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착(愛着) - 사랑과 집착 사이

너니까 사랑이다

by 은세유

사랑에 빠지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진다. 처음에는 나이가, 이름이, 사는 곳이, 직업이...그러다 그의 일상이, 일거수일투족이 알고 싶다. 아침에 일어나면 물을 먼저 마시는지 화장실을 먼저 가는지, 세수를 먼저 하는지 양치를 먼저 하는지, 아침은 먹는지 거르는지... 호감 있는 대상에 대한 이 정도 관심은 귀엽고 로맨틱하다. 어쩌면 사랑은 이렇게 시작되는 것일 지도 모른다.


그런데 만약 쌍방향이 아니라 일방적인 관심이라면? 아름다운 로맨스 드라마가 순식간에 스릴러 호러로 장르를 바꾼다. 아무 관심도 없는 누군가가 내게 '아침에 일어나 물을 먼저 마셨는지 화장실을 먼저 갔는지 말해 달라'고 강요한다면... 이건 스토킹이다. 범죄다.


사랑과 집착 사이, 요즘 내 관심사다. 나에 대한 네 살 딸아이의 애착은 사랑일까 집착일까? 아니면 그 사이 어디쯤일까.


아주 어릴 적부터 엄마에 대한 애착이 유독 강해 두 돌 가까이 거의 한 시도 내 곁을 떠나지 않았던 아이, 안정된 환경에서 어린이집에 잘 다니고, 친척들과 자주 왕래하면서도 한 번씩은 꼭 '엄마, 엄마' 하며 엄마에게 달려와 안겨 있다 떠나는 아이.



분리불안이 한창일 때 껌딱지라는 말은 너무 약한 것 같아 '지방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더랬다. '가긴 어딜까. 절대 못 가' 하며 내 몸에 딱 붙어 있었으니까.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낯선 사람이 오면 실제로 나한테 지방이처럼 붙어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비만 클리닉 광고 속 지방이처럼 생긴 것도 하는 짓도 너무 귀여워 떼어내고 싶다가도 결국엔 '이그 알았어. 이리 와' 하고 끌어안게 된다는 것이었다. 떼어내면 이젠 나도 너무 아플 것 같은 내 살점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거다.



프리랜서를 하며 아이를 키우다 보니 일과 육아, 살림 모두가 오롯이 '나의 일'이 되어 아침에 남편이 늦게 출근을 하는 날에도 어린이집 등원은 언제나 내 몫이었다. 마감이 빠듯한 날에도 남편이나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못했다). 아이가 자면 그때 일을 했다. 내게 큰 변화가 있지 않는 한 이렇게 굳어진 루틴을 바꿀 방법이 없을 것 같았다. 프리랜서 일의 양이 늘 일정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때마다 시터를 고용하거나 엄마나 어머님, 남편에게 시간을 좀 내달라고 당당히 지원 요청도 못했다. (이건 분명 내 문제이다. 나보다 멋진 프리랜서 엄마들은 자기 시간이 필요할 땐 당당하게 요구할 것이다. 그녀들을 지지하고 응원한다.)


올해 초부터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도 키우고 일도 할 수 있는 좋은 직업인데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했냐고 어머님이 의아해 하셨다. 실은 나는 그 반대로 생각했다. 아이도 잘 못 키우고, 일도 제대로 못하는 것 같았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아무 역할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것 같아, 보잘것없는 것 같아, 몸도 마음도 한없이 작아지는 것 같아, 그러다 내가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아...'라고, 충혈된 눈의 선한 남편에게 말하지 못했다. 언제나 내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지만 임신 시도 중 어려움을 겪은 언니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이 나이에, 코로나 시국에, 회사를 쉰 지 3여년이나 됐는데 운 좋게 취직을 했다. 틈틈히라도 일을 놓지 않은 덕분이었을 것이다. 아이가 있는 상태에서 출근을 하는 건 처음이어서 출근 전부터 긴장이 됐다. '자기를 끝도 없이 사랑해주는 양가 할머니들에게 마음의 문을 활짝 열기까지도 근 2년이 걸린 이 아이가, 나의 귀여운 지방이가 과연 나와 잘 떨어질 수 있을까'가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요즘 세상에 3년 내내 엄마 옆에서 호강했으니 이제 자립(?) 해도 된다'고, 선배 워킹맘이자 친한 친구가 축하와 응원의 인사를 건넸다.


'3년이면... 안정이 되지 않았을까. 교육학에서도 3년이 가장 중요하다던데... 이제 의사 표현도 말로 잘하고 어린이집도 좋아하니 괜찮을 거야.' 주문을 외웠다. 주문을 외운다는 건 불안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비가 올 확률이 99%면 굳이 기우제를 지낼 생각도 안 할 테니까. 출근을 앞두고 시터를 구하는 동안 타들어가는 마음처럼 몸은 점점 말라가고, 어릴 때 놀이터에서 타던 원심분리기 놀이기구 위에 올라탄 듯 세상이 핑글핑글 도는 듯한 어지럼증이 느껴졌다.


