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낳으라는 말속에 담긴 무심함 혹은 폭력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의 고통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한다. 보통은 굳이 알려고 하지 않고, 알아도 무시한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의 고통은 '말'이고 '글'이고 '생각'일 뿐 내 살갗에 닿는 '실재'는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고통이 자신의 살에 통증처럼 와닿는다면, 나는 그에게 다른 사람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자격을 주고 싶다. 이를 테면, 작가가 될 권리 같은 거랄까.
얼마 전 아버님 칠순을 기념하여 직계 가족이 모였다. 양가 친척들을 모두 초대해 식사 한번 대접하고 싶다고 하셨지만 코로나 시국으로 아쉽지만 단출하게 아버님과 어머님, 시누, 우리 세 가족이 근교에서 1박 2일을 머물기로 했다. 일이 너무 바빠 대화할 시간도 없는 남편을 대신해 아버님 성함이 새겨진 칠순 플래카드를 인터넷에서 주문 제작하고, 파티용 풍선을 잔뜩 사서 작은 서프라이즈 파티를 준비했다. 사실 나서는 일에는 서툰 편인데 몇 년 전 아이 유산으로 아빠 칠순에 참석하지 못한 것을 만회라도 하겠다는 듯이 이상하게 적극적이었다. 그래도 누군가를 위해, 누군가를 깜짝 놀라켜주기 위해 (물론 좋은 쪽으로) 무언가를 준비하는 건 언제나 즐겁고 설레는 일이었다.
아버님은 생각보다 더 좋아하셨다. 억지로 시간을 내서 하는 수 없이 참석하는 사람들과 섞여 있는 것보다 온전히 아버님의 칠순을 축하해주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이니 더 밀도 높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저녁을 먹고 아이를 재운 뒤 어른 다섯 명이 모였다. 아버님은 가족 각각에 당부의 말씀을 하셨다. 아이 고모에게는 언제나처럼 '결혼은 해야 한다. 나이 들어 어쩌려고 그러냐. 올해는 실망시키지 않으리라 믿는다.'로 시작하셨다. 그다음은 우리 부부 차례였다. '너희가 알아서 할 일이지만 둘째 생각을 해라. 꼬야에게도 그게 좋다.' 갑작스러운 둘째 이야기에 얼굴이 굳어지는 게 느껴졌다. 좋은 날이니 내색하지 말자, 마음먹었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들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냐.”
평소 우리 일에 이래라저래라 크게 간섭하지 않으시고, 집안의 대소사는 거의 어머님이 챙기는 편이라 아버님이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우리에게 무언가를 권유(또는 요구)한 건 드문 일이었다.
사람들이 부부나 남편을 향해 '아이 낳아라' '둘째 가져라' 말하는 걸 볼 때면, 나는 그들이 아이 낳는 일을 물건을 사거나 이사 가는 일 정도로 착각하는 게 아닌가 의아하다. 아이를 낳는 '결정'은 부부가 하는 것이지만 낳는 '행위'는 온전히 여성의 몫이다. 당연히 이 의사결정에 가장 크게 고려되어야 할 사람은 여성이고 아이의 엄마가 될 사람이다. 보통은 아이를 낳은 후 인생의 변화를 가장 크게 겪는 사람도 남성보다는 여성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그 여성을 배제한 채 자기들끼리 논의를 이어간다. 어머님도, "둘이 좋긴 하지. 둘은 있어야 돼." 하고 동조하다가 그제야 내 눈치를 보며 "근데 얘가 너무 힘들었어서 그렇지... 그래도 힘든 건 잠깐이고..."라며 말끝을 흐린다.
세상 일 대부분은 예측 불가능하며 그걸 받아들이며 사는 게 인생이라는 걸 깨달은 건, 어리석게도 서른을 훌쩍 넘긴 후였다. 몇 안 되는 세상의 진리를 뼈아프게 깨닫게 된 계기가 내게는 임신이었다. 어릴 때부터 마르고 체력이 좋진 않았지만 큰 병치레 없이 컸고, 특히 생리 주기는 놀라울 정도로 정확했으며, 고등학교 땐 생리통도 전혀 없었다. 엄마는 아이 셋을 숨풍 숨풍 낳았다. 내가 난임이나 불임을 겪으리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결혼하고 일 이년은 신혼을 즐기다가 이제 아이를 좀 가져볼까 했을 때, 생각보다 빨리 되지 않아 가벼운 마음으로 난임 병원을 찾아갔다. 둘에게 큰 문제는 없으나 시험관이 확률이 높을 거라고 병원에서 권했고, 그때부터 얼떨결에 기나긴 난임과 유산의 과정이 시작됐다. '얼떨결에'였으니 망정이지 그 과정을 모두 알았더라면... 섣불리 시작할 수 있었을까.
