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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르마타 Jun 09. 2020

슈가맨으로 '세대갈등' 해결 불가능

연세춘추 취재 과정에서 기자가 보낸 질문에 대한 답변


1.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김선기 연구원이라고 합니다. <청년팔이 사회>라는 단행본을 썼습니다.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미디어문화연구 전공 박사과정입니다.     


2. ‘청년팔이 사회에 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더불어 해당 책을 쓰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청년팔이 사회>는 한국사회에서 반복되는 청년 담론의 한계를 분석하고, 대안적인 청년 담론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책입니다. 이 과정에서 세대주의(generationalism)라는 학술 개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세대주의는 담론 생산자는 물론 일상적 행위자인 사람들이 여러 가지 현상에 대해 사고하기 위한 범주로 세대(generation) 개념의 중요성을 과도하게 강조하거나 믿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저술 계기는 계약입니다. 제가 작성한 논문을 보고 연락한 출판사와 계약을 하게 되었기 때문에요. 별개로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언제든 제가 공부하는 내용을 대중서로 펴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3. 현 세대론의 핵심적인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세대론은 그 종류가 다종다양하고 각각 다른 결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뭉뚱그리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대체적 경향으로 볼 때 결국 세대 내의 이질성을 간과하고 세대 간의 차이를 과도하게 부각시키는 면은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는 실제와 차이가 크기 때문에 청년세대나 86세대, 노인세대 등을 ‘인종화’시키는 경향으로 이어지고, ‘세대 차이는 존재한다’, ‘세대 간 다른 이해관계는 존재한다’라는 믿음이 세대 갈등으로 이어질 개연성을 지닙니다.     


나아가 세대론 중 특히 청년론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청년세대’는 인종화되는 동시에 특히 약자/피해자화된 정체성이 됩니다. 이 과정에서 사회는 청년을 언제든지 시혜의 대상으로 만들어 ‘청년팔이’할 수 있게 되므로 문제가 됩니다.     


4. “88만원세대, N포세대와 같은 담론은 청년이 아닌 기성세대가 강요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강요라는 단어에 담긴 작가님의 구체적인 생각이 궁금합니다     


제 생각과 다릅니다. 일단 확인해보니 최소한 단행본에서는 ‘강요’라는 단어가 이 맥락에서 쓰인 적은 없습니다. 일단 생산한 주체가 청년이 아니라 기성세대인 것은 맞고, 또한 청년 담론뿐만 아니라 많은 사회적 범주 및 사회 구조 자체가 그 범주로 호명되는 주체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강요되고 강제되는 것은 맞지만, 아무튼 이 질문에 대해서는 답하기가 어렵습니다.     


5. 청년들을 도와줘야 할 대상으로 보는 사회 분위기 탓에 청년들의 목소리가 오히려 힘을 잃을 수 있다고 우려하셨습니다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사례가 있나요     


낸시 프레이저는 경제적 분배의 대상, 즉 복지 수혜자가 경제적으로는 일정하게 자본을 이전받게 되지만 이들이 사회적 인정 체계에서 평가절하됨으로써 오히려 상징적으로 자본을 빼앗기는 복지의 역설이 나타난다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 복지의 대상이 된다고 해서 반드시 정치의 주체의 정당성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한국사회에서는 그러한 경향이 있습니다. 청년 담론은 주체와 대상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 온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최근 한국사회에서는 청년들이 정치적 주체보다는 시혜의 대상으로 소환되는 경우가 더 잦고, 이와 관련하여 청년의 발화에는 여러 가지 의심이 따라 붙습니다. 또한 최근 청년세대에 대한 연령주의(ageism)적 편견이 강화되고 있다는 조사결과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오늘날의 청년을 열심히 일하기보다는 국가나 부모 등에 기생하려고 하는 존재로 보는 부정적 고정관념들이 발생 및 강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6. ‘청년은 관심 없는 청년담론을 연구하면서 겪었던 어려움은 없었나요청년들이 그들의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담론을 연구하는 것은 결국 텍스트를 접하는 일이기 때문에, 청년이 청년 담론에 관심 없다고 해서 다른 담론 연구자들이 겪는 것 이상의 특별한 어려움을 겪지는 않습니다. 다만 청년이 청년 담론에 관심이 없는 게 가능하다는 단순하고 명쾌한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 부분에서의 어려움은 있습니다.     


