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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Nov 21. 2019

김지영씨는... 김동진씨는...

'82년생 김지영' 9쪽.

김지영씨는 우리 나이로 서른네 살이다. 3년 전 결혼해 지난해에 딸을 낳았다. 세 살 많은 남편 정대현씨, 딸 정지원양과 서울 변두리의 한 대단지 아파트 24평형에 전세로 거주한다. 정대현씨는 IT 계열의 중견 기업에 다니고, 김지영씨는 작은 홍보대행사에 다니다 출산과 동시에 퇴사했다. 정대현씨는 밤12시가 다 되어 퇴근하고, 주말에도 하루 정도는 출근한다. 시댁은 부산이고, 친정 부모님은 식당을 운영하시기 때문에 김지영씨가 딸의 육아를 전담한다. 정지원 양은 돌이 막 지난 여름부터 단지 내 1층 가정형 어린이집에 오전시간동안 다닌다. (82년생 김지영, 9쪽.)


커억. 맨 첫장부터 걸린다. 담백한 김지영씨와 그의 가족 소개. 나는 뭐라고 쓸 수 있을까.


김동진씨는 우리 나이로 마흔네 살이다. 결혼한지 16년차다. 14살짜리 딸 지혜(가명)양과 10살짜리 딸 지선(가명)양, 다섯 살 많은 남편 강원도(가명)씨와 함께 남편 직장 근처의 아파트 24평형에 거주한다. 강원도씨는 대학의 교수이고, 김동진씨는 시간강사다. 강원도씨는 매우 바쁘다. 시부모님은 강원도의 중소도시 햇별(가칭)에 사시고, 김동진씨의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다. 김동진 강원도씨 부부는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했는데, 강원도씨가 먼저 졸업하고 취업으로 귀국한 후 김동진씨가 홀로 지혜양을 키우기 어려워서, 햇별의 시부모님이 지혜양을 1년반 넘게 키워주셨다. 김동진씨는 지혜양을 시가에 보내고 4개월 후에 논문의 한 절차를 마친 후 귀국했고, 남편과 함께 서울에 살면서 주말마다 지혜양을 보러 햇별에 다녔다. 김동진씨는 졸업한 후 지혜양을 데려왔고, 곧 지선양을 낳았으며, 취업하지 않고 두 아이 육아를 전담했다. 둘째 지선양의 돌이 지난 후부터 지금까지 시간강사로 일한다. 김동진씨는 올해 초에 1인연구소를 만들었다. 


나도 내가 앞으로 이 섹션의 글들을 어떻게 써나갈지 모르겠다. 개봉 11일째에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그 영화를 보러 가고 싶지만 또한 왜 보러 가지 못하고 있는지에 관해 생각하다가, 책을 다시 읽어나가며 나의 이야기와 김지영의 이야기가 어떻게 같고 다른지 스스로 한 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단 책을 펼쳤고, 맨 첫 장(9쪽이지만 그 이전은 표지들과 목차라서 실제로 이야기의 제일 첫 장이다.)부터 답답해졌다. 김지영 네 인생과 내 인생이 얼마나 그리 크게 다를까. 그렇구나 너는 그렇구나 나는 이런데. 우리 아이들도 어린이집에 다니던 시절이 있었지. 그래 그랬지. 


오버하지 않고,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고 쓰고 싶다. 누구를 위한 글이 아니라 나를 위한 글로.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르지만, 이 책을 읽어나가는 글쓰기를 끝낸 시점에도 아마 82년생 김지영 영화는 계속 극장에 걸려있을 것 같다. 그 때 보러 가도 늦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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