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로 성공하려면?
마흔을 바라보는 지금의 나와 이십 대의 나를 비교해보면 외모뿐 아니라 생각도 크게 달라졌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어릴 적 나는 처음부터 반짝반짝 빛나는 성공을 동경했다. '길'로 말하자면 길이 맞는지 아닌지도 모르겠는 산길이 아닌, 누군가 열심히 아스팔트를 바른 후 잘 말려 놓은 매끈한 길이었다. 처음 발을 디디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일단 한번 발을 들어놓고 나면, 그러니까 소위 이너서클(inner circle)에 진입만 하면 마음 놓고 한 숨 돌릴 수 있는, 그런 길.
그런데 요즘의 나는 산속에 길을 내는 사람들, 뙤약볕에서도 묵묵히 아스팔트를 바르는 사람들에게 더 마음이 간다. 누가 닦아 놓은 아스팔트 길 위의 나는 '손님'이고 '객체'지만 내가 낸 산길 위의 나는 '주인'이자 '주체'일 것 같아서다.
인생의 길은 곡선이라는 법정 스님의 말씀은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힘이 되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우리 인생, 당장 내 앞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어 두렵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작은 희망이나마 품어볼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였다.
내 인생의 길 또한 곡선이었다. 내가 지금 이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 거라고 20대의 나는 상상하지 못했다. 취업이나 고시 패스 등 한 번의 성공을 인생의 성공과 연결시킬 정도로 꽉 막힌 안정을 추구했던 내가 매끄럽고 반짝이는 아스팔트 길 밖으로 스스로 걸어 나왔으니.
십여 년 전 나는 우리나라 경기가 거의 바닥을 칠 무렵 대기업을 박차고 나와 통번역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 후 인하우스로 일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프리랜서 번역가로 보냈다. ‘프리랜서'가 하고 싶었다기보다는 이 일(번역)을 오래 하고 싶고, 좀 더 깊이 있는 지식을 쌓으며 내적으로 풍족하게 살고 싶었다.
프리랜서는 자신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길임을 최근 들어 다시 한번 실감한다. 누구도 가만히 있는 내게 일을 주지 않는다. 끊임없이 나를 '어필' 하고 'PR'해야 하는데, 하다 보면 지치는 순간도 온다. 회사는 한 번 들어가면 그 안에서 실적을 내야 하는 압박은 있어도 최소한 일이 끊길 염려는 없으며 그에 따라 월급도 꼬박꼬박 주어진다. 그런데 프리랜서는 일을 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지속적으로 회사와 에이전시에 지원서를 제출하고, 번역 테스트를 통해 내 실력을 증명해야만 그에 따른 에누리 없는 페이를 받는다. 딱 일한 만큼이다.
대학원을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대학원 모임에서 출판 번역을 오래 하신 선배님을 만났다. 가장 궁금했던 질문을 드렸다. "언제쯤이면 안정될 수 있을까요?" 선배님은 잠시 생각하시더니 "이 직업을 가지면서 안정을 추구할 수는 없을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다. 자기만의 분야가 확고하고 10여 년 이상 꾸준히 일을 해 오신 분인데도 일 년 내내 일이 끊기지 않은 적은 거의 없다고 하셨다. 내가 알기로 들어오는 번역 의뢰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일을 받는 분들은 극소수이다.
올해, 코로나로 꾸준히 해오던 프리랜서 일이 하나 끊기자 마음이 바빠졌다. 조바심이 나고 불안했다. 프리랜서 일을 하며 종종 겪는 일이다. 오랜만에 이런저런 일거리와 일자리를 검색했다. 기업이나 에이전시에 맞게 조금씩 이력서를 수정해 등록하고, 연락을 기다리고, 테스트를 보고(때로는 테스트 분량이 어마어마하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다시 결과를 기다렸다. 문득, ‘언제까지 이렇게 내 능력을 증명해 보여야 할까, 이 일을 한 지도 벌써 수년이 지났는데...’하는 생각에 지친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스라디오에서 이슬아 작가는 최근 출간한 ‘부지런한 사랑’ 기획 단계에서 출판사 편집자와 주고받은 이메일을 직접 읽었다. 평범한 비즈니스 메일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이렇게 잘 나가는 작가도 이토록 겸손하게 본인을 어필하는구나’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슬아 작가는 출판사나 에이전시를 거치지 않고 직접 구독자를 모집하는 대담하고 신선한 방식으로 수많은 독자를 확보하며 자기만의 길을 낸 젊은 작가이다.
편집자에게 보내는 이메일에서 인기 작가 이슬아는 마치 처음 책을 내는 무명작가인 듯 ‘수정이 필요한 사항이 있으면 얼마든지 논의하고 싶다’ 거나 ‘저는 글을 굉장히 빨리 씁니다’ 같은 말로 본인이 얼마나 함께 일하기 좋은 작가인지를 어필했다.
나는 이제껏 얼마나 대담하게 내 길을 내어 왔던가, 겸손한 태도로 묵묵히 길을 닦았던가, 자문해 본다. 프리랜서는 최소한 길을 닦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야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야 최소한 일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너무 힘겹기만 한 길로 들어선 건 아닐까, 우울해하지는 않아도 된다. 산 길은 공기도 맑고,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로 부대낄 일도 적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