연령/출생연도 기준의 세대주의적 사고 및 세대론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청년 문제’란 청년이 겪는 문제라는 방식으로 정의하지 않기 때문에, 청년이 꼭 청년 문제에 대응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를테면 50대 정치인이 50대 정책만 만들지 않고 이것저것 만들 듯이, 청년이 다뤄야 하는 정책 및 혹은 문제 역시 한국사회 전반으로 확장될 수 있고 그래야 합니다. 그러나 세대론이 워낙 팽배하고 청년에게 주어지는 기회들 혹은 청년으로서가 아니면 주어지지 않는 참여의 기회가 많기 때문에, 청년은 전략적으로 청년으로서가 아니라 시민으로서 사회적 정치적 발언을 하는 전략을, 청년으로서 발언하는 전략과 동시에 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7. 세대 간 갈등 양상은 어떻게 나타나며갈등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두 가지로 설명하겠습니다.     


1) 사람 대 사람의 갈등이 아니라, 세대 간의 갈등은 근본적으로 앞서 언급했다시피 ‘세대 간 차이가 존재한다’ 혹은 ‘세대 간 이해관계 상충이 존재한다’라는 사고가 전제되어야 성립 가능합니다. 한국사회는 이러한 세대주의적 상상이 팽배해지도록 부추기고 있고, 이는 세대 갈등이 심화되는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2) 그렇다고 언제 태어났느냐가 개인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태어난 시기에 따라 같은 지리적 조건 내에 살더라도 다른 환경을 거쳐 성장하게 되고 이는 개인의 성향이나 가치관 등에 반영됩니다. 따라서 다른 세대의 개인끼리는 생각과 행동 방식 등이 유의한 차이를 가질 개연성이 높으며, 이 사이의 부딪힘은 갈등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대 간의 차이가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세대가 다르더라도 ‘잘 맞을’ 수 있고, 세대가 같더라도 ‘안 맞을’ 수 있습니다. 이는 세대 차이 이전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할 필요를 제기하며, 따라서 세대 갈등에 대한 인식 역시 세대 차이의 존재에 대한 인식(즉 세대론)을 경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8. 세대 간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세대 간 공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이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세대 공감이 아니라 일반적인 타자에 대한 윤리가 필요합니다. 세대 공감이라는 개념은 세대 간의 절대적인 차이가 존재한다는 전제에서만 가능한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청년-기성세대의 이분법을 가정했을 때, 청년이 기성세대에게, 기성세대가 청년세대에게 공감한다는 의사를 표하거나 혹은 상대를 이해하거나 인정하게 된다 하더라도, 서로가 서로에게 ‘다른 세대’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서로를 다른 인종으로 보는 한 세대론에 기반한 과잉된 차이의 발견과 갈등 생성의 여지는 끊임없이 형성됩니다. 따라서 오히려 필요한 것은 일반적으로 나(동일자)와는 다른 모든 인간/비인간 존재의 타자성을 어떠한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는 개별 개인들의 윤리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세대론과 같은 각종 담론들이 어떻게 이러한 차이에 대한 인식, 인종화, 갈등 등을 부추길 수 있는가에 대한 리터러시 및 성찰성을 갖추기 위해 (사회적/집단적으로) 노력해야겠다고 하겠습니다.     


9. 최근 슈가맨과 같은 방송 프로그램들이 세대 간 공감을 위한 창구로 등장하고 있습니다일각에선 이런 프로그램들이 소통의 매개체로 작용해 긍정적으로 기능한다고 평가하는데요이에 대한 작가님의 구체적인 의견이 궁금합니다.     


