낳은 정과 기른 정
얼마 전 남편이 인터넷에서 읽은 사연 하나를 들려주었다. 맘카페에 올라온 사연이 여러 사람의 공분을 사서 소셜 네트워크 등으로 확산된 듯했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간추려 보면, 이미 아이가 있는 한 여성이 계획하지 않은 쌍둥이를 임신했는데 남편이 앞으로 낳을 쌍둥이 중 한 명을 오랫동안 난임으로 고생하는 형님네 보내자고 제안했다는 내용이었다. 남편은 웃으며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거야?"라고 물었다.
"무슨 소리야. 당연히 안 되지."생각의 과정을 거치기도 전에 즉각적인 반응이 튀어나왔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지만 사실 두 세대 정도만 거슬러 올라가도, 심지어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 세대에도 비슷한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아들을 못(?) 낳은 큰 집에 (제사를 지내줄 수 있는) 작은 집 아들을 양자로 보내거나 경영 승계를 받게 하기 위해 (왜 아들만 경영 승계를 받아야 하는지 지금으로선 이해가 가지 않지만) 작은 집 아들을 큰 집에 보내는 이야기. 과거 우리의 조부모님, 부모님들은 지극히 한정된 자원으로 많은 아이들을 건사해야 했고, 그에 따라 피치 못하게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대상이 되기 위한 1차 조건은 ‘남자’였고, 2차 조건은 '맏이'였다. 부모들은 ‘맏아들’이 잘 되면 어떻게든 집안을 일으켜 동생들을 건사할 거라고 '착각'했으므로, 배우는 것, (치사하지만) 먹는 것까지 맏아들에 집중했다. 거기에는 형제들이 낳은 '아기(사람)'마저도 예외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물건처럼 주고받는다는 건 내 가치관으로는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문득 얼마 전 혼자 했던 엉뚱한 상상 하나가 떠올랐다.
진부한 드라마나 영화 속 단골 주제, 주로 막장 드라마의 주요 소재로 채택되는 ‘아이 뒤바뀌기.’ ‘내가 키우고 있는 아이가 실은 뒤바뀐 남의 아이라면…?’에 대한 나의 답은 언제나, 속은 상하겠지만 그래도 ‘일은 바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였다. 나와 내 남편의 유전자를 고대로 가지고 있는 내 ‘진짜’ 아이를 데리고 오는 것이 너무나도 단순하고 당연해 답을 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이를 낳기 전의 생각이었다.
얼마 전 동일한 가정을 해 보았을 때, 나는 여전히 답을 생각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달라진 점은 이번에는 상상 속 글자로만 존재하던 추상적인 아이 대신 솜털이 보송보송한 내 아이가 머릿속에 성큼 자리를 잡았다.
그 아이가 ‘가짜’ 라면…? 아역 모델만큼 예쁘고, 주머니 속 송곳처럼 두드러지게 똑똑한 아이가 ‘진짜’ 우리 아이라면? 장차 그 아이는 대단한 무언가가 될 운명이라면? (그러니까… 스티브 잡스처럼?)과 같은 로또에 가까운 가정을 해도, 아이를 낳기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내 답은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 내 곁에, 내 품에 있는 아이가 내 아이다. 우리에게 왔으니 우리의 운명이며, 우리의 생물학적 친아이도 따뜻한 가정 안에서라면 잘 자라줄 것이다. 그것이 그 아이의 운명이다. 대체 무언가를 ‘바로잡는단’ 말인가. 유전자가 같은 아이를 되찾겠다고 엄마가 여전히 제 우주의 전부와도 같은 아이를 내게서 떼어 놓는다면 이 아이는 정상적으로 자라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나 또한 제정신으로 살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그러니까, 이 아이가 내 ‘진짜’ 아이이다.
좋은 문학이나 예술은 소재가 아니라 그 소재를 다루는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가 그 좋은 예이다.
성공한 비즈니스맨 료타는 어느 날 병원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6년 간 키운 아들이 자신의 친자가 아니고 병원에서 바뀐 아이라니. 화목했던 중산층 가족은 한순간 혼란에 휩싸인다. 개인적으로 특히 인상에 남은 장면은, 아내 미도리가 료타에게 상처 받고 실망하는 부분이었다. 부부가 키운 아들은 사랑스럽고 귀여우나 아빠와 같은 승부욕은 없다. 무르고 여린 아이이다. 미도리는 어쩌면 이제야 퍼즐이 맞추어지는 기분을 느끼는 듯한 남편에게 서운함을 토로한다. 실제로 가난한 집에서 자란 친아들은 훨씬 더 활달하고 똘똘해 보인다.
나는 나의 남편도 료타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확신)했다. 남편은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들에게 매력을 느낀다. 아이를 낳기 전에도 농담처럼 ‘아빠를 닮아 머리가 좋아야 할 텐데’라는 말을 자주 했다.
이번엔 내가 남편에게 물었다. 영화에서처럼 아이가 바뀌었다면 어떻게 할 거야?”
우리가 함께 산 지 어느새 십 년이 다 되어간다. 이제 남편이 어떤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할지 거의 예상이 된다. 남편은 감정의 진폭이 크지 않고 예측 가능한 사람이라 남편의 반응을 예상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번 질문에 대한 남편의 대답은 지난 십 년 여간의 우리 관계에서 내가 남편에게서 느낀, 가장 큰 반전이었다.
나는 낳은 정보다는 기른 정이라고 생각하는데?
내 예상을 가장 크게 빗나간 남편의 반전 이후 나는 내가 뻔히 다 안다고 생각했던 남편을 다시 바라본다. 예측 가능하다, 뻔하다는 말속에는 어쩌면 남편에게 정서적으로 기댈 수 없을 거라는 체념과 불만이 숨어있었는지도 모른다. 임신, 출산, 육아 내내 남편의 지원을 많이 받지 못했던 나는 이 모든 과정이 결국은 혼자 감당해야 하는 일 같아 외로웠다. 남편과 나, 아이 셋이 아니라 나와 아이 둘만 남은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많았다.
똑똑한 유전자를 물려받아야 세상 살기가 편하다고 그렇게도 외치던 그가 우리와 생물학적 유전자가 100% 일치하는 친자가 나타나더라도, 심지어 그 아이가 머리가 아주 좋은 영재라 하더라도 지금의 우리 아이를 선택할 거라는 말이 왜 그렇게 큰 위안이 되고 기분이 좋은지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고백 이후 나는 더 이상 아이와 둘만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이 들지 않는다. 핏줄로 이어졌지만 우리 셋을 견고하게 연결해주는 것은 핏줄이 아니라는 사실에 이상하게 마음이 든든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