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야와 나의 지난 1년간의 적응기
아이를 낳고 3년 여간의 독박 육아를 마치고 4년 여만에 취업을 한 지 어느덧 일 년이 지났다. 직장은 대중교통으로는 답이 없으나 차를 가지고 출퇴근하기엔 좋은 위치에 있었다.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길도 많이 막히지 않고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초보 운전이라 겨울인데도 줄곧 손에 땀이 났다. 고속도로에서 시트를 거의 90도로 곧게 세우고 양손으로 운전대를 꼬옥 잡았다. 중간중간 손에서 난 땀을 옷에 닦았다가 다시 운전대를 잡곤 했다. 그 짧은 순간에 사고라도 날 세라 눈은 언제나 부릅뜨며 전방을 주시했다.
일은 생각보다 많았다. 입사하자마자 적응할 새 없이 당장 쳐내야 하는 업무들이 쏟아졌다. 낯선 IT 시스템도 적응이 쉽지 않았다. 공유 폴더 경로를 찾느라 헤매고, 계속 물어볼 수 없어 눈치 보는 시간들이었다. 오랜만에 집 밖으로 나가 내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설렘이 컸는데, 닥쳐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매일매일 긴장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나의 일 순위 걱정은 엄마 바라기 내 딸 꼬야였다. 아이도 어느덧 네 살이라 엄마가 없다고 무작정 울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여전히 엄마가 곁에 없으면 불안함을 느끼는 듯했다.
그런 아이를 친할머니 외할머니에게도 오롯이 맡겨 본 적이 많지 않은데 하물며 낯선 사람에게 맡긴다는 것이 조금 부담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친가와 외가는 거의 매주 번갈아가며 방문할 정도로 교류가 많았지만 아이만 두고 내가 외출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좋은'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에 밥이 목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시터 고용 사이트를 통해 공고를 올리니 생각보다 연락이 많이 왔다. 내가 먼저 연락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런 경우는 잘 연결되지 않았다. 이미 내가 올린 공고를 봤지만 거리가 멀거나 조건이 맞지 않아 연락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은 무슨 일이든 막막하다. 수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온 정성을 다해 손품 발품을 팔아도 어떤 정보를 취하고 버려야 하는지도 감이 잘 오지 않는다. 오랜 고민을 하다가 마침 우리 집 바로 근처에 사시는 60대 초반 이모님을 고용하기로 했다. 베이비시터 자격증과 경험이 있었다. 현재 사정상 혼자 사시는 데다 딸도 진작에 결혼했으며 서로 왕래가 거의 없어 시간이 아주 여유롭다고 하셨다. 음식도, 청소도, 너무 선 긋지 않고 도와주겠다고 하셨다. 시터를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던 분들 중엔 놀라울 만큼 고학력에 학원이나 학교 선생님 경력까지 있는 분들도 있었으나 나는 따뜻하게 아이만 잘 돌봐줄 수 있다면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집이 가깝고 시간이 많다는 게 큰 장점으로 받아들여졌다. 처음 시작하는 업무이고 회사이므로 나의 업무량이 어느 정도 일지 감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에 급박한 상황에 언제라도 지원이 가능한 사람을 뽑는 게 안전했다. 아이가 어린이집 하원을 하는 시점인 4시부터 8시까지 아이를 돌봐주시고, 저녁은 내가 출근하는 날은 아이와 둘이, 내가 재택 하는 날은 셋이 먹기로 했다.
면접을 보러 우리집에 처음 오신 날, 이모님께 3-4살 아이를 돌봐본 경험이 있냐고 여쭈어보았을 때 있다고 하셨다. 갓난아이가 하나 있고 4살 아이가 있는 집이었다고 했다.
내가 면접을 본 적이야 여러 번 있지만 누군가를 면접 본 경험은 거의 없었던 데다, 이런 류의 면접은 생전 처음이었으므로 무엇을 물어봐야 할지 몰랐고, 혹시 어떤 질문이 실례가 될까 많이 조심스러웠다. 무슨 일을 해주실 수 있는지, 사시는 곳은 어딘지, 급할 땐 추가로 일해주실 수 있는지, 시급으로 드리는 것이 괜찮은지 등, 인터넷에서 본 기본 질문들만 물어보았지, 정작 내가 파악해야 하는 중요한 부분은 놓쳤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이모님을 모시고 나서 아이와 셋이 적응하는 시간을 갖는 동안, 나는 이모님이 아이와 좀 더 친해지기를 바랐으나 이모님은 부엌 청소부터 하셨다. 이틀 만에 놀라울 정도로 깨끗하게 주방을 만들어 놓으신 건 물론이고 구조까지 보다 편리하게 바꾸어주셨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눌수록 뭔가 대화가 조금씩 빗나가고, 핀트가 안 맞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말씀드리는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셨다. 출근하는 날에는 분명히 가장 위칸에 있는 반찬들로 아이 저녁을 차려달라고 말씀드렸는데 깜빡했다며 엉뚱한 데에서 반찬을 꺼내 주시거나, 반찬 만들어 놓은 게 남아 아깝다며 어제 먹었던 반찬을 임의로 또 주시기도 하셨다. 나는 같은 반찬을 여러 번 먹어도 아이에게는 매 번 새로운 반찬을 먹이려고 냉장고 가장 위칸에 항상 준비해 놓고 가도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었다.
