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회를 페미니즘적인 사회로 바꾸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가치관과 인식이 변화해야 하고, 그러려면 오랜 기간 동안 공들이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오고, 그렇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설리에 이어 구하라의 죽음을 접하며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교육이 백년지대계이고, 사람들의 인식을 전환하는 일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지만, 지금 당장 내 옆에서 저렇게 젊은 여성들이 죽어나가는데, 이제는 나보다 내 딸들과 더 나이가 가까운 저 아이들이 죽어나가는데, 장기적인 안목으로 차근차근 하나씩 해나가는 교육 따위가 다 무슨 소용인가. 그래서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무기력감과 우울감이 교차하는 일상을 여전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내가 할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교육입니다. 함께 공부하고 함께 생각하고 함께 말하는 장을 펼쳐놓아 줌으로써 여성들이 성장할 수 있고 변화할 수 있도록 돕는, 그런 교육입니다. 내가 지금 당장 국회로 갈 수도 없고, 지금 당장 억울한 여성들의 변호를 맡아줄 수도 없고, 내가 가진 것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역시 그것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마음을 잘 추스려서 앞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씩씩하게, 한걸음씩.
하지만 저 나름대로 애도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구하라와 설리, 그리고 최근에 알게 된 전세계적인 페미사이드(femicide,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하는 것)의 희생자로 죽어간 다른 많은 여성들을 진정으로 애도하는 것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설리 때 하지 못했던 애도하는 일을 이번에는 하려고 합니다.
이 사회에 뿌리박힌 여성혐오 때문에 죽어간 구하라와 설리를 진정으로 애도하는 일은 결국, 다시 신발끈 잘 매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은 투쟁의 길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그들을 애도하는 길은, 내가 내 삶에서의 투쟁을 멈추지 않고 계속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땅에 남아있는 우리가 계속해서 투쟁을 이어나가는 것이 진정으로 고인의 명복을 비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당신들의 죽음과 같은 죽음이 이 땅에서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도록, 기억하고, 나의 온 힘을 다해 싸울 것을 다짐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그대들, 슬픔 없는 곳에서 잘 쉴 수 있게 기도하겠습니다.
* 구하라와 설리와 그밖에 페미사이드의 희생자인 다른 모든 여성들을 추모하는 뜻에서 일주일간 연재를 쉽니다. 애도의 시간 후에 새로워진 결의로 돌아올 '82년생 김지영과 76년생 김동진'을 약속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