세대 공감을 통한 세대 갈등 극복이라는 아이디어가 허구에 가깝다고 보는 입장이라고는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슈가맨>에 관해서 말씀드리자면 저도 ‘탑골공원’에 해당하는 연령대에 있기에 재미있게 보는 프로그램이지만, 세대 갈등의 극복과 관련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앞서 타자에 대한 일반적인 윤리를 키워야 한다고 말씀드렸는데, (물론 문화연구는 문화적 텍스트의 결정성을 상대화하고, 수용자가 텍스트가 제시하지 않는 다른 해독과 수행을 충분히 열어젖힐 수 있는 행위성agency을 가진 존재로 보기는 합니다만) 일반적으로 슈가맨 류의 프로그램은 타자에 대한 열림보다는 오히려 자기 자신의 동일성으로 회귀하는 나르시즘적인 노스탤지아를 부추기는 것으로 논의됩니다. 10대 정도를 제외하면 (혹은 10대 내에서도) 슈가맨 방청석에 앉아 있는 모든 세대에게서 발견되는 태도―“역시 90년대 음악이 최고!”(3~40대), “역시 아이돌 음악 쩔었던 건 2008년이지!”(2~30대)―가 이 프로그램이 세대 갈등 맥락에서 왜 오히려 퇴행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렇게 과거로부터 온 취향이 계속해서 일종의 정전(canon)으로 공인될수록, 현재 혹은 미래의 새로운 취향들은 지속적으로 평가절하됩니다. 이는 어렵지 않게 뒷세대에 대한 평가절하로 연결될 수 있고요.     


10. ‘새로운 정치를 청년세대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제시하셨습니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 질문 역시 제가 읽기에는 정말 제가 이렇게 제시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듭니다. 다만 ‘새로운 정치’에 대해서 말하면 일단 세대주의적 사고의 지배하에서 언제나 젊은이들이 하는 것은 새로운 것, 나이 든 사람들이 하는 것은 낡은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에, 역으로 생각하면 ‘새로운 정치’가 ‘젊은 정치’라거나 반대로 ‘청년’이 하는 것은 ‘새로운 정치’라는 식의 논리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책에서 제안하고 있는 것은 세대주의적인 사고가 어차피 피할 수 없이 팽배해 있는 상황임을 받아들여야 한다면, 세대주의를 청년들조차 ‘우리 세대’ 내부의 동일성을 물화하는 방향으로 이용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대 내부의 이질성과 타자성을 발견하여 어떠한 세대 내부로 계속해서 통합하기 위한 시도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여성도 청년이다’, ‘성소수자도 청년이다’, ‘비진학청년도 청년이다’, ‘경력단절여성도 청년이다’ 같은 방식으로 ‘청년세대’가 실질적으로 포괄하는 범위를 지속적으로 넓혀가는 방식의 정치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이는 조금 더 나아가면 청년세대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이러한 포함이 확장될 수 있을 것입니다.     


11. 세대 간 조화를 위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사회에는 다양성이 필요하고, 그 이유는 개인이 특정한 정체성 등과 관련하여 사회적으로 배제되는 상황이 일어나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취약계층/여성/남성/장애인/트랜스젠더/청년/노인/특정종교인/특정시민단체후원자/공공주택거주자 등이라는 이유로 실질적인 정치 참여나 사회 참여의 권리가 제한되어서는 안 됩니다. 특정한 정체성이나 사회집단에 대한 부정적 편견은 그러한 ‘실질적 제약’을 강화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편견을 줄이기 위해 사회에는 다양성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동질성에 기반한 네트워크를 추구하고자 하는 호모필리(homophily) 성향이 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한 예컨대 소셜믹스와 같은 정책이 행해지는 것이라고 봅니다. 질문하신 세대 간 조화 내용과 관련하여 최근 서울특별시 청년청에서는 ‘세대균형’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안하면서 세대균형지표를 개발하는 중에 있습니다. 여기서 세대균형은 청년세대와 기성세대 간 ‘기회의 균형’으로 정의되고 있는데, 이를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면 결국 어느 쪽도 기회로부터 배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을 ‘균형’이라고 의미화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러한 개념과 관련해 서울시의 모든 위원회에 청년시민 위원의 비율을 15%까지 확대하고자 하는 정책 등을 펼치고 있기도 합니다.     

12. 마지막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인터뷰를 하면 이 질문을 꼭 마지막으로 듣는데, 제가 멘토가 되려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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