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드라마 역할극 같은 육아
아이를 키우며 가장 놀랐던 점 중 하나는 아기(아이)의 성장 속도가 생각보다 훨씬 빠르다는 것이다. 막연히 다섯 살 즈음이면 가능하겠지 생각했던 것들을 세 살인 지금 다 하고 있어 눈이 휘둥그레질 때가 많다. 물론 내 아이가 유독 똑똑하거나 빨라서가 아니라 아이들이 원체 이런 거였다.
우리 나이로 세 살, 그러니까 태어난 지 채 삼 년도 안 된 아이는 요즘 못하는 말이 없다. 전에는 단순히 내가 한 말을 따라 하고 반복했다. 요즘은 자기 머릿속에서 '생각'이라는 것을 거쳤을 법한 말들이 조그만 입에서 튀어나온다.
돌 막 지났을 즈음에는 어떻게 놀아주어야 할지 몰라 막막했는데 요즘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아이가 판을 다 짜 놓고 어떻게 놀이해야 하는지 정해주는 감독(director)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무슨 놀이를 할지도, 어떻게 놀이할지도, 언제까지 놀지도 본인이 정한다.
"블록 놀이하자!” 하더니
무거운 블록 박스를 낑낑대고 옮겨온다. 무겁냐고,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으면 '하나도 안 힘들다'라고 (거짓말)하며 낑낑대고 박스를 들고 온다.
"이제 집 만들자"해서
"그래!" 하고 대답한다.
"큰 나무 필요해?"
"아니 괜찮아."
"’ 큰 나무 필요해요~’ 해 봐."
나는 감독의 요구를 따른다.
"-_-;; 큰 나무 필요해요~."
"나도 큰 나무 필요한데 엄마한테 양보할게."
"양보해줘서 고마워."
뭐 이런 식이다. 조금 더 자라서 친구들과 놀이할 때가 되면 자기 맘대로 배역을 정할 수도, 대본을 쓸 수도 없겠지만 (또한 나도 그렇게 가르치겠지만) 지금은 가장 만만하고 편안한 대상이랑 놀이를 배워가고 있으니 아직까지는 내가 감독님의 말을 순순히 따라주는 배우 역할을 맡는다.
며칠 전에도 꼬마 감독님은 예고도 없이 역할극을 시작했다.
"엄마,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
장난감 아이스크림 카트에서 가져오려니 싶어,
"응! 아이스크림 맛있겠다. 먹고 싶어." 했다.
그런데 아이 손에는 아이스크림이 아닌 노란 그릇이 들려 있다.
내 엄지 손가락 반 만한 그릇이랑 새끼손톱만 한 스푼을 내게 내밀더니,
"밥 먼저 먹어야지?” 한다.
나는 멍해진 얼굴로 얼떨떨해진다.
“밥 다 먹으면 아이스크림 줄게” 하고 상냥하고 친절하게, 대단한 호의를 베풀 듯 생색을 내며 말한다.
많이 당황했고, 우스웠고, 놀랐지만,
"잉? 밥 먼저 먹어야 해? 알았어." 하고 맛있게 밥을 냠냠 먹고 이제 아이스크림을 달라고 하니
"밥 다 먹었어?" 하며 그릇을 확인하고는 그제야 다른 손에 쥐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내어준다.
진짜 아이스크림이 아닌 조그만 장난감 아이스크림을 가져올 거라는 걸 당연히 알고 있었다. 진짜 아이스크림이 생각나 먹고 싶었던 것도 전혀 아니다. 그런데도 아이스크림 대신 밥을 내밀었을 때의 실망스러움과 당혹감이란...
실제 생활에서 나는 아이에게 아이스크림을 준 적도 많지 않고,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그렇게까지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아이가 아주 좋아하는 과자는 꼭 밥을 다 먹은 후 간식처럼 조금씩 주었다. 그거야 우리 둘 사이 굳어진 관행이고, 그로 인해 아이도 동기부여가 되어 맛있게 얼른 밥을 먹은 뒤 신나게 과자를 얻어가고, 나도 아이와 평화로운 식사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내 마음에 걸렸던 건, 아마도 내가 그동안 아이에게 내건 조건부가 그 밖에도 많지 않았을까 싶어서였다.
"이거 하면 이거 해줄게." "저거 먼저 해. 그럼 이거 하자." 때로는 도저히 통제가 안 되고 시간이 빠듯할 때 그 방법을 쓴다는 자기변명을 하고 싶지만, 아이와의 역할 놀이를 통해 그 당시 아이가 느꼈을 당혹감과 실망감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졌다.
요즘 나는 아이가 마치 나와 사이코드라마, 그러니까 거울 기법(mirroring)을 이용한 역할극 같은 것을 하는 기분이 든다. 아이는 즐거운 표정으로 내 말과 행동을 자연스럽게 따라 하는 것일지 몰라도 나는 가슴이 뜨끔, 때로는 따끔하다. ‘너도 한번 당해봐. 이러면 기분 어때? 기분 안 좋지!' 하는 것 같다.
요즘은 아이에게 전보다 입바른 소리를 많이 하는 편이다. 언제부터 훈육을 해야 하나 고민이었는데 육아 서적을 봐도 세 살부터는 옳고 그른 걸 분명히 가르쳐야 한다고 하고, 굳이 전문가의 이론을 빌리지 않더라도 내가 보기에도 이젠 의사를 충분히 표현할 수 있고 말도 다 알아들으니 어느 정도의 훈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이다.
