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을 청하는 연습

혼자서 무너지지 않고 도움 청하기

by 은세유


얼마 전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나를 살리는 관계'라는 책을 보았다. '타인에게 의존하면 나약한 사람이 되는 걸까? 도와달라고, 도와주겠다고 손 내미는 순간 삶이 행복해진다'라는 발문이 내 눈과 마음에 꽂혔다. 그건 분명 나를 향한 말이었다.

폐 끼치는 게 싫다.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도움을 청하기가 어렵다.

내가 발견한 나의 특징 한 가지다. 지난 3년 여간의 육아가 유독 힘들었던 이유도 그러한 내 성격 때문인 것 같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본의 아니게 폐를 끼칠 일이 자주 발생한다. 비행기에서 아이가 울기 시작했을 때 바로 일어나 아이를 달래며 기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고개 숙여 죄송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지 못해 아이를 안은채 (실제로) 발을 동동 구르며 아이를 달래는데, 이미 초등학생 즈음되는 의젓한 남매를 둔 아이 어머니가 "힘드시죠?"하고 먼저 말을 걸어왔다. 울듯한 목소리로 "죄송합니다"하며 고개를 푹 숙이니, "에이 우리 애들은 더 심했어요" 하고 되려 위로한다.


남편이 밤 11시, 12시가 되어서야 퇴근할 때가 많았으므로 기본적으론 독박 육아였으나 엄마나 어머님이 종종 아이를 봐준다고 하실 때가 있었다. 그런데 나는 아이가 예민하고, 엄마 껌딱지에, 이유식을 먹이려면 한 시간씩 걸리니 그 고생을 선뜻 남에게 맡길 수가 없었다. 온 가족이 모여 밥을 먹을 때, 엄마나 어머님이, 때로는 언니가 아이 밥을 먹여 주겠다고 해도, 내가 할 테니 식사들 하시라고 다른 이들을 배려했다. 그들은 어쩌다 한 번이고, 나는 매일 같이 밥 한 숟가락 제대로 입에 넣기가 어려웠던 시기였다. 도움을 받아도 괜찮은 시기, 도움을 받아야만 했던 시기였다.


'나를 살리는 관계'의 머리말 '혼자가 낫다는 착각'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도움을 청하는 것 자체가 무능("난 내 애도 볼 줄 모르는 사람이야!")이나 태만("내 문제를 내가 해결할 기력도 없어!")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하지만 자기에게 쏟아지는 그런 판단들이 아니더라도 어떤 이들은 유독 남에게 의지하기를 주저한다. 그들은 타인에게 기대는 것이 연약함이나 예속의 표시라고 생각한다.


대학 입학 후 용돈은 스스로 벌어 해결했다. 과외를 3-4개씩 한 적도 있지만 성적은 중상위권을 유지했다. 부모님에게 '의지'하지 않고 똑 부러지게 자립해야 제대로 된 자식 노릇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중고등학교 때도, '학원을 많이 다니거나 과외하지 않고도 알아서 공부 잘하는 딸'이 되려고 했다. 결혼할 땐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내가 모은 자금으로 결혼하는 딸, ' 그리고 아이 낳고 나서는 '엄마 고생시키지 않고 스스로 자기 아이를 책임지는 딸'이 되고자 했다. 누가 그렇게 시키거나 스스로 큰 결심을 한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다.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는 말, 사실일까?

공부나 취업과는 달리 육아는 혼자서 잘하기에 어려운 성격의 과제였다. 나 혼자 책상에 앉아하는 공부와는 달리 아이와 '함께' 하는 일이므로 아이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어찌어찌 혼자 감당해낸 후에도 성취감 대신 외로움이 몰려왔다. 이 책에 나오는 말처럼, 남에게 기대다가 약해지면 안 된다는 두려움 때문에 외로움이라는 한층 더 약한 상태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과 굳이 관계를 맺어 공동육아를 하고, 시답지 않은 수다를 떠는 일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었다. 동일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무한한 위로와 힐링이 된다는 걸 다행히도 금세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내가 사는 이 집을 지어준 사람과, 내가 아침에 마시는 차를 재배한 사람, 내가 출근할 때 타는 차를 설계한 사람, 차를 타고 달리는 도로를 건설한 사람들과...

