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엄마 연수

기대하지 않은 낙(樂)

by 은세유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은 지금처럼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는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의미로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사람에게 하는 위로의 말이다. 아이를 키우는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터널을 지난다는 생각은 사실 하지 않았다. 터널은 아무리 길어도 끝이 있기 마련인데, 육아는 시기별로 조금씩 다른 힘듦이 있을 뿐이라는 선배 엄마들의 조언을 되새겼기 때문이고, 아이의 예민한 성향은 계속될 테니 앞으로도 크게 편해질 일은 없을 거라는 체념 때문이었다.



요즘 아이가 자주 하는 말은 '이제 나 다섯 살이니까...'이다. 아이가 네 살이었던 작년에 언제 혼자 잘 거냐고 물어보면, "다섯 살 되면!" 언제 엄마 아빠 없이 할머니 할아버지랑 잘 거냐고 물어봐도 "다섯 살 되면!"

이라고 말하곤 했다. 나는 "진짜? 우와 다섯 살 언니 되면 혼자 잘 수 있어?" 했지만 속으로는 '퍽도 혼자 자겠다.' 하며 피식 웃었다. 밤잠은 물론이고 낮잠조차 엄마가 아닌 사람이랑 자는 게 쉽지 않은 엄마 껌딱지가?


2022년은 바로 그 '다섯 살'이 되는 해였다. 새해가 밝고 나서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밤, 남편과 나는 아이에게 "다섯 살 되면 혼자 잔다고 했잖아?" 하고 웃으며 농담을 했다. 그런데 웬걸, 오늘 한번 혼자 자보겠다고 하는 게 아닌가. 오잉? 얼씨구나 싶어서 남편과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눈빛을 주고받은 후, 그래 한번 해보라고 아이를 폭풍 칭찬 및 응원해주며 방으로 들여보냈다.


큰 마음을 먹은 아이가 기특하고 놀라웠으나 금방 문을 열고 나와 "엄마랑 잘래"할 것이 뻔하므로 옆 방에서 숨죽이이며 기다렸다. 그렇게 십 분, 또 십 분, 또 한 십여 분이 지나도 아이는 나오지 않았다. 30여분이 훌쩍 더 지난 후에 살짝 방문을 열어보니 인형을 안고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은 그저 묵묵히 참고 잘 견뎌보라는 의미가 아니다. 곧이 될지 먼 미래가 될지는 알 수 없으나 언젠가 분명히 '낙'이 올 테니 그 보상을 바라고 기대하며 참아보라는 의미이다. 육아를 하며 내가 스스로에게 가장 놀랐던 점이 하나 있다. 일상의 전부와 보이지 않는 머릿속 생각과 마음마저 아이에게 오롯이 다 주고서도 '낙'을 바라지 않는 내 모습이었다. '낙'을 바랄 수 있거나 바라도 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나누고도 더 나누고자 했던 테레사 수녀님이나 이태석 신부님 같은 분들이야 이런 마음의 상태가 별로 놀라울 게 없겠으나 나는 그런 성인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좋은 마음으로 남을 챙겨주었다가도 은근히 무언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치사한 마음이 들곤 했다. 사람들과의 만남도 제한하고 대학원 입시를 준비할 때는 대학원에 합격하면 내가 원하는 공부와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낙'이었다.


더운 여름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만든 이유식을 푸푸 뱉어내는 아이에게 온갖 쇼를 하며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는 내 모습을 본 가족들은, "이거 녹화해 놔야 해. 꼬야 컸을 때 엄마가 고생한 거 다 보여줘야지" 했다. 그런데 정작 나는 “왜?” 하는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내 고생을 (고생이라고는 생각했던가?) 아이가 알아주기를 바란 적도 없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저 잘 먹고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게 말로만 듣던 엄마의 마음인 걸까?


아이는 확실히 달라졌다. 예민하고 눈치가 빨라 내 얼굴 표정이 조금만 변해도 울음을 터뜨리며 소리를 지르고, 때로는 폭력적인 행동까지 하던 아이가 능글맞아졌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자기가 잘못해놓고 자기가 화를 낼 때가 많았는데, 아이의 울음이 '나 (엄마 때문에) 화났어요'가 아니라 '나 (엄마 표정이) 무서워요.'라는 의미였을 거라는 깨달음은 한참 후에야 찾아왔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낸 후에야 나는 아이의 언어를 이해했다.


