고는 온타리오 박물관 쪽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는 토론토 대학교도 보았다. 그렇게 천천히 걸어 박물관 앞에 도착하니 어느새 박물관 종료 1시간 전이되었다. 입장료가 꽤 비쌌는데 1시간만 보고 나오기는 아쉬워 그냥 보지 않기로 했다. 피곤해지기도 했고 바람도 세차게 불어 가끔씩은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지경이어서, 어두워지기 전에 들어갔다.
저녁으로는 블랙빈 소스에 양념한 중국식 랍스터 튀김과 구운 야채를 먹었다. 한국인이신 게스트하우스 주인분이 포장해다 주셔서 오랜만에 굉장히 푸짐한 한 끼 식사를 했다. 서양식 중국음식을 좋아하는 편이라 특히 더 맛있게 먹었다. 추위에 오들오들 떨던 지난 며칠을 보상받는 식사처럼 느껴졌다.
다음날, 가장 먼저 간 곳은 카사 로마(Casa Loma)였다. 고대 성 같이 생겼는데 대저택이다.
내부는 어딘가 모르게 익숙했는데, 색감이나 구조가 특별하지는 않아서 그냥 그러려니 했다. 나중에 보니 엑스맨 시리즈에서 영재학교의 내부 복도를 이곳에서 촬영했다고 했다. 엑스맨 말고도 수많은 영화들을 곳곳에서 촬영했는데, 내가 본 영화는 엑스맨뿐이어서 아쉬웠다. 지하에서는 여러 영화 속 카사 로마의 모습을 영상으로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기도 했다.
봄방학이라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 많아 사람도 많았고 프로그램 진행으로 인해 들어갈 수 없는 방들도 몇 개 있었다. 그렇지만 여행을 길게 하니 이런 일이 생기면 아쉽기보다는 가끔 다행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전부 다 구석구석 구경하기란 쉽지도 않을뿐더러 체력적으로도 지치는데 이렇게 먼저 못 본다고 막아주면 오히려 감사할 때도 있다.
볼 수 있는 곳들만 봐도 구경하는 데에 시간이 꽤 걸렸다. 수많은 방들은 물론이고, 하인들이 이용하던 비밀통로, 지하 터널 등 숨겨진 장소들도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집안 곳곳 주인이 어떤 마음으로 신경을 쓰고 꾸며놓았는지 느껴져서, 나중에 재정문제로 호텔로 만들어 팔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문을 읽었을 때에는 마음이 짠해지기도 했다.
카사 로마 구경 후 켄싱턴 마켓으로 향했다. 이 사진은 내가 토론토에서 찍은 사진들 중 가장 좋아하는 사진인데, 마켓으로 가는 길에 토론토의 상징인 CN타워도 보이고 트램도 보여서 얼른 찍은 것이다. 사람들은 트램 때문에 복잡한 토론토의 하늘을 싫어한다는데, 나는 오히려 저게 더 사람 사는 것 같아서 좋았다.
켄싱턴 마켓은 우리나라 홍대와 비슷하다고 했는데, 그런 분위기는 맞지만 그렇게까지 활기차지는 않았다. 겨울이라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짧은 구경 후 먹은 것은 김치 프라이. 베트남 음식을 주로 파는 한 아시아 패스트푸드점에서 판매하는 음식이다. 감자튀김에 마요네즈, 그리고 볶은 김치가 올라가는 이상한 음식이다. 그런데 한 입 먹는 순간 너무나 이상하게 맛있었다. 음식 재료들이 전혀 조화롭지 않을 것 같았는데 볶은 김치의 아삭함이 감자튀김의 식감과도 잘 어울리고, 김치가 적당히 마요네즈의 느끼함을 잡아주어 정말 맛있었다. 오히려 함께 주문한 베트남식 샌드위치인 반미는 그리 맛있지 않아서 김치 프라이를 다 먹고 반미는 남겼다.
배불리 식사를 마치고 카페에서 일기를 쓰다, 하버프런트로 걸어 나왔다. 원래는 루프트탑 바에 가서 야경을 보려고 했으나 해가 그리 일찍 지지 않아서 그 시간까지 기다릴 자신이 없었다. 날 따뜻할 때 다시 올 거니까, 그때 토론토 아일랜드에 가서 토론토의 야경을 볼 거니까, 이날은 그냥 하버프런트에서 CN타워 및 토론토의 마천루들을 구경하다 들어가기로 했다.
사실 3박 4일이라고 해도 첫날과 마지막 날은 이동하는 날이니 이틀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그 짧은 이틀 동안 나는 토론토의 은근한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 특징적인 한 가지는 없지만, 열 가지 은은한 것들이 있는 도시였다. 수도인 오타와 보다 더 수도 같은, 캐나다의 뉴욕 같은 도시지만 뉴욕보다 덜 복잡했고 편안했다. 현대적이기만 할 줄 알았는데 과거와 현재가 적절히 공존하고 있고 또 다양한 문화가 한 데 어울려 있음을 순간순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나중에 다시 가서 토론토 아일랜드에도 꼭 가보고 싶다.
# 사소한 메모 #
* 사랑에 빠지는 것은 언제나 순간이다. 사람이든, 여행지든.
* ♬ Frances - Say It Ag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