무언가 말씀을 드리면 "네에" 하시고는 다른 행동을 하실 때가 많았다. 어른의 말도 그러한데 아이의 말은 당연히 이해하기가 더 어려웠을 것이다. 아이는 엄마 아빠나 어린이집 선생님들처럼 자기가 하는 말을 착착 알아주지 못하는 이모님과 소통하지 않으려고 했고 나중에는 싫다며 거부했다. 이모님은 타고난 살림꾼이셨지만 아이와의 소통은 전혀 하지 못하셨다. 아이가 그림을 그리면, 종이가 아까우니 여기에만 그리라는 등의 말씀만 하셨다. 아이는 자기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낯선 할머니가 엄마와 자신만의 공간에 들어와 엄마 역할을 대신하려고 하는 것에 큰 거부감을 보였다.
내가 하는 일은 주로 독립적인 업무라서 정시 퇴근이 가능했다. 일을 더 해야 하면 다른 사람들과의 협업 없이 밤이나 주말에 하는 식으로 스스로 메꿀 수 있었으므로 퇴근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3개월쯤 일을 해보고, 시터를 고용해 보니 이제야 내가 무엇에 중점을 두고 시터를 구해야 하는지 명확해졌다.
- 업무 시간은 4-8시 대신 4-6시 반(재택 시), 4-7시 반(출근 시)이 가능하신 분 (어려우시다면 4-8시도 괜찮음)
: 재택 하는 날에도 매번 8시까지 이모님과 함께 있는 것이 아이도 나도 오히려 힘들었다. 8시는 너무 늦은 시간이라 당연히 저녁 식사도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지만 은근히 이모님 반찬 챙기기도 신경이 쓰였다. 괜찮다고는 하시지만 어른들은 필수라고 생각하시는 김치, 국 등을 조금씩은 준비하려고 하니 부담이 되었다.
- 집안일 전혀 안 해주셔도 되니 아이를 예뻐하시고 잘 놀아주실 분
: 모든 일이 그렇듯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전에 하원 도우미를 구한다며 '아이도 돌보며, 반찬도 좀 해주고, 집안 일도 해달라'는 구인 공고를 낸 엄마를 비판하는 댓글들을 본 적이 있다. 짧은 시간에 그 많은 걸 모두 할 수 없다는 건 엄마들이 더 잘 알 것이다. 나는 전에 이모님께도 청소 신경 쓰지 마시고 아이 관련 장난감 정도만 정리해주십사 요청드렸는데 워낙 깔끔하신 스타일이라 계속해서 청소를 하셨다. 그런데 내가 3개월간 이모님과 함께 생활해보니, 내 몸이 조금 힘들어도, 그러니까 내가 반찬을 다 챙기고 집 청소도 해야 한다 하더라도, 아이하고만 좋은 관계를 맺어줄 수 있는 분이라면 그 정도 희생은 감수하겠다는 확신이 섰다.
새로 만난 시터분은 전에 일하시던 이모님만큼 우리집과 가까운 곳은 아니지만 멀지 않은 곳에 거주하셨고, 이번에 둘째가 대학에 가면서 시간이 많아져 예전에 하던 아이 돌보기 일을 다시 하고 싶다고 하셨다. 훨씬 젊고 인상도 좋으신 데다 오래전이지만 유치원 교사 경험도 있으셨다. 유아 교육과를 나오시고 두 자녀도 직접 성심껏 키우셔서 아이에 대한 이해가 높으셨다. 전에 이모님은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하면 그냥 피해버리거나 대꾸하지 않는 식이었는데, 이번 선생님은 왜 그런지 물어보고 잘못된 행동이라고 알려주었다. 아이가 장난을 치려고 하면, 이모님은 무조건 안 된다고 말했지만 선생님은 위험한 행동이 아니면 한번 해보라고 하거나 촉감을 느낄 수 있도록 만져보라고 말씀해주셨다. 적응 기간은 필요했지만 아이는 이제 선생님을 좋아하고 따른다.
