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elker Jan 04. 2016

내가 사랑한 MMO들 3.

다크 에이지 오브 카멜롯

에버퀘스트에서 파티플레이와 레이드를 신나게 즐기는 와중에 새로운 게임의 런칭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다크 에이지 오브 카멜롯(Dark Age of Camelot), 줄여서 흔히 ‘다옥’이라고 하는 게임이었죠. EQ는 무척 재미있었지만, 철저하게 PvE 게임이었습니다. PvP가 가능한 서버가 있긴 했지만 게임 자체가 PvE를 중심으로 짜여진 지라 그닥 큰 의미를 가진 요소는 아니었죠.다옥은 PvP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었습니다. 파티플레이, 탱딜힐, 레이드 등 EQ의 기본적인 PvE 요소들을 모두 가졌으되 여기에 본격적인 PvP 를 도입한 게임이었죠.


물론 저는 혹했습니다. 365일 24시간 PvP라니. 게다가 리니지에서 익숙해진 – 알고보니 이름만 같을 뿐 크게 다른 것이었지만 – 공성전까지! 냉큼 구입했죠. 시작부터 달랐습니다. 진영이라는걸 고르라더군요. 진영별로 종족도 다르고 클래스도 다르고… 하지만 막상 플레이를 시작하니 중저렙 구간에서는 EQ와 그닥 다르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파티를 찾고 사냥터에서 사냥을 하는 나날이었죠.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면, 때때로 사람들이 어딘가로 우르르 몰려가는게 자주 눈에 띄었다는 것. 길다랗게 펄럭이는 망토를 휘날리며 단체로 말을 달리는 모습이 굉장히 멋있어 보였습니다. 파티원에게 물어보니 대답해주더군요. 국경지대에서 다른 진영의 플레이어들과 전투가 벌어지면 많은 이들이 우리 땅을 지키기 위해 저렇게 달려간다는 얘기였습니다. 저거구나.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당장 달려갔습니다. 매우 썰렸습니다. 전 아직 저렙이었으니까요. 역시 만렙을 찍고 가야 … 드디어 만렙이 되었습니다. 전장에 우뚝 서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홀로 망토를 펄럭이며 국경지대로 달려나갔습니다. 또 썰렸습니다. 잊으셨군요. 이게임은 파티플레이 중심이라는 것을. 혼자서 전선에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일단은 파티에 들어가야죠.


아무튼 이렇게 다옥에서 저의 전장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소수의 아군으로 다수의 적을 급습하여 모조리 쓸어버렸을 때의 짜릿함, 그 과정에서 목격한 광역 메즈의 공포, 스텔서에게 순삭당했을 때의 당황, 대규모 인원이 모여 거대한 회전을 벌일 때의 스펙터클, 렐릭 호위팀에 속했을 때의 긴장감 등등, 다옥은 제게 광기에 가까운 흥분으로 가득한 게임이었습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미드가드여 영원하라를 외치고 다녔죠. 미드가드란 다옥의 세 가지 진영 중 하나의 이름입니다. 알비온, 하이버니아, 미드가드의 세 진영이 서로 적대하거나 때로 연합하여 다른 진영을 견제하는게 다옥의 구도였죠. 


생각해보면 저는 다옥과 비슷한, ‘진영’ 개념을 가진 다른 게임을 이전에 플레이했던 적이 있습니다. 헬브레스라는 게임인데요, 한국에서 만들었고, 엘바인과 아레스덴이라는 두 진영으로 나뉘어 서로 싸우는 구도였습니다. 인기는 많지 않았지만 헬브레스도 꽤 재밌긴 했어요. 그러나 다옥만큼은 아니었습니다. ‘진영’이라는 그때는 보기 힘들었던 개념을 채용한 것은 두 게임이 모두 비슷한데 왜 다옥은 오래도록 해도 여전히 재미있고 헬브레스는 잠깐 하다가 말았을까? 저는 둘 사이의 차이가 어디서 생기는지를 고민했던 적이 있는데, 사실 이건 고민거리도 아니었습니다. 이유가 꽤 명확했으니까요.


