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이나 친정에 가면 누가 설거지를 해야 할까?
지난 주말, 친정에 온 가족이 모였다. 우리 삼 남매가 장성하여 결혼을 한 데다 아이를 낳은 가족도 있어 이제 친정 부모님 댁에 모두 모이면 규모가 꽤 커진다.
그날은 할아버지 기일을 맞아 할머니와 삼촌까지 더해 무려 열 세명이었다. 그냥 밥 한번 먹으려고 하는 건데, 그 밥 한 번이 동네잔치가 되어버린다. 나는 가족들을 좋아해서 친정에 갈 때면 언니, 오빠, 조카들도 다 같이 만나고 싶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한꺼번에 모이면 집주인인 엄마가 너무 고생스러워 진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서로 만나는 게 ‘주’인데 번거로움이라는 ‘객’으로 인해 오히려 서로 눈치를 봐야 했다. 최소한으로 음식을 준비하거나 사다 먹자고 해도 엄마의 집밥 의지를 꺾기는 어렵다. 강한 말로 엄마를 설득하다 보면 평생 당신 손으로 지은 따뜻한 밥으로 자식들 키워냈다는 엄마의 자부심을 깎아내리는 듯해 마음이 불편해지고 만다.
오빠가 소고기를 사 오고, 우리가 방어회를 사 갔다. 이번에는 정말 최소한의 음식 준비를 목표로 했다. 그런데도 대인원 식사는 언제나 정신이 없고 누군가의 희생을 동반한다. 과거에는 늘 그 희생이 엄마의 몫이어서,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생신잔치에 온 친척들이 모여 상다리가 휘어지는 날이면 늘 속이 상했다.
이번에는 오빠가 고기를 굽겠다고 자처했지만 그래도 살림살이 주인인 엄마는 앉아있기가 어려웠다. 나는 아직 어린아이가 돌아다니며 사고를 치지 않도록 붙잡고 밥을 먹여야 하고, 오빠는 고기를 굽고, 올케 언니는 오빠를 돕고, 언니는 물컵을 나르고 고기를 자르니 결국 제대로 앉아 밥을 먹는 사람은 총인원의 반 정도가 될까 말까다. 조카들과 할머니, 삼촌, 아빠, 그리고 남편과 형부 정도? (그들이라고 맘 편히 느긋하게 식사를 했을까 싶다)
혼란 속에서도 고기와 방어를 맛있게 잘 먹었다. 이제 제2라운드, 설거지 시간이다!
시댁이든 친정이든 부모님 댁에 가면 내가 주로 설거지 담당이다. 언젠가 '시댁 가면 설거지 누가 하나요?'라는 20대 미혼 여성의 질문이 네이트 판에서 크게 화제가 됐다. ‘양심적으로 밥 차려주셨으면 설거지는 해야지'라는 의견과 '왜 꼭 내가 해야 하냐, 남편 시키거나 시누이더러 하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기본적으로 나는 어머님이든 엄마든, 심지어 다른 사람이든, 힘들여 요리한 사람한테 설거지까지 시키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아 갔더라도 가까운 사이이거나 자주 만나는 사이라면 이제껏 요리하고 대접한 사람은 좀 쉬고 기운이 남아있는 다른 사람들이 뒷정리를 하며 함께 즐기면 좋겠다 싶어서이다.
그렇다면, 누가 설거지를 해야 하는가?
