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기를 망설이는 엄마가 있다면...
컴컴한 자궁 속에 있던 아기가 엄마의 몸 밖으로 나와 세상의 빛을 본 이후 며칠 동안 어리둥절한 것은 갓난아기뿐이 아니다. 엄마도 마찬가지이다. 일 년 여간 분명 나와 한 몸이었는데 갑자기 둘로 분리되어 등장한 작고 연약한 생명체는 아무리 봐도 낯설다. 아기는 귀여운 줄만 알았는데 물에 불어 쭈글쭈글한 건 물론이고 눈을 맞추지 못해 이리저리 눈을 희번덕 거리는 게 사실 (미안하지만) 조금 무섭기도 하다. 내가 낳은 아이가 이 아기가 맞나 싶어 빤히 들여다본다. 심지어 내가 그 아이의 '엄마...'라고?
감상을 오래 할 새도 없이 병원과 산후조리원을 떠나면 아기와의 낯선 동거가 시작된다. 두세 시간마다 수유를 하고, 기저귀를 갈고... 다 괜찮은데 문제는 내 삶에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한 가지, '수면'을 포기해야 한다. 먹는 건 참아도 잠은 못 참아서 대학교 MT 때도 잠을 자다 응징(그렇다고 이마에 화투장을 왜 붙여놓는 것이냐)을 당하기 일쑤였던 나였다. 어디에서나 기댈 데만 있으면 쿨쿨 잘 자는 건 물론 한번 자면 업어가도 몰랐... 었다. 아이를 낳고 나니 으앙~우는 소리가 나기도 전에 눈이 번쩍 뜨였다. 옆에서 남편은 쿨쿨 자고 있어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를 안아 달랬다. 분명 남편과 나는 둘 다 잠꾸러기였는데 아이를 낳는 순간 아이 울음소리에 반응하는 센서가 내게만 부착된 것 같았다.
'백일의 기적'은 그 시절 내게 큰 위안을 주었다. '100일만 참아, 100일만 지나면....'통잠' 잘 거야.'라고 선배 엄마 친구들이 나를 위로했다. 감사하게도 100일이 되기 전에 예민한 우리 아가에게도 꿀 같은 통잠이 찾아왔다.
올해로 다섯 살이 된 아이를 보면서 나는 '백일의 기적'보다 놀라운 '다섯 살의 기적'을 목격한다. 놀랍고 기특하고 신기해 아이를 빤히 쳐다보면 아이는 "왜에? 왜 쳐다봐?" 하며 나를 힐끗 보고는 눈의 흰자만 보이도록 눈을 뒤집어 까고 메롱 하며 나를 놀린다.
사업을 시작해 야근이 한 달 내내 계속되던 남편 덕에 삼 년 여간 독박 육아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이대로 내 커리어가 끝나면 어쩌지.' '이대로 가정주부가 되어 버리는 건가.' 하는 생각이었다. 물론 가정주부를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 가정주부였던 엄마 덕에 사랑과 안정 속에 자랐음에 늘 감사하며 사실 지금도 나는 전업맘이 워킹 맘보다 1도 덜 힘들지 않다, 심지어 더 힘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중요한 건, 내가 전업 주부가 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게 가능한 직업이다 보니 아이가 어린이집을 간 후 조금씩 번역 일을 받아서 했지만 오히려 프리랜서로 일하는 게 가능해서 일에 대한 비중을 나도 모르게 줄이고 양보해 나갔다.
안 되겠다! 싶어 아이가 만 3세가 되었을 때 취업 원서를 넣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막 시작되었던 터라 여행 관련 프리랜서 일이 끊긴 것도 이유였다. 아이는 내 주변 그 어떤 아이보다도 엄마에 대한 애착이 심한 엄마 껌딱지였는데 그래도 세 살 저도 되니 많이 안정된 상태였다. 내가 공부한 번역과 경력을 살려 일할 수 있는 포지션에 합격 통보를 받았다. 오랜만에 '사회생활'을 한다는 설렘과 꼬야를 시터에게 맡겨야 한다는 '두려움'이 공존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수십 번 엄마가 곧 회사에 간다고 이야기해주고, 시터와 함께 지내며 적응을 도왔지만, 물론 그때는 "알았다"라고 했지만, 아이는 출근 첫날 꺼이꺼이 울며 전화를 했다. 시터 이모님이 도저히 감당이 안 되어 영상 통화를 걸어주었다. 쉬이 그치지 않는 울음이었다.
