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

나를 사랑해줘서 고마워, 아가

by 은세유

내년이면 어느새 다섯 살이 되는 내 딸 꼬야는 태어나면서부터 내게 집착을 보였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강도 높은 통증이라는 산통을 경험하며 꼬야를 세상 밖으로 내보낸 후 나는 꼬야와 잠시 헤어져 산부인과 입원실에 누워 있었다. 밤새 맞은 수액으로 얼굴과 몸이 퉁퉁 부어 거울 속 내 모습이 낯설었다. 9개월 여간 몸속에서 키워낸 이질적인 생명체를 몸 밖으로 밀어내고 나니 내 몸도 아직 정상이 아니었다.


신생아실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내려오면 아기를 만날 수 있고, 아직 아기에게 빠는 힘은 많이 없겠지만 애착 형성을 위해 젖을 물려볼 수 있다고 했다. 한 번에 산모 두 명씩 자신이 낳은 아기를 만나러 신생아실 옆 수유실로 들어갔다. 나처럼 몸이 부은 다른 산모 한 명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작은 인간 생명체들을 만나러 갔다. 간호사는 분명 신생아라 제대로 젖꼭지를 빨 수 없을 거라고 말했는데, 눈도 못 뜬 내 아가 꼬야는 악착같이 내 젖꼭지를 화악 깨물었다. 나오지도 않는 젖을 어떻게든 빨아 보겠다고 쪽쪽 힘을 주는데 머리가 핑 돌았다. 옆의 산모는 "아기가 젖을 잘 빠네요. 우리 아가는 안 빨아요."라며 부러워했지만 나는 순간 현기증이 나서 쓰러질 뻔했다. 간호사는 부드럽게 내게서 아이를 떼어내며, 회복도 안 된 상태에서 너무 강하게 젖을 빨면 산모가 어지러울 수 있으니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고 했다. 휘청 하며 몸을 일으켜 입원실로 돌아왔다.


돌이켜 보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에 대한 그녀의 집착은...


백일이 되기 전부터 엄마라는 존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사실 내가 엄마인지 누군지는 알지 못했겠지만 내 '품'을 인지한 건 분명했다. 벌써 낯가림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남편은 믿지 않았다. 내가 안았을 때 울음을 그친 건 단순한 우연일 거라고 주장했다. 남편은 우는 아이를 내 품에서 떼어내 아이를 안고 흔들며 달래 보았다. 꼬야는 소리소리를 지르며 울었고, 내가 다시 데려가 안자 울음을 뚝 그쳤다. 백일 즈음 되었을 때 출산 후 처음으로 친구들과 집 앞에서 저녁 약속을 잡았다. 독박 육아였으므로 말 그대로 삼 개월 여 만에 처음으로 진짜 세상으로 나가는 설레는 날이었다. 그날 밤... 꼬야는 아빠에게 '나 엄마 아는 거 맞다니까'라는 메시지를 정확히 전달했다. 남편의 SOS로 두어 시간 만에 집으로 뛰어들어왔을 때, 남편은 소위 멘탈이 거의 나간 상태였고 아기는 울고 있었다.


삼 년 여간 아이를 전담해서 돌보았다. 두 돌이 되기까지 꼬야는 자기를 끔찍하게 사랑해주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조차 쉽게 곁을 주지 않았다. 바쁘긴 했지만 자상하기 이를 데 없는 아빠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엄마가 1순위였으며, 엄마가 없으면 잠을 자지도 않고, 울며 불며 엄마를 찾았기 때문에 두 돌이 되기까지 마음 놓고 외출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 어린이집에 적응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엄마가 집에서 엄청 재미있게 놀아주시나 봐요. 엄마를 이렇게 좋아하니..." 어린이집 선생님은 웬만하면 달래 보려고 했으나 이 정도로 울게 두면 안 될 것 같다며 미안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그렇게 중간에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온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은 동전의 앞뒤와 같아서 아주 나쁘기만 한 일도, 아주 좋기만 한 일도 없다는 생각을, 나이가 들수록 자주 한다. 나에게 지나친 집착을 보여 내 인간관계와 커리어, 삶의 질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내 딸 꼬야는 요즘 내게 그간 울음으로 표현했던 자신의 사랑을 언어로, 몸짓으로, 눈빛으로 쏟아낸다.