얼마 전, 아이가 시터 선생님과 내가 있는 앞에서 사소한 일로 내게 소리를 질렀다. 오랜만에 있는 일이었다. 즉시 잘못된 행동이라고 이야기는 해주었지만 시터 선생님 퇴근 시간이 가까워 왔기에 일단 선생님을 보내드리고 나서 다시 대화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현관문이 닫히고 아이와 둘만 남자 나는 가늘게 눈을 떴다. 나를 바라보자마자 아이는, "흐흐흐 아 미안해요!" 하며 멋쩍게 웃었다."뭐가?" 하니, "아까 소리 지른 거요. 이제 안 그럴게요."


아이는 마음이 편안해 보였고, 그런 아이를 보는 내 마음도 편안했다. 이제 안심이 되었다. "젤리 먹어도 돼요?" 하며 아이는 젤리한테로 후다닥 달려갔다.



낙을 바라며 고생을 하다 낙이 오면 얼마나 기쁠까? 입시 공부를 하다가 대학이나 회사에 합격했을 때, 고시 공부를 하다가 시험에 합격했을 때, 수 십 년 차곡차곡 돈을 모아 내 집을 마련했을 때... 그런데 낙을 생각하지 않은 고생 끝에 만난 낙은 조금 당황스럽다. 다르지 않은 점은, 역시…행복하다. 기대한 낙과 기대하지 못한 낙 중 어느 편이 더 행복할까?


다섯 살이 된 아이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거나 말이 통하지 않는 떼를 쓰는 빈도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찻길에서 갑자기 손을 잡지 않고 혼자 가겠다며 뛰어가거나 아주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해도 내 옷깃을 잡아끌어당기지 않는다.


"엄마! 차가 많이 와서 엄마 손 잡은 거예요. 차가 많을 때는 엄마나 아빠나 선생님 손을 잡고 가야 해요."라고 말하고, "엄마! 엄마가 설거지하는 동안 나는 색칠하고 있을게요. 내가 기다려줄 테니까 다 하면 빨리 오세요!" 한다. 낯을 많이 가려 친척들을 만나면 방에만 들어가 있을 정도였는데, 이젠 음식점을 나설 때도 사장님께 "안녕히 계세요" 하고 큰 목소리로 배꼽인사를 한다. (그 덕에 사탕이나 초코파이도 선물로 받는다)


어른처럼 말도 잘하고, 나름 요리조리 마리를 굴려가며 생각도 하는데, 아직은 내 품에 쏙 안길 만큼 작은 몸집의 아이가 이보다 더 사랑스러울 수 없어 나는 아이의 24시간을 모조리 기록하고 싶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니 최대한 눈에 마음에 담아두어야겠지. 이 시기는 아마도 매우 짧을 테니까... 그래도 이러한 낙은 분명 내게 상상도 못 했던 '횡재'이므로, 공짜로 받은 선물 같은 것이므로, 나의 메모리칩에 잘 저장해 두었다가 아이가 나를 힘들게 할 때 언제든 꺼내 보아야겠다.




문득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 취업했을 때 한 달여간 받았던 신입 사원 연수가 떠올랐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전에 사원으로서의 최소한의 역량과 마음가짐을 준비시키는 과정이었다. 요즘에야 안전상의 문제로 하지 않지만 그때는 해병대 훈련도 있어서 차가운 바닷물에 풍덩 빠졌다가 배 위로 올라오는 극기훈련까지 했다. 기본적인 컴퓨터 활용 방법도 배우고, 새벽같이 일어나서 규칙적으로 단체생활을 하는 법도 배웠다.


어쩌면 지난 4년 간의 다소 혹독한 육아 기간은 앞으로 엄마로서 강건하고도 너그럽게 잘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신입 엄마 연수'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두세 시간마다 깨서 아이 젖 물리기 또는 우유주기 (나의 수면욕보다 아이의 건강, 아니 생존을 우선할 수 있는지 테스트), 몇 시간 동안 만든 이유식을 푸푸 뱉어도 아이 입에 떠 먹여 주기 (인내하기, 화내지 않기 테스트), 기어 다니며 여기저기 머리 박거나 떨어질 뻔할 때 보호해주기, 또는 한발 늦었을 때 안아주고 약 발라주기 (순발력, 침착함 테스트), 소리 지르고 떼쓰고 울 때 말로 설명해주고 이해시켜주기 (또 인내하기, 아무리 어려워도 "서로" 소통하기). 이제 정식 엄마로서, 더 많이 아이와 소통하고 아이의 마음에 귀기울여주며 오늘은 어제보다 나은 엄마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우리, 잘해보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시간을 선물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