일이 많아 조금 일찍 출근하려고 준비를 하는 날이면, 방에서 "엄마아~~~!" 하는 소리가 들렸다. 빨리 옆에 누우라고 성화였다. 아무리 조심조심 살금살금 준비를 해도 아이는 여덟 시도되기 전에 눈을 떠서 엄마를 찾았다. 한동안은 내가 출근한 후 뒤늦게 잠이 깨면 아빠가 아무리 달래도 한참을 울었다. 그러니 어린이집에 가면 피곤해서 낮잠 시간이 골아떨어질 때가 많았다. 한 동안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일찍 재우고 일찍 같이 일어나서 내가 어린이집 준비를 해주기로 했다. 자고 일어났을 때 엄마가 없는 게 싫다는 아이의 말 때문이었다. 아이도 좋다며 반색했다. 엄마가 출근하기 전에 꼭 깨워줄 테니 깨지 말고 맘 놓고 푹 자라고 했다. 내가 30분만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면 되니까... 그렇게 했다.
그렇게 한 동안 괜찮은 듯하더니 맘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때리는 폭력적인 행동을 보였다.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밤에 잠을 잘 때는 엄청난 잠투정 때문에 재우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물론 언제나 잠은 엄마랑만 자야 했다.
"나 이제 다섯 살 됐으니까"라는 말을 달고 사는 요즘, 아이는 자기 전에 물어본다. "엄마 내일 재택이야 출근이야?" "응, 출근이야." 하면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알았어. 화요일 출근! 수요일 재택?" 한다.
오늘 아침 출근 준비를 하며 헤어 드라이기를 켰는데 "엄마아~~" 하는 소리가 들렸다. 환청인가? (엄마가 되고 나서 아이가 '엄마~~'하고 부르는 환청을 자주 듣는다. 아무래도 '엄마'라는 소리에 반응하는 센서가 부착된 게 맞는 것 같다) 요즘엔 출근할 때 아이가 잠에서 깨는 일이 없는데 웬일인가 싶어 아이에게 갔더니 일찍 일어나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맞았다.
"엄마 오늘 회사 가는 날인데?" 하며 누워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 한번 안아준 뒤 "조금 더 자" 하고 속삭이자 아이는, "알았어요. 그럼 나 아빠한테 가서 잘게." 하더니 침대 위로 쏙 올라가서 "아빠 나 추워요" 하고는 내 자리를 차지하고 아빠와 같은 이불을 덮고 눕는다.
"엄마 없을 땐 아빠가 있잖아. 아빠가 꼬야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아빠랑 조금 더 자면 되지."하고 수십 번을 말해도 "엄마~ 엄마~ 가지 마. 엄마랑 잘 거야." 하던 아이의 모습이 겹쳤다. 불과 반년쯤 전의 일이었다.
중요한 시험이 있거나 회의가 있는 날, 이른 아침 비행기를 타야 하는 전 날 밤에는 잠을 설칠 때가 많다. 당일 아침에도 걱정과는 달리 번쩍 눈이 떠진다. 반드시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압박감과 못 일어나면 큰일 난다는 불안감을 떠안고 잠에 들었으니 잠자리가 편할 턱이 없다.
네 살 꼬야도 비슷한 불안감을 안고 잠자리에 들었을 터다. 일찍 일어나지 않으면 엄마를 다시 못 만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불안감... 어린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끔찍하고 무서운 공포이다. 네 살이나 됐으면 그 정도는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엄마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낯가림이 전혀 없는 사교성 좋은 아들을 둔 친구가 종종 그런 말을 한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가 서로 다르듯 아이들도 모두 서로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아이도, 엄마 껌딱지에 불안도와 예민함이 매우 높은 이런 아이도, 다섯 살이 되니 홀로서기를 한다. 징검다리도 손 잡지 않고 혼자 가보겠다고 하고, 사람 많은 데서 노래도 불러보겠다고 한다. 그러니 아이 때문에 마음이 약해져 일을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엄마가 있다면, 용기 내어 시작해보라고 조언하고 싶다. 아이는 자란다. 나만 모르고 있던 기적이 슬그머니 내게도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