"우리 엄마가 좋아. 우리 엄마가 최고야. 나는 우리 엄마가 좋아. 왜냐하면 우리 엄마는 제일 예쁘니까. 엄마도 나를 제일 좋아해...." 하며 자작곡을 작사 작곡해 불러주기도 하고, 밤에 자장가도 들려준다.


가끔은 밤잠을 자러 들어가지 않고 놀겠다고 떼를 쓰는데, 그럴 때면 아이 아빠가 "그럼 아빠가 엄마랑 코 자러 들어가야겠다." 하고 '협박'을 한다. 그럼 "안돼!"하고 어디선가 다다다다 달려와 나를 꼭 껴안고 놓아주지 않는다. 아빠가, "엄마한테 누구랑 자고 싶은지 고르라고 하자. 엄마는 아빠를 선택할 걸? "라고 하면 아이의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린다. '설마...' 하면서도 '혹시 정말 아빠를?' 하는 표정이다. 흔들리는 눈빛으로 내게 다가와 '엄마, 나 골라줘. 나 고를 거지?' 하고 ‘대놓고’ 속상인다. 이제 아빠와 아이의 구애가 시작된다. "나 골라줘 나!" 하며 아빠와 꼬야가 내게 애원하면 나는 아빠를 고르는 척하다가 꼬야를 꼭 안아준다. 이제까지 아빠를 선택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도 꼬야는 매번 떨리는 눈빛으로 간절하게 구애하고, 선택받은 순간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뻐한다.


아이와 방에 들어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눕는다. 아 참, 꼬야는 매일 우리가 함께 자는 토퍼에 포근한 이불을 깔아 놓고 짜잔~하고 내게 보여주는 것을 즐긴다. 매일 그렇게 나를 위해 따뜻한 이부자리를 깔아준다. 꼬야 뒤에 누운 나는 한쪽 팔은 위로 뻗고 다른 한쪽 팔로는 아이의 작은 몸을 꼭 감싸 안는다. 아이가 묻는다.


"엄마! 아까... 왜 나 선택했어?"

"꼬야랑 코 자고 싶어서 그랬지."

"나는 엄마가 아빠 선택하는 줄 알았어"


문득, 내가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있었던가 생각한다. 사랑은 자고로 내리사랑이라 아무리 자식이 부모를 위해도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들었는데, 그건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랐을 때의 이야기 같다. 지금까지 아이가 내게 준 사랑은 내 평생 누구에게도 받아보지 못한 큰 사랑이었다. 부모님도, 남편도, 순수했던 청소년기 어느 남학생의 짝사랑도 이 정도의 크기와 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아이에겐 내가 세상이고, 우주였을 테니까. 그런데 다섯 살을 앞둔 요즘, 부쩍 어린이집 친구들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한다.




태초에 꼬야의 세상 속 사람이라고는 한 명뿐이었다. 그러다 한 사람이 등장했다. '엄마'라고 했다. 아빠도, 할머니 할아버지도, 고모도, 이모도 아이의 세상에 성큼 들어와 환하게 웃었지만, 예민한 아이는 '엄마' 옆에 딱 붙어 있을 때만 안전하게 느꼈다. 그러다 서서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고모에게 다가갔다. 이제 그 세상 속에는 채경이, 이수, 선우도 들어와 함께 즐겁게 뛰논다. 그러니까 앞으로 내 자리는 점점 작아질 것이다. 나에 대한 관심도, 사랑도, 그리고 집착도... 그래도 수많은 사람들이 아이의 세상에 들어왔다 나가는 동안 나는 나무처럼 뿌리를 내리고 단단하게 서 있을 것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려 나의 존재가 눈에 띄지 않을 사춘기 시절에도, 많은 사람들이 훌쩍 떠나버려 공허하고 외로울 지 모를 삶의 어느 순간에도, 나는 그 자리에 버티고 서서 아이가 내게 준 큰 사랑에 보답하고 싶다.


고마워 아가, 나를 사랑해 주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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