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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회운동, 무엇이 새로운가?

집합행동과사회운동 8주차 쪽글

by 페르마타

신사회운동론에 관한 글들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들었던 생각은 왜 이러한 운동이 ‘새로운 것’으로 받아들여졌는가에 관한 의아함이다. 그러한 의아함이 들었던 한 가지 이유는 글들이 쓰였던 시기와 내가 살고 있는 시기에 시차와 지리적인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시기는 이미 ‘신사회운동’이라고 명명될 수 있는 사회운동의 형태들이 자연스럽게 자리잡고 있는 상태였고, 또 한국의 경우는 사회운동 자체가 크게 발달했다고 보기 어려울뿐만 아니라 신사회운동으로 대체(?)되기 이전의 계급운동의 기록도 선명하지 않다. (오히려 신사회운동 이전의 흐름은 ‘민주화운동’으로 보는 시각들이 있는 것 같고, 또 87년 민주화 이후에서야 계급을 바탕으로 한 운동이 제대로 기획될 수 있었던 시기에 이것이 결과적으로 제대로 실현되지 않고 빠르게 다른 흐름들로 이어졌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또한 Bagguley의 글에도 잠시 설명되고 있듯이 예컨대 페미니즘 운동이 이 시기에 새롭게 발생한 것도 아니고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던 것인데, 왜 이것이 갑자기 ‘새로운(new)’ 사회운동으로 명명되는지에 관해서 적당한 설명을 찾기 어려웠다.


이것이 왜 새로운 사회운동인지에 대한 두 필자들의 생각도 갈린다. Offe의 경우, 신사회운동에 관한 여러 가지 논의들을 종합하고 검토하면서 결국 이것을 계급론의 관점에서 풀어내고 있다. Figure 2.1(p. 96)에 신사회운동과 이 시기의 정치 역학에 대한 Offe의 입장이 잘 정리되어 있는데, 결국 Offe에게 있어서 신사회운동은 자본주의 사회에 일어난 여러 가지 변동 상황 속에서 부상한 새로운 중간계급(new middle class)이 중심이 되어, 구중간계급의 지엽적인 분파들, 비상품화된(decommodified) 사람들을 포함한 계급적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새로운 이슈에 대한 가치(value) 부여를 바탕으로 새로운 운동방식(mode of action)으로 만들어나가는 사회운동의 새로운 ‘계급적 분파’로 이해된다. 새로운 중간계급은 좌파와 연합할 수도 있고, 우파와 연합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좌파와 우파가 연합하고 신사회운동 분파가 배제될 수도 있다고 설명하는 방식은 Offe가 새로운 중간계급, 즉 신사회운동 세력을 ‘제3의 계급, 세력’으로 보고 있다는 점을 잘 드러낸다.


반면 Bagguley의 경우는 자신의 글에서 직접적으로 Offe를 비판하기도 하면서 신사회운동을 사유하고자 할 때 가장 먼저 폐기해야 하는 것으로 사회학적 설명의 계급 중심성을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Offe와 같은 수많은 신사회운동이나 포스트-포디즘, 비조직 자본주의 등 자본주의의 변화를 논해 온 수많은 논자들은 사회변화의 근본적인 원인을 경제의 구조에서 찾고 그 갈등의 지점을 계급정치에서만 포착하는 경제주의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그에게 ‘새로운(new) 사회운동’을 논한다는 것은 기존의 사회운동과 다른 새로운 사회운동의 범주를 만들어내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운동을 바라보는 계급 중심적인 시각을 해체하고, 새로운 것에 걸맞은 ‘새로운 시각(vision)’을 도입하는 문제로 이해되는 것으로 보인다. Bagguley는 사회운동을 분석하기 위해서 구조의 복수성(plurality)에 대한 인식이 필수적이며, 예컨대 그에 따라 페미니즘 운동의 변화를 설명할 때 자본주의의 변화가 독립변수, 페미니즘의 변화가 종속변수가 되는 식이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관찰해야 할 것은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라는 두 개의 구조가 맺고 있는 관계성의 변화라고 주장한다.


두 글을 읽고서 내가 더 선호하게 된 설명 방식은 Bagguley의 것이었다. 이것은 두 필자가 글을 쓴 이후 3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고서 현상을 바라볼 수 있는 내 시각에서 나온 것이지만, 최소한 내가 경험하고 있는 한국에서는 Offe가 설명한 것처럼 신사회운동 분파가 좌파나 우파와 분명히 구별되는 하나의 세력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우며, 또한 이슈를 중심으로 보아도 계급 문제를 이슈로 삼는 운동과 다른 사회운동 사이에 운동방식 면에서 별다른 차이가 있다고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러한 관찰은 한국에서 노동조합을 바탕으로 한 조직된 계급 운동 자체가 많이 죽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Offe의 글을 읽으면서 인상적으로 느껴졌던 부분은 신사회운동 내부의 다양한 부문운동들이 서로 일시적인 동맹을 만들 수 있는 부분이 있고 또 제도화의 정도가 낮다는 신사회운동의 약점은 다양한 사회적 연결망을 빌려씀으로써 – 이 부분은 퍼트남(?) 식의 사회자본을 생각나게 하기도 한다. -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보는 것이었는데 나는 이러한 설명이 기존의 구(old)계급운동 따로 신사회운동 따로 설명되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사회운동 전체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적용할 수 있는 일반이론으로 만들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신사회운동이라는 명명 자체가 계급정치의 중심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여겨지는 상황에 대한 맑시스트들의 분석에서 나왔을 것이라고 예측되는데, 계급운동을 다른 사회운동에 비해 우선적이거나 더 특별한 것으로 놓지 않을 때 사회운동 상황이나 맥락, 국면에 대한 실질적인 분석이 가능해지리라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Offe, C. (1987). Challenging the boundaries of institutional politics: social movements since the 1960s. In Maier, C. S. (eds.). Changing boundaries of the political (pp. 63-105). Cambridge University Press.

Bagguley, P. (1992). Social Change, the middle class and the emergence of ‘new social movements’: a critical analysis. The Sociological Review, 40(1), 2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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