나처럼 간절하게 좋은 분을 만나기를 희망하며 시터를 구하고 있을 아이 부모님들을 위해 내가 간과했던 부분들을 공유하고 싶다. 별건 아니지만 Tip이라고 해야 할까?
- 장점처럼 보이는 것이 단점일 수도 있다. 전에 이모님은 시간이 많다고 하셨다. 남편분과도 사정상 따로 사시고 하나뿐인 자녀와도 거의 연락하지 않는 듯하셨다. 나는 이 점이 큰 장점이라고 생각했는데 단점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가 다른 아이도 사랑해준다는 보장은 없지만 내 아이에게도 큰 애정이 없는 사람이 다른 아이를 사랑으로 돌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시터로 채용되기를 원하는 분들 중 자녀를 어디 어디 대학에 보냈다고 자랑하시는 분들의 의외로 많은데 나는 그런 조건에는 관심이 없지만 '자녀를 사랑으로 돌보았고 아직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하는 분이라면 마음이 갈 것 같다. 지금 시터 선생님도 그런 분이다.
- 사실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질문을 (무례하지 않게) 해야 한다. 4세 아이를 돌본 적이 있다고 하셨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1세 베이비시터를 돌보러 간 집에 4세 아이가 함께 살았던 것뿐인 것 같다. 심지어 할머니가 함께 사셨으므로 4세 아이의 돌봄은 할머니가 담당하셨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4살 아이와 어떻게 놀아주셨고 하원할 때는 어떻게 하셨는지 구체적으로 여쭈어보았을 것 같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잡을 얻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그 거짓말을 밝혀내는 건 채용하는 사람의 능력이자 의무이기도 하니까 제대로 된 질문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 내가 원하는 니즈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나는 처음 나가는 직장이라 상황을 알 수 없어 3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내 상황을 알게 되었으나 이미 다니던 회사에 복직하는 분이라면 보통 몇 시에 퇴근을 하는지, 야근의 가능성이 얼마나 많은지, 집안일 도움을 얼마나 받고자 하는지 등에 대해 나보다는 구체적으로 예상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연히 내가 필요한 조건에 맞는 사람을 구체적으로 찾아야 성공률이 높다. 모든 관계가 그렇듯 서로 잘 맞아야 하는 거니까.
예전 이모님도 다른 집에는 최고의 시터가 될 수도 있고, 우리 집 시터 선생님도 다른 집에서는 원하지 않는 유형의 시터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두 분의 장점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 선생님은 생계가 급한 분은 아니셔서 짧은 시간 근무하는 걸 전혀 개의치 않으셨다. 아직 자녀들과 함께 사시고, 종종 친구들도 만나시기 때문에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반면 예전 이모님은 (대부분의 시터분들이 아마 그러실 것이다) 생계가 급하셨기 때문에 어쩌다 휴가를 쓰거나 재택을 많이 하게 되면 나도 눈치를 봐야 했다.
시급으로 페이를 지급할 경우, 휴가나 휴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많이 궁금했고, 그래서 여기저기 검색을 해봤더랬다. 서로의 동의 하에 시급제로 한 이상, 당연히 시터가 오지 않는 일은 페이를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시터를 구할 때 연락이 왔던 분 중 한 분은 ‘본인 때문에 일을 못한 날은 페이를 안 주셔도 되지만 우리 집 사정으로 일을 안 하게 된 날은 페이를 달라'라고 하시기도 했다.
나는 이렇게 한다.
- 내가 휴가를 내거나 가족 휴가를 갈 경우 최대한 미리 말씀드려 시터 분도 일정을 계획하실 수 있도록 해드린다. 이 경우 페이를 지급하지 않는다.
- 아이가 아프거나 코로나 상황 등으로 '갑자기' 가정 보육을 하게 되는 경우, 나는 거의 페이를 드린다. 수 시간 전, 심지어는 하루 전날 알려드린다 하더라도 이런 경우엔 웬만하면 드리려고 한다. 정해진 규정은 없고, 그냥 아이를 잘 돌봐주셔서 항상 감사하는 마음에 내가 정한 규칙이다. 선생님은 괜찮다고 정말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시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페이는 보장해드리려고, 최대한 편의를 봐드리려고 나도 노력한다.
서로 그렇게 노력하고 배려하니 일 년 전 걱정했던 머리 아픈 일들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마음과 마음이 통하니 많은 것이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내 사랑하는 아이를 사랑해주는 것보다 더 바랄 게 무엇이 있을까. 모든 부모의 마음이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부디 이 글이 시터를 찾는 분들께 아주 조금의 도움이라도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