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의 첫 출근, 그날의 일기

꼬야와 나의 첫 출근 적응기

by 은세유

마지막으로 회사를 다녔던 건 4년 전이었다. 내가 속한 통번역 업계의 포지션은 본래 정규직보다는 계약직, 임기직, 또는 별정직으로 채용하는 경우가 많아 그때도 파견 계약직이었다. 미국계 회사의 사내 에디터로 일했다. 계약직으로 일하면 요즘처럼 고용 자체가 불안한 시기에는 서러울 일이 많다. 그러나 요즘처럼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장점도 없지는 않다. 모든 게 좋기만 한 일이 없듯 모든 게 나쁘기만 한 일도 없다, 고 생각하려고 한다. 계약직으로 채용될 경우, 같은 일을 하더라도 부담과 책임감은 적기 마련이다. 당시에도 내가 전문적으로 하는 번역, 에디팅 업무만 충실히 잘하면 그 외 예산관리 등 사무적인 일은 하지 않아도 되었고, 기본적으로 일이 많지 않아 여유가 있었다.


번역/에디팅 업무가 대단한 전문직은 아니지만 특정한 업무에 집중하는 포지션이기 때문에 대학원 졸업 직후 다녔던 국내 기업에서도 '내 일'만 잘하면 어려움이 없었다. '내 일'은 내가 좋아하고, 잘하고 싶어 하는 번역/에디팅이었고, 그때는 분기에 한 번씩 매거진을 출판하는 업무를 맡았기 때문에 장기적인 호흡으로 내 일정을 조절할 수 있었다. '마감이 있는 삶과 마감이 없는 삶'이 있다고 말한 사람이 있을 정도로 마감은 무거운 압박과 상쾌한 카타르시스를 주며 일상을 지배한다. 매주, 격주, 매달 마감을 해야 하는 출판사나 잡지사분들 정도의 스트레스는 아닐지라도 나 또한 번역가로 살며 늘 마감과 함께해왔다. 내가 아는 많은 동료들과 나는 마감이 긴 프로젝트를 선호한다. 일이 손에 잘 잡히고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땐 진도를 쭉 빼놨다가 영 집중이 안 되고 바쁜 일이 생겼을 땐 조금 천천히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그렇게 할 수 있었다. 매일 번역 및 에디팅 해야 할 분량을 정해 놓고, 진도를 쭉 빼기도 하고, 조금 천천히 가기도 하며 스스로 페이스를 조절해 어렵지 않게 발간일을 맞추었다.


이번에 입사한 외국계 기업의 정규직 포지션 마지막 면접 때, 전 세계 localization 담당자들을 총괄하는 유럽의 manager가 내게 '이 포지션은 번역을 직접 하는 포지션이 절대로 아니며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전략을 세우는 포지션이다' 라며 그간의 내 경력을 들어 우려를 표했었다. 나는 매니징 경험도 적지 않게 했으며, 내가 지금 하고자 하는 일도 바로 그런 일이라고 답했다. 여전히 약간은 못 미더운 듯했지만 이미 실무진과의 여러 차례 면접을 통과한 이후라서 그런지 합격 통보를 받았다.



출근 첫날, 기업의 가치와 문화에 대한 온라인 트레이닝을 수강했다. 본래 월별로 입사한 사람들을 한데 모아 함께 대화하며 나름 재미있게 오리엔테이션을 하는데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으로 대체한다고 했다. '첫 이틀 정도는 온라인 교육 들으며 천천히 적응하면 되겠지?' 했는데 당장 급한 뉴스레터의 영문 리뷰를 좀 해달라고 한다. 영문 리뷰? 국문 리뷰를 하는 포지션으로 알고 시험도 그렇게만 봤는데? 하라니까 일단 받는다. 온라인 교육을 빨리빨리 넘기고 이 일부터 해야겠다, 싶은데 의외로 교육 중간중간 끼워져 있는 퀴즈가 난해하다. 운전면허 윤리 문제처럼 직관적으로 알아맞힐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두세 개 모두 틀린 말이 아닌 항목이라 대충 찍었더니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들으라고 한다. 얘들도 진화하는구나, 하며 급한 마음에도 꾸역꾸역 집중해서 교육을 듣는다. 회사에서 주로 쓰는 공유 폴더 시스템, 메일, 인트라넷 등 한 번에 낯선 정보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니 머릿속 저장용량에 빨간 바가 그어진다.


