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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lker Nov 27. 2015

내가 사랑한 MMO들 2.

에버퀘스트

리니지 이후 몇 가지 게임을 더 거치면서 저는 자연스럽게 온라인 게임에 친해졌고, 그 결과 게임회사에 취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회사를 다니면서는 게임라이프가 더 풍성해졌습니다. 주변의 많은 이들이 저 같은 게이머였으니까요. 그런 분들과 다양한 게임들에 대해 얘기하던 중 제 귀에 유난히 와서 박히는건 에버퀘스트라는 게임이었습니다. 이 게임이 그렇게 재밌다더라구요. 에버퀘스트를 해보려고 생애 최초로 해외 배송을 주문했습니다. 당시 북미는 인터넷 사정이 그렇게 좋지 못해서 대용량 게임을 온라인으로 다운받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죠. 그렇기에 그런 서비스는 아예 제공하지도 않았었고요. MMORPG임에도 패키지를 구입해서 CD를 넣고 인스톨해야했습니다.


지금처럼 해외배송이 빠르던 시절이 아닌지라 예쁘게 포장된 에버퀘스트가 제 손에 들어오기까지 몇 주 정도가 걸렸던 것 같네요. 물건이 도착하길 기다리는 동안 저는 이런저런 에버퀘스트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이 게임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흥미로운건 ‘탱커/딜러/힐러’라는 구성을 통해 나오는 파티플레이 시스템이었습니다. 지금은 이게 굉장히 보편화되어서 너무나도 자연스럽지만 당시의 저는 무척 생소하고 이질적으로 느껴졌어요. 사냥을 혼자서 못한다니 불편하겠는데? 근데 그게 더 재밌어? 왜? 어떻게? 궁금했지만 직접 해보기 전까지는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패키지를 받고, 게임을 깔고, 접속해보았습니다. 무려 3D로된 MMORPG라니 굉장했죠. 요새는 게임 내 소품 오브젝트로도 쓰지 않을 초 로우폴리곤 모델의 캐릭터였지만 그때는 엄청난 임팩트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기대했던 대망의 파티플레이! 파티플레이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단순하게 보면 리니지에서 무기와, 방어구와, 물약이 하던 일을 각기딜러, 탱커, 힐러가 나누어서 할 뿐인건데 이렇게 재미있을거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한편으론 언제나 새로운 사람들과 수다를 떨 수 있다는 것도 꽤 흥미로웠어요. 리니지에선 늘상 혼자서 사냥을 해야 했기에 고독함과의 싸워야만 했었다면, 에버퀘스트에서는 파티플레이를 해야만 사냥이 가능하고, 그렇기에 누구나 파티플레이를 하고, 파티플레이를 하다보니 수다를 떨 여지도 많아졌던거죠. 따라서 에버퀘스트를 플레이하며 처음 보는 사람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건 아주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일이었습니다.


파티는 낯선 사람들과 하는게 보통이지만, 만났던 사람들을 또 만나는경우도 생각보다는 종종 있었습니다. 어차피 비슷한 레벨대의 사람들이 모여들기 마련인지라 비슷한 지역에서 사냥을 하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보면 자주 보게 되거든요. 그리고 그렇게 여러 번에 걸쳐 파티를 함께 하다보면 조금씩 더 친해지기 마련이죠. 저는 결국 어떤 길드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자주 파티플레이를 같이하던 분들은 모두 같은 길드 소속이셨는데, 몇 차례에 걸친 파티플레이를 통해 서로 어느정도 알게되자 길드로 초대를 해주시더라구요. 마침내 저는 길드라는 커뮤니티에 가입하게 된 것이죠. 그리고 그 과정에서 파티플레이는 굉장히 큰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파티플레이를 통해 사람들을 알게되었고, 그 사람들을 통해서 커뮤니티에 가입하게 된 것이니까요. 저라는 개별플레이어와 길드라는 커뮤니티를, 파티플레이라는 일종의 게임 내 장치가 연결해 준 것이죠.


이 과정이 제게는 큰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플레이어와 커뮤니티라는걸 생각없이 받아들이다가, 에버퀘스트를 통해서 ‘플레이어가 커뮤니티에 가입한다는건 그냥 그렇게 물흐르듯 되는 일이 아니다’라는걸 깨닫게 되었죠. 개별 플레이어들을 커뮤니티에 이어주기 위한 구체적인 장치가 게임 내에 필요했습니다. 에버퀘스트의 파티플레이 시스템이 바로 그것이었구요. 


생각해보면 리니지는 커뮤니티를 바탕으로 돌아가는 부분이 큰 게임이긴 한데, 개별플레이어들을 커뮤니티로 이어주는 장치가 존재하지 않았어요. 플레이어가 커뮤니티에 가입하는 과정은 어떻게보면 거의 플레이어 개인의 의지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었죠. 제 경우는 다행히도 게임방 단골 형들이큰 도움이 되어주었지만, 혼자서 리니지를 시작한 사람들이 탄탄한 커뮤니티에 닿는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일겁니다. 에버퀘스트에서는 파티플레이가 그러한 역할을 해주고 있었습니다.파티를 통해 자연스럽게 아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렇게 알게된 사람들과 반복적으로 만나면서 서로를 점점 더 알아가고, 그 과정에서 길드라는 커뮤니티에 접점이 생기는거죠.


리니지와 에버퀘스트의 이러한 차이, 즉 ‘개별 플레이어를 커뮤니티로 이어주는 장치 유무’라는 차이를 저는 각국가별 문화적 배경의 차이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꽤 덜해졌지만 한창때 우리나라에서 게임방 문화라는건 아주 강력하고 위력적인 것이었죠. 많은 이들이 게임방에 모여서 왁자지껄하게 소리지르며 게임하는걸 즐기곤 했습니다. 게임을 통해 서로 알게된 이들이 오프라인에 모여서 밥이든 술이든 하며 서로얼굴을 익히는건 크게 이상한 일도 아니었구요. 게임방은 말하자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게이밍 라이프의 연결고리가 되어줄 수 있었죠. 그리고 이러한 연결고리는 개별 플레이어와 게임 내 커뮤니티를 이어주는데 있어서 일종의 보완 역할도 할 수 있었구요. 강력한 게임방 문화가 있었기에, 플레이어와 커뮤니티의 연결고리가 게임 내부에 있어야 할 필요가 크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반면에 에버퀘스트의 중심인 북미권에서는 이런 문화라는게 있을 수가 없습니다. 서로간의 거리가 너무나도 머니까요. 미국 서부에 사는 어떤 게이머가 동부에 사는 다른 길드원을 만나기 위해서는 비행기를 타고 서너시간을 날아가야하는 곳에서 ‘언제 식사나 함께 하시죠’라는 문화는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게임 내에서 커뮤니티를 커버해 줄 구체적인 장치들이 필요했고, 마침 에버퀘스트의 파티플레이가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었던게 아닐까요? 


이렇게, 저는 에버퀘스트를 통해서 ‘개별플레이어와 커뮤니티를 연결해주는 구체적인 게임 내 장치의 필요’에 대해서 알게되었습니다. MMORPG라는게 단순히 커뮤니티를 만들어놓으면 플레이어들이 알아서 모여들어 노는 시대는 지났고, 여러 서로 다른 플레이어들이 친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묶어주는 요소들에 대해 고민해야만 한다는거죠.


그리고 저는 또 다른 형태의 커뮤니티를 접하게 되는데 … 다음편은다크 에이지 오브 카멜롯에 대한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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