내 상식으로는 음식을 준비하고 상을 차린 당사자는 당연히 열외이다. 예를 들어, 시댁에 다 같이 모여 어머님이 차려주신 점심을 먹었다면 어머님은 우선적으로 쉬게 해 드리는 게 인지상정 아닐까. 그렇다면 누가 남을까? 아버님, 남편, 시누이, 나 중 한 사람이 해야 하는데 시댁에서 밥을 먹을 때 설거지는 대부분 시누이와 나, 시누이가 없을 땐 나 (또는 그리고) 어머님이 한다. 그래, 장유유서를 생각해 아버님은 빼 드리더라도 왜 남편은 언제나 제외되어야 할까. 나의 시어머니는 요즘 사람들 생각에 관심이 많고 사고가 열린 편이시라 대화하기도 편안한, 말이 통하는 어른이다. 그런데도 참 재미있는 건, 시댁에서만큼은 아들에게 설거지를 안 시키고 싶어 하시는 이중적인 마음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다시 친정 대가족 모임 제2라운드로 돌아와서, 상 세 개를 부엌으로 나르고 그릇을 정리하고 있었다. 어릴 때 미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형부가 싱크대 앞으로 간다. 형부는 전에도 여러 번 그런 적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형부를 거실로 밀어 내고 언니와 설거지를 했다. 그런데 웬일로 남편이 같이 설거지를 하겠다고 형부 옆에 가서 섰다.
작년이었던가, 사회적으로는 여성의 권리 신장이 이루어졌을지 몰라도 집에서의 여성과 남성, 특히 결혼한 여성과 남성의 위치는 미묘하게 다르다는 나의 주장에 남편은 (고맙게도) 뭔가 느낀듯한 반응을 보였다. 그때 정말 뭔가 느낀 걸까?
평소 같으면 손사래를 쳤을 엄마도 다 먹은 음식이 묻은 수많은 그릇과 각자의 역할(언니는 차와 과일 준비, 나는 아이 담당 등)에 손이 부족한 상황을 깨닫고 '이번 한 번만?'이라는 생각으로 눈을 꾹 감았다. 나도 엄마처럼 눈을 꾹 감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사위들의 즐거운 설거지(서로 요즘 허리가 아프다며 진심으로 위로를 건넸다고 한다)가 끝나고 우리는 다 같이 디저트를 먹었다. 다 같이 조금씩 힘들어서, 조금씩 희생해서, 아니 조금씩 즐겁게 봉사해서 우리 중 누구도 잔치가 끝난 후 (언제나의 엄마처럼) 녹초가 되지 않았다.
사회의 편견이나 선입견과 맞서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사고를 전환하는 것도 꽤 어려운 일이다. 이제 세 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도 평소와 다른 규칙을 말하면 받아들이기 힘들어 끊임없이 "왜?"를 묻는데, 하물며 수십 년 간 몸으로, 마음으로 익혀온 관습이라는 걸 뒤집어 생각하기란 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니다.
나 또한 그러하여 마음이 불편했다. 형부와 남편이 설거지하는 뒷모습을 보고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했다. 굳이 언니와 나도 일을 한다는 논리를 치사하게 내세우지 않더라도, '나는 그간 시댁에 가서 설거지를 몇 번 했더라' 머릿속으로 셈해 보았다. 지난 8년여간 한 달에 한 번씩만 했다고 해도 (보통 그보다 더 자주 갔으니까, 게다가 명절엔 엄청난 양을 해야 하니까) 최소 백여 번은 되겠다 싶었다. '나는 백 여번 설거지를 해도 되는 사람이고, 남편은 한두 번만 해도 큰일 나는 사람은 아니지 않을까? 우리 둘 다 소중한 사람이니까...' 생각하며 겨우 마음속 미안함을 덜어냈다.
누군가 부당한 대우를 받는가에 대해 생각할 때 나는 종종 이렇게 뒤집어 생각해 본다. 내가 좋아하는 고사성어 '역지사지(易地思之)'를 떠올린다. 남편이 우리 집에서 설거지하는 게 미안하게 느껴지면 시댁에서 설거지하는 내 모습도 미안해할 일인가? 하고 편견 없이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수십 년 간 가족을 위한 봉사가, 때로는 희생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엄마와 어머님도 이제는 편견 없이 '뒤집어 생각해 보기'를 해보시면 좋겠다. 인지하지 못했던 그간의 부당함에 수긍이 가신다면 눈을 한 번 꾹 감아 보셔도 되지 않을까. 그다음엔 또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우리의 엄마들도, 우리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소중한 존재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