마침내 지금 내 곁에 붙어 있는 엄마 바라기 지방이 임신에 성공했지만 곧 끔찍한 입덧에 시달렸다. 입덧을 하면 조금 속이 울렁거리기도 한다더라, 어떤 사람은 그럴 때 구토를 하거나 음식을 못 먹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오히려 입맛이 당겨 소위 '먹덧'을 하기도 한다더라, 하는 말은 여기저기서 들었으나 내 입덧은 듣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굉장히 독한 술을 밤새도록 먹고 난 후의 아침. 몸을 일으키지도 못할 정도로 속이 울렁거리고 어지러운 숙취가 계속됐다. 깨어있는 내내 통통배 위에서 철렁이는 파도를 온몸으로 느끼며 바다 한가운데서 뱃멀미를 하는 기분이었다.
심한 숙취를 겪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그 상태에서 '뭔가'를 하기란 쉽지 않다. 음식만 보면, 아니 누군가 음식을 먹는 모습만 봐도 욕지기가 올라왔다. 우리나라 방송 중 '먹방'이 그렇게 많은지 그때 처음 알았다. TV를 틀기가 겁났다. 처얼렁 처얼렁 대는 바다 위에서 집중력을 발휘하여 책을 읽는다거나 영화를 보는 것은 아무래도 불가능했다. 몸을 웅크린 채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하루가 빨리 갔으면 좋겠다. 언제 밤이 될까." 하고 생각했고, 밤이 되면 "드디어 밤이다. 제발 빨리 잠들게 해 주세요."하고 기도했다. 문득, '이것이 끝이 있는 고통이라는 걸 알지 못한다면 나는 과연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 하는, 가톨릭 신자가 할 수 있는 가장 불경한 생각을 했다. 길지 않은 생각 끝에 '아마 아닐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없고, 도움이 되기는커녕 생산적인 활동은 하나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친정 방 안 침대에 외롭게 내린 결론이었다.
16주가 지나면 모두 괜찮아질 거라는 인상 좋은 산부인과 선생님의 말씀대로 거짓말처럼 그때 즈음 고통이 사라졌다. 역시, 끝이 있는 고통이었다.
작년 가을, 젊고 유망한 코미디언이 자살했다. 그것도 관계가 아주 좋았던 엄마와 함께 한 동반자살이었다. 평소 피부병을 앓았는데 햇볕을 볼 수도 없고, 화장을 할 수도 없으며, 먹을 수 있는 음식도 크게 제한되었다고 했다. 게다가 치료 경과도 좋지 않았다고 했다. 그 기사를 보고 처음 든 생각은,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 젊고 긍정적인 사람이 어떻게 저런 결정을... 다른 뭔가 있을 거야...'였다. 그러다 문득, '아프고 고통스러웠다'는 말이 꽂혔다. 나의 입덧 시절이 빠르게 플래시백 되며 나의 고통과 그녀의 고통이 잠시 겹쳐졌다. 불현듯 깨달음을 얻은 승려처럼 '아...'하고 탄식했다. 이젠 그녀의 선택이, 어머니의 선택도, 이해가 갈 듯했다. '끝이 없는' 고통이라면... 하고 자문했던 내 모습과 그에 대한 내 결론을 떠올렸다. '치료에 차도가 없었다'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가 겪은 그것이 바로 '끝이 없는 고통'이었다면, 아무리 반짝반짝 빛나는 그녀라도 별 수가 없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가슴이 쓰렸다.
내가 60일 여간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아버님은 알지 못한다. '입덧이 심했다' 정도의 사실로만 알고 있을 뿐 옆에서 지켜보고 제대로 간접 경험을 해 본 건 아니다. 간접 경험을 했는데도 두 분이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면 아마도 나는 더 큰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임신부가 거식증 환자처럼 몸이 말라 가는 걸 보며 제대로 걷지도 못해 침대에 누워만 있는 나를 지켜본 우리 부모님은 내게 둘째 낳으라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으셨으니까. 그런데 내가 힘들었다는 말을 했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남편 때문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나는 많이 고통스러웠다고 고백한 적이 있는데도 남편은 둘째 낳으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허허 아직은 모르겠어요. 알아서 할게요. 생각해 볼게요." 하고 답한다. 그의 고려에도 '나'는 없다. 그의 대답에 '내'가 없다는 사실에 조금 슬퍼진다.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의 고통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한다. 보통은 굳이 알려고 하지 않고, 알아도 무시한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의 고통은 '말'이고 '글'이고 '생각'일뿐 내 살갗에 닿는 '실재'는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고통이 자신의 살에 통증처럼 와닿는다면, 나는 그에게 다른 사람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자격을 주고 싶다. 이를 테면 작가가 될 권리 같은 거랄까.
모든 사람이 소설가나 시인은 아니므로 다른 사람에게 내 고통의 시간을 '이해'해 달라는 무리한 요구는 하고 싶지 않다. 내가 실은 많이 아팠다고 떠들어대고 싶지도 않다. 어차피 크게 공감하지 못할 테고, 나보다 훨씬 아픈 사람들도 강인한 정신력으로 버텨주고 있으므로 나의 고통을 과장하고 싶지도 않다. 그렇지만 최소한 다른 사람의 고통을 '무시'하지는 말자. 내가 어느 재능 많은 코미디언의 고통에 대해 할 뻔했던 큰 실수를 저지르지 말자. 우리는 남을 이해하기는커녕 오해하고 있을 뿐이라는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우리가 남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