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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oon Jan 06. 2017

당신이 누구든 어디를 여행하든

여자들의 여행, 그 시작에 대하여  


혼자 하는 여행이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여행은 혼자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많은 여성들이 세계여행을 꿈꾸게 했던 여행작가처럼 낯선 곳을 홀로 헤매는 여행자가 멋있게 보였다. 단체 패키지 여행자나 한국인이 많이 가는 곳을 찾는 여행자와는 다른 부류로 보이고 싶었다. 실제로 지금까지 대부분의 여행은 혼자 떠났고, 혼자라서 더 자주 더 오래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익숙함에도 불구하고 혼자 하는 여행이 불편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여행 중에 ‘여성’인 나의 성별을 끊임없이 인식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다. 모든 여행에는 낯선 곳이 주는 불편함과 긴장감이 존재한다. 치안이 불안정한 곳에서는 모든 여행자가 안전의 문제에 민감해져야 한다. 하지만 여성 여행자는 ‘여성’이라서 남성 여행자는 겪지 않는 불편하고 위험한 일을 자주 겪게 된다. 특히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고 성차별이 심한 국가에서 외국인 ‘여성’ 여행자는 언제 어디서나 성폭력에 노출된다. 자신이 속한 곳을 떠난 여성은 보호받을 가치가 없고 누구나 접근 가능한 성적 대상으로 간주하는 이들은 도처에 널려있다. 문화적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거나 혼자 여행을 떠나는 여성이라면 당연히 조심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말은 무책임하고 무지하다. 차라리 여자 혼자 여행을 가지말라고 하는 편이 더 솔직해보인다. 


인도여행자의 바이블이던 여행기를 쓴 남성 시인에게 인도는 명상과 해탈의 성지이자 거리의 성자들이 사는 곳이다. 나에게 인도는 여행하는 동안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가장 피곤한 여행지였다. 거리, 시장, 로컬버스, 극장, 박물관 어디서든 튀어나와 몸을 더듬는 손들을 경계 해야 했고, 밤마다 부실한 숙소 문고리에 자물쇠를 채우고 작은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라 깨어나곤 했다. 

  

여행은 온전히 자신의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즐거움을 얻고자 하는 여가 행위이다. 흔한 소매치기, 소소한 도난사고 당한 사람에게는 여행의 기분을 한순간에 망쳐버리는 중대한 사건이다. 하물며 항상 성적 폭력에 노출될까 전전긍긍해야 하는 상황에서 여행이 즐거울 수가 있을까. 심지어 내가 이런 스트레스를 받으려고 여행을 떠났나 하는 자괴감마저 든다. 여자는 언제든지 혼자 여행을 떠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여자 혼자 하는 여행은 때때로 위험하고,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불편함을 감수하거나 돈을 더 많이 써야 한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혼자하는 여행이 멋져보이지 않았다. 


경계를 넘는, 여성들은 외롭다      


몇 년 전에 태국 치앙마이에서 거주한 적이 있었다. 로컬디렉터로 사회적 기업의 레스토랑을 오픈하고 운영했던 일 년 동안 하루하루가 고된 노동과 긴장의 연속이었다. 밤늦게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베란다에 앉아 맥주를 홀짝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앞도 뒤도 깜깜한 산이었어요 

 

그런 밤에는 한국에서 함께 일한 이주여성이 출국을 앞둔 나를 걱정하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베트남 어촌마을에서 자란 그녀는 남편이 살던 강원도 산골에서 한국생활을 시작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첩첩산중인 그 곳이 너무 낯설고 무서워서 밤마다 울었다고 했다.한국을 떠나온 나는 그제서야 경계를 넘어온 그녀의 외로움에 공감할 수 있었다. 그랬구나, 이렇게 막막하게 외로웠겠구나...또 다른 많은 그녀들도 깜깜한 산을 보며 울었겠구나..


새로운 삶을 추구하는 여성들이 더 많이 더 자주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다른 세상을 향하는 길이 열리기 시작할 때부터 여성에게 여행은 세상에 대한 도전이자 자신의 미래를 위한 선택이었다. 국경, 인종, 종교, 심지어 자신의 한계까지 뛰어넘어야 하는 여행은 언제나 두렵고 외로운 법이다. 용감한 여성들은 지금도 우리 곁에서 지구 곳곳에서 자신의 여행을 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그 순간을 공감하고 함께 할 수 있다면 그녀들은, 우리들의 여행은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여성들과 함께 하는 여행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것이 여행여락의 시작이었다.   



'여행여락’은 여성 여행자를 위한 여행커뮤니티로 2017년에 만들어져 현재 100여 명의 여성들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다양한 세대의 여성을 위한 국내·해외 그룹 여행과 페미니즘과 여행 포럼, 여행잡지 발간, 아카이빙 프로젝트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by 허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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