출근 후 삼 개월쯤 지나자 아이도 슬슬 적응을 하는 듯했다. 재택근무 덕에 평일에도 며칠은 아이가 집에 오면 맞아줄 수 있었고, 일찍 출근을 하더라도 퇴근 시간은 맞추려고 노력하여 매번 비슷한 저녁 시간에 아이를 만났다. 아이 목욕도, 잠을 재우는 것도 내가 했다.


그런데 얼마 전 갑자기 "엄마, 평일 안 왔으면 좋겠어"하며 울음을 터뜨리는 비상사태가 발생했다. "엄마, 평일 안 왔으면 좋겠어"를 이 주 동안 수십 번 이야기하다가 조금 안정된 어느 날 밤 잠자리에서 아이는 "엄마, 근데 엄마랑 헤어지는 게 싫어요" 라고 말했다. 평일 싫고 주말 좋다는 말을 시도때도 없이 반복할 때는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 좀 얘기해'라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다가 꾹 참은 적도 몇 번 있었는데 헤어지기 싫다는 정직한 고백에는 마음이 무너져 버렸다. 아이를 꼭 안았다. "꼬야가 엄마랑 헤어지기 싫었구나. 엄마도 꼬야랑 헤어지는 거 싫어. 그런데 꼬야야, 엄마랑 아침에 헤어지면 언제 만나지? 저녁이면 엄마가 와서 꼭 안아주는데? 헤어졌다가 금방 또 만나고, 또 만나고. 재택근무하는 날은 집에서 만나고, 주말엔 또 많이 만나잖아."


바빠서 아이가 자고 나서야 퇴근하는 경우가 다반사이지만 아이에 대한 사랑이 각별해 주말이나 시간이 날 때마다 신나게 놀아주는 아빠를 아이도 많이 좋아한다. 그럼에도 아빠는 반찬 같은 존재이다. 밥 없이 맛있는 반찬만 먹겠다고 할 때도 가끔 있지만 중요한 순간 (밤에 잠을 잘 때)엔 늘 밥을 찾는다.


엄마에 대한 애착이 심해 힘들 때도 있지만 그만큼 사랑 표현도 많이 한다. 자기 전 서로 얼굴을 맞대고 누우면 반달눈이 되어 웃으며 "더 가까이, 더 가까이"하며 자기 코가 내 코에 닿을 만큼 가까이 온다. 아이는 숨 냄새 조차 역하지 않고 부드럽지만 그래도 아이의 날숨을 계속 마시고 있으려니 갑갑할 정도이다. 새벽 잠결에 깨면 어김없이 "엄마 이리 와요"하고 나를 소환한다. 내 품이 느껴지기만 하면 금세 새근새근 잠이 든다.




내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절대적 존재'였던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어린 시절 꾹꾹 눌러 쓴 편지를 전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고백하던 남학생도, 만난 지 십여 년이 되었는데도 애정 어린 눈빛을 보내주는 사랑하는 남편도, 심지어는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도 나를 이만큼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걸 '사랑'이라는 말로 포장해버릴 순 없을 것 같아. 집착에 가까운 거 아닐까? 거위들이 태어나서 처음 본 무언가를 엄마로 인식하고 졸졸 따라다니는 각인 효과 같은 거 말야. 그러니까, 내가 아니라 누구라도 얘는 좋아하고 따르지 않았을까? 내가 나라서가 아니라 내가 그냥 그때 곁에 있었던 사람이라서.


"엄마 사랑해요." 하며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 하트를 만드는 깜찍한 아이의 사랑을 의심하며 나는 남편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물론 사랑이든 집착이든, 지금 이 순간 내 눈에 가장 아름다운 생명체가 조그마한 입술로 수줍게 고백하는 사랑은 언제나 내 모든 걸 녹여버린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이거 사랑 맞아?




결혼 전 나는 내게 너무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을 본능적으로 밀어냈다. 크게 한 걸음 다가오면 더 크게 두 걸음 물러났다. 너무 급하게 가까워지는 게 두렵고, 나에 대해 갑자기 많이 알려고 하는 것도 무서웠다. 결국, 남들이 볼 땐 '너네 뭐하냐' 싶을 정도로 답답했던 진도로, 지금 내 곁에 있는 남편과 나는 서서히 물들어 서로를 알아갔고, 사랑했고, 결혼했다.


문득 누군가 나를 딸아이처럼 적극적으로 사랑해 준다면 어떨까 상상해 본다. 그게 누구든 나는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심지어 그 대상이 내가 의지하고 사랑하는 남편이라 해도. "헤어지기 싫어. 회사 안 가면 좋겠어." "옷 입는 것도, 목욕도, 잠자는 것도 다 너랑만 할 거야." "이리 가까이 와. 더 가까이. 코 앞까지. 이 상태로 꼭 껴안고 자자." 으악.... 살려줘. 그런데 화자를 나의 지방이로 바꾸는 순간, 피식 웃음이 나오고 만다. 결국 사랑과 집착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에 달린 게 아닐까. '내 일상을 궁금해해 줘서 고마워, 나도 네 일상이 궁금해.' 일 수도 ‘나를 바라보는 그 사람 눈빛을 보면 부담스럽고 소름 끼쳐.'일 수도 있으니까. 나는 뻔한 결론을 내린다. “그래, 너니까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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