회사보다 더 걱정이 됐던 건 우리 집 꼬마, 얼마 전 우리 나이로 네 살이 된 딸아이였다. 회사에서 출근 준비 기간을 오래 주지 않아 이모님과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이 적은 상태에서 갑자기 이모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낯설고 힘들까 봐서 어머님이 일주일간 잠깐씩 와주시기로 했다. 할머니 얼굴을 보면 일단 안정이 되겠지, 하고 마음 놓고 출근을 했다.


그런데 하원 시간인 4시가 조금 지나서 이모님 번호로 전화가 왔다. 전화기 너머로 서럽게 우는 소리가 들린다. 영상 통화를 하자고 말씀드리고 회의실로 들어가 전화를 걸었다. 아이 얼굴이 시뻘게져서 "엄마 어디 갔어요?" 하며 눈물 콧물 흘리며 꺼이꺼이 울고 있다. 다급한 마음에 "할머니 어디 가셨어? 할머니?" 하는데 이모님이 할머니가 안 계시단다.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다. 집에서 기다리시면 된다고 말씀드렸었는데 생각한 시간에 아이가 오지 않으니 혹시 어린이집에서 울며 안 오나 싶어 집을 나서셨다가 길을 잃으셨다고 한다. 어머님도 당황하셔서 어떡하니 어떡하니, 하셨다.


번역 대학원을 졸업한 이후 이 포지션으로 일하며 좋은 점은 승진을 기대하긴 어려워도 보통은 칼퇴가 보장되고 내 업무에 대해 깊이 있게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이었는데, 6시가 되어도 사람들이 퇴근을 하지 않았다. 점심시간에, "혹시 결혼하셨어요? 저희는 다 미혼이에요"라고 말했던 팀원의 말이 떠올랐다. 나도 아이를 낳기 전엔 급할 게 없었다. 그런데 꺼이꺼이 울고 있을 아이를 생각하니 1분 2분 지날 때마다 조급해졌다. 버스 시간이 안 맞음 너무 늦게 도착할 수도 있었다. 개인주의적인 외국계 회사답게 아무도 내게 일을 마쳤으면 가보라거나 오늘 하루 수고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조금 눈치를 보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오자마자 엄청난 속도로 뛰었다. 버스 배차간격이 길어 한참을 기다렸다. 전화해보니 다행히도 아이는 어느 정도 안정이 된 후였다.




허겁지겁 집으로 뛰어 들어와 5분 만에 저녁을 입에 부어 넣고, 마침내 아이에게 돌아갔다. 이모님이 가시고, 어머님이 가시고, 아이와 목욕을 하며 아이의 몸을 만져주고 안아주고, 아이를 재우러 방으로 들어갔다. 편안하게 누워 잘 자던 아이가 부쩍 뒤척이고, 이불을 덮어달랬다 다시 치워달랬다가, 옆에 누으랬다가 앉으랬다가 변덕을 부리며 짜증을 냈다. 처음에는 '그래, 힘들었겠지' 하다가 한 시간 넘게 짜증이 지속되니 엄마도 힘들다는 한숨이 비어져 나왔다.


과연 잘한 걸까,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그렇게 길고도 짧은 하루가 저물었다. 기다리는 아이를 생각하며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도 길고, 아직 익숙하지 않은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시간이 너무도 짧았던 하루가...



아직은 운전이 익숙지 않은 초보운전자지만 앞으로는 차를 가지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없을 때의 나는 대중교통을 선호했다. 출퇴근 시간에 걷는 운동이라도 하자 싶고,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짧게라도 책을 읽고 싶고, 창 밖을 내다보거나 이런저런 공상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다리는 아이를 생각하니 10분, 20분이 너무나 간절했다. 일이 많을 땐 남들보다 출근을 빨리하기로 했다. 급한 일이 있을 땐 아이를 재운 뒤 밤에 일을 마무리하기로. 아이와 함께 하는 직장생활은 그렇게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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