혼자 산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때로는 기대고 때로는 내 어깨를 내어주며 살다 보면 세상이 좀 더 넓고 따뜻해진다는 것을, 조금 더 느리고 불편할지는 모르나 조금 더 많이 웃으며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그래서 이제야 조금 더 마음의 문을 열어보려고 한다.





얼마 전 엄마가 콩나물 한 박스를 집에 가지고 와서는 조금만 덜어주고 간다는 걸 깜빡 잊고 다 두고 가버렸다. 무지막지한 양이었다. 급한 대로 야채 박스에 넣어보니 야채 박스 전체가 콩나물로 가득 차서 다른 과일이나 채소를 넣을 자리조차 없었다. 심란했다. 곧 여행으로 집까지 비워야 하는데, 저걸 대체 어찌한담. 누구한테 나누자고 하기에도 애매했다. 값비싸고 좋은 과일이라면 선뜻 연락해보겠는데 기껏 콩나물을 주겠다고, 일면식만 있는 동네 사람들에게 연락하려니 주저되었다. 상대 또한 곤란하면서도 거절하지 못할 것 같아서, 더더욱 이건 아니다 싶었다. 엄마한테 '이거 싱싱한 건 맞냐, 누구 줘도 욕먹는 거 아닌 건 맞냐'등을 재차 물어보니 부피를 줄이려면 삶아서 버리라고, 너무 아까워하지 않아도 된다며, 내 마음의 짐을 덜어주려고 애썼다.


갑자기 요즘 잘 나간다는 '당근 마켓'이 떠올랐다. 다시 한번 냉장고 문을 열고, 야채 박스를 꺼내, 콩나물 상태를 확인했다. 꽤 싱싱하긴 했다. 평소 슈퍼에서 사는 것보다도 상태는 좋아 보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뭐 이런 걸 다 올리냐고 욕먹으려나 걱정하며, 글을 남겼다.


콩나물 나눔

엄마가 콩나물 한 박스를 가져오셨는데 도저히 다 먹을 수가 없을 것 같아 나눔 하고 싶습니다. 혹시라도 필요하신 분 계실까 싶어 올려봐요. 가져가실 분 없으신 것 같으면 글 내리겠습니다.


디딩! 채팅 창이 열렸다.

글 올린 지 30초도 채 되지 않았는데...

'짠순이'님: '감사합니다. 어디로 가면 받을 수 있을까요?'

바로 또 디딩! '어디쯤이실까요? 안 그래도 어제 콩나물 사러 갔다가 떨어져서 못 사고 돌아왔네요'

또 디딩! '나누어 주시면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오예! 당장 가지러 올 수 있다는 동네 분께 많이 필요하신지 물으니 쌍둥이 아이들이 좋아해서 많이 주면 좋다고 하셨다. 최소 3-4명에게 나눠줘야겠다고 생각했던 양인데 딱 두 분께 아주 푸짐하게 담아 나눠드렸다.



이게 바로 책에 나온 '긍정적 상호의존'! 그들은 싱싱한 콩나물을 공짜로 가져갔고, 나는 콩나물 처치에 대한 부담을 덜고 나눔의 즐거움을 누렸다. 다음날 오전, 우리 집 앞으로 콩나물을 가지러 온 동네 아주머니는 조그만 지퍼백에 담긴 수세미를 건네시며 '솜씨가 부족해 잘은 못 만들었는데 제가 만든 거예요' 하셨다.


홀로서기만 중요한 줄 알았던 나는 지금부터라도 '잘 기대는 법'을 배우려고 한다. 혼자 무너져 버리기 전에 도움을 청하고, 상대의 손을 잡고 일어서는 연습을, 이제라도 시작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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