헬브레스에는 진영은 나뉘어져있지만 그에 걸맞는 컨텐츠가 없었습니다. 제가 이 게임을 그만 둔 이후에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모르지만 제가 하던 시절의 헬브레스는 진영이 나뉘어있고 서로 싸우되 그게 전부인, 별다른 컨텐츠가 주어지지 않는 게임이었습니다. 그냥 매일매일 리니지식으로 솔로잉 사냥을 하다가 내키면 중립지역에 가서 상대방 플레이어를 공격하곤하는, 그 공격이 성공하더라도 대단한 보상도 주지 않는 게임이었죠. 물론 여러 사람들이 몰려다니며 서로를 공격하면 그건 그거대로 재미있긴 했지만, 언제나 결국은 그게 다였죠. 서로 몰려다니며 싸운다. 끝. 


다옥은 달랐어요. 국경지대에 나가면 여러 성들이 있고, 각 성을 점령하면 일정한 메리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다수의 성을 차지하면 상대 진영 렐릭 성의 보호를 약화시킬 수 있고, 적 진영의 렐릭 성으로 침투하면 그곳에서 렐릭을 탈취, 우리편으로 가지고 옴으로써 아군에 큰 이익을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서로 간보기 하면서 중간지대의 성을 빼앗고 빼앗기다가, 기회를 봐서 한꺼번에 치고 들어가 렐릭 성을 털고 렐릭을 들고 나옵니다. 그걸 우리편 성까지 옮기는건 또 다른 일이죠. 그 사이에 상대방이 어떤 작전으로 어디에서 우리를 차단하려할지 모릅니다. 제3의 진영이 불시에 나타나서 우리가 다 해 놓은 밥을 빼앗아 먹으려 할 수도 있구요. 다양한 상황들이 쉴새없이 변화하도록 만든게 다옥의 진영간 전쟁 (렐름전)이었습니다.


다옥과 헬브레스의 중요한 차이는, 단순히 진영을 갈라놓았을 뿐만이 아니라 진영이라는 커뮤니티를 받쳐주기 위한 컨텐츠가 잘 구비되어 있는가하는 점이었죠. ‘진영’이라는 커뮤니티 구분에는 그에 맞는 컨텐츠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파티에도 길드에도 각 커뮤니티의 규모에 맞는 컨텐츠들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파티플레이를 위한 사냥터들과 인스턴스 던전, 파티 단위로만 진행이 가능한 퀘스트들, 길드 단위가 되어야만 도전이 가능한 각종 레이드 및 리니지의 공성전 등이 그 예입니다. 진영이라는 커뮤니티가 있다면, 그 커뮤니티를 유지하게 할, 플레이어들이 이 커뮤니티를 활용하게 만들 컨텐츠가 필요했던거죠. 헬브레스는 그게 약했습니다. 다옥은 그게 강했구요. 


다옥의 진영 구도는 워낙이 강력했기에 이후의 다양한 게임들에 크게 영향을 미치게되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호드 vs 얼라이언스), 아이온(천족 vs 마족), 리프트(디파이언트 vs 가디언), 스타워즈 구공화국(제다이 vs 시스) 등 진영 구도를 택하고 있는 mmorpg는 굉장히 많습니다. 이들 모두 다옥 이후에 나온 게임들이죠. 그들 모두에게 진영 구도의 강력함을 각인시킨 것은 진영 그 자체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진영 시스템을 뒷받침하는 진영간 컨텐츠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옥을 통해서, 커뮤니티에는 각기 그 커뮤니티에 걸맞는 컨텐츠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을 배웁니다. 그리고 다음 이야기는 대망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로 … 

작가의 이전글 내가 사랑한 MMO들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