그런데 이제껏 형제자매도 없이 사랑을 독차지하며 온갖 칭찬에 익숙해진 아이는 안 된다는 말을 들으면 서러워서 눈시울이 붉어지거나, 때로는 자기가 도리어 화를 내거나, 심술을 부리기도 한다. 그럴 때 남편과 내가 즉각적으로 드는 생각은 '자기가 잘못했으면서 왜 자기가 화를 내?'이다.
그런데 얼마 전 나는 다른 역할극을 통해 그 상황의 아이가 되어보았다. 도통 이해가 안 되던 복잡 미묘한 마음이 그제야 고스란히 느껴졌다.
지난 주말, 나는 한 주 내내 마감이 빠듯한 일과 육아를 홀로 해내느라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주말에 도와주겠다던 남편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 남편에게 갑자기 일이 생겨 도와주기는커녕 육아가 더 힘들어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마음과는 달리 육아에 대한 기여도가 낮은 남편을 나도 마음으로는 많이 이해하고 있는데, 그날은 나도 유독 피곤해서 그랬는지 남편에게 감정이 섞인 하소연을 내뱉었다. 크게 소리를 지른 건 아니었지만 엄마 아빠 사이의 불편한 대화를 아이가 지켜봤다. 이런 장면을 거의 경험해보지 않았던 아이는 불안하고 놀랐을 터였다. 아이 앞이라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감정 조절을 못한 내 잘못이었다. 이런 일이 발생할 때 내 마음은 몹시 불편하다. 비겁함과 죄책감에 휩싸여 스스로를 비난한다.
아무 방어 능력이 없는 아이를 대상으로, 내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아마도 대부분의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우위에 있는 아이를 대상으로, 안 좋은 소리를 하고 나면 기본적으로 공평하지 않은 게임에서 내가 가진 힘을 자제하지 않고 힘껏 사용한 듯한 비겁한 느낌이 든다. 그 뒤엔 무거운 죄책감이 따라온다.
그날도 남편과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에 '아차 또 실수했구나' 싶었다. '그러지 말아야지. 왜 그랬을까. 앞으로는 정말 그러지 말아야지. 잘못한 거야. 잘못한 거야' 반성하며 저녁을 준비했다.
세 식구가 식탁에 앉아, 불편한 마음으로 내가 막 한술을 뜨려던 그때,
남편이 내게 조용히 속삭였다.
애 앞에서 그렇게 하는 건 안 좋은 것 같다고...
갑자기 서러움이 동글동글 뭉쳐진 눈물이 뚝뚝 그릇 위로 떨어졌다.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아이한테도 누구에게도 좋을 것 같지 않아 간단히 설명하고 자리를 피했다.
남편은 아무 잘못이 없었다. 화를 낸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내게 일러준 것뿐이었다. 우리 둘이 보다 건설적으로 육아를 해나가기 위한 방법을... 문제는, 내가 그 문제를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아이도 남편이나 내게서 “그러지 마. 그건 안 되는 거야."라는 말을 들을 때 이런 마음이지 않을까. 이번엔 남편과의 사이코드라마를 통해 나를 돌아본 셈이다. 남편이 평소의 내 역할을, 내가 아이 역할을 맡았다. 덕분에 아이 마음을 잠시나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알면서, 다 알면서도, 잘못한 것도, 앞으로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다 알면서도 하지 말라는 소리를 직접 들으면 민망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해 심술을 부리고 싶기도 하고, 서러워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심지어 화를 내기도 하는 게 아닐까.
얼마 전에는 “그렇게 하지 말자.” 하는 나의 말에 아이가 몸을 비틀며 떼를 쓰려고 하길래,
"엄마가 그렇게 얘기하면, '엄마 알았어요. 다음번엔 안 그럴게요.'하고 담부터 안 하면 되는 거야." 하고 별일 아닌 듯 쿨하고 차분하게 이야기했더니 웬일로,
"엄마! 알았어요. 다음번엔 안 그럴게요!” 한다.
이제까지 여러 번 들었던 이야기니 알고는 있었는데 이제야 마음으로도 수긍이 된 모양이다. 어쩌면 "안 돼"라는 부정적인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자체를 잘 몰랐을지도 모른다. 그건 나를 비롯한 수많은 어른들도 잘 모르거나, 머리로는 알아도 쉽사리 실천하지 못하는 거니까.
조금 전 남편과 길을 걷는데 내가 농담 삼아 건넨 말을 듣고 남편이 내게,
요즘 그런 내 말투가 기분 나쁘다고 말했다.
순간, 당황스럽고 민망하고 '그러는 당신은?' 하는 생각도 잠시 스치며 가슴이 콩닥 뛰었지만, 용기를 냈다.
"장난으로 한 거였는데, 미안해. 앞으로 조심할게."
하고 순순히 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래, 그렇게 반응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내가 며칠 전 아이에게 알려준 바로 그 가르침이었다.
"그냥 그렇게 하면 돼. 미안하다 하고 다음엔 안 그럴게요~하면 되는 거야.”
아이가 실제로 그렇게 말해주었을 때 내가 얼마나 고맙고, 금세 마음이 풀어졌는지를 떠올렸다.
마흔이 다 되어서도 이렇게 어려운 말을, 어려운 감정을 아이에게 그냥 받아들이라고 강요했다니.
사람들로부터 받는 부정적인 피드백은 피할 수 없다. 다만 스스로 인정하는 피드백은 담담하고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발전의 기회로 삼을 수 있기를, 스스로 인정할 수 없는 터무니없는 피드백은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고 의연하게 넘길 수 있기를 바라본다. 아이도, 나도.
내가 아이를 키우고, 아이가 나를 키운다.
아이가 자라고, 내가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