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40, 41 - 미국/캐나다 나이아가라 폭포(Niagara)
2017.03.13, 14
북미 대륙에 한파가 몰아치고 있었다. 이미 뉴욕에서 눈을 맞고 칼바람도 경험했지만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아침에 버스를 타고 나이아가라로 향하는 길, 점점 더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눈발이 세지고 있어 슬슬 걱정이 되었다.
8시간 동안의 장거리 버스에서 내려 나이아가라 폭포로 가는 시내버스로 갈아탔다. 그런데 겨울이라서 그런지, 나이아가라 폭포로 향하는 관광객은 나 말고는 없었다. 같이 탑승한 몇 명은 동네 주민인 듯했다.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나이아가라 폭포는 세계적인 관광지인데.
내려서는 분위기가 더 음산했다. 도무지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가 있는 동네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거리에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버스 기사가 내가 벨 누른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1~2 정거장 지나서 세워준 탓이리라 생각했지만, 폭포에 가까워지면서도 풍경은 변하지 않았다. 캐나다로 국경을 넘는 레인보우 브릿지에 이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겨울에는 사람들이 나이아가라를 찾지 않는 이유를.
관광객이 하나도 없으니 어느 다리를 어떤 게이트를 통해 건너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 조그마한 면세점에 들어가 물어보고 나서야 다리를 건널 수 있었다. 다리 위에서는 바람이 더 심하게 불었고, 온몸과 배낭에 눈이 내려앉았다.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 국기도 세차게 휘날리고, 렌즈에는 눈이 묻어 초점도 흐릿하다.
배낭 메고 다리를 건너며 바라 본 폭포. 안개 때문에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물소리의 크기로 그 규모를 상상할 뿐. 우선 서둘러 다리를 건너 캐나다 입국 사무소에 들어갔다. 직원이 배낭 메고 다리 건너기 힘들지 않았냐고 해서 무겁기도 하지만 날씨가 너무 안 좋아서 힘들었다고 했더니 무슨 소리냐고 오늘 날씨 무척 좋다고 했다. 아마도 이 동네의 겨울은 만만치 않은가 보다. 하지만 동시에 그 직원은 오늘 밤에는 눈 폭풍이 온다며 경고해주기도 헸다. 짐 검사도 없이 위험한 물건을 지니고 있는지 물어보기만 하고 입국심사가 끝이 났다.
숙소에 짐을 두고,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다시 나왔다. 다행히 눈이 거의 그쳐 가고 있었다. 동네는 하나의 놀이공원처럼 이것저것 많이 꾸며져 있었는데 관광객이 없어 크고 요란한 조형물들과 네온사인들이 오히려 분위기를 더 스산하게 만들었다. 성수기 때 이곳에 사람이 가득 차 있는 상상을 하니 웃음이 났다.
저녁 식사를 하고 폭포의 야경을 보러 걸어가 보았다. 폭포에 색색의 불을 비추어준다고 해서 시간 맞추어 간 것이었다. 이걸 보기 위해 온 사람은 나를 제외하고 4명이 있었다. 그중 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엄마는 옆에 혼자 서 있던 다른 사람에게 혹시 불이 몇 시에 켜지는지를 물어보고 있었다. 그 사람이 모르길래 내가 다가가 8시 반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렇게 눈보라를 뚫고 나이아가라를 찾은 사람들끼리 불이 켜진 나이아가라를 보며 조곤조곤 수다를 떨다 흩어졌다.
불빛을 비추니 그래도 낮보다는 폭포의 형태가 조금 더 잘 보였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아메리칸 폭포(American Falls)랑 호스슈 폭포(Horseshoe Falls) 두 개로 나뉘는데 호스 슈가 조금 더 규모도 크고 멋지다. 히지만 이날은 어둠을 뚫고 그 위까지 올라갈 자신이 없어 먼발치에서만 보았다. 그쪽으로 갔었으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을 마주칠 수 있었을까.
사람도 없고 물소리만 들리는 공간. 불빛들만이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계속해서 다양한 색으로 변해 추운데도 쉽사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눈이 생각보다 많이 내리고 있었다.
폭포를 다시 보려고 나가보았는데 전날 다리를 건너올 때와 비슷한 날씨였다. 아니, 그보다 더 날이 어둡고 눈이 많이 오고 있었다.
그래도 호스슈 폭포를 가까이에서 한 번쯤 보기는 해야 하니까, 거센 눈발을 맞으면서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눈은 빠른 속도로 쌓여 시야뿐 아니라 걸음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눈이 더 쌓이기 전에 서둘러 보아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확실히 아메리칸 폭포보다는 규모가 큰 호스 슈 폭포였다. 이름처럼 말발굽 모양으로 휘어져있었다. 중간 부분에 안개가 가득 껴서 아쉽지만, 양옆만 봐도 규모가 굉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쪽에는 관광객들이 꽤나 보였다. 스무 명 정도 수준이었지만 전날 밤에 비하면 상당한 인파였다.
폭포에 물안개가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눈보라 때문에 전체적으로 전망이 뿌얘서 아쉬웠다. 날이 맑았다면 더 멋있었을 텐데. 그래도 이과수 폭포를 본지 몇 주 안 지났을 때라서 그런지 나에게 나이아가라 폭포는 굳이 또 가고 싶지는 않은 곳이다. 좋은 시기에 가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인 이과수 폭포 (브라질/아르헨티나 국경)
그렇지만 이렇게 큰 규모의 세계적인 관광지가 극 비수기일 때 어떤 모습일지를 볼 수 있어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여름에는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들 것이고 유람선, 헬리콥터 등의 다양한 액티비티를 하기 위해 끝없는 줄이 서 있겠지. 하지만 겨울에는 폭포 혼자 외로이 물을 흘려보낼 뿐이었다.
오전 구경을 마치고 점심식사 후 숙소로 돌아갔다. 짐을 들고 버스 터미널에 가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눈발이 급격하게 거세졌다. 나를 태우러 온 우버 기사는 날씨가 미쳤다면서 토론토까지 무사히 잘 가라고 기원해주었다. 하지만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발견한 건, 오늘 모든 버스가 운행 중단되었다는 안내문이었다.
# 사소한 메모 #
* 성수기는 단순히 휴가철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 눈은 좋지만 눈 때문에 무언가를 못하게 되는 것은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