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류학이론 9주차 발제문 (각주들은 지웠다)
들어가며: 미셸 푸코의 얼굴들
개인적으로 미셸 푸코는 내가 약간의 친밀감을 느끼는 저자 중의 한 명이다. 석사논문을 담론분석 방법을 통해 썼고, 최근에 투고한 논문에서는 통치성(governmentality)에 관련한 문제를 다루었다. 그를 더 친밀하게 느끼게 된 하나의 계기는 내가 가지고 있었던 그에 대한 인식이 부정에서 긍정으로 바뀌는 경험을 한 번 거쳤기 때문이다. 푸코를 인용하는 연구논문 – 특히 대학생/청년주체를 신자유주의 규범에 종속된 주체로 규정하고자 하는 논의들은 하나같이 푸코의 ‘신자유주의 통치성’ 개념을 사용한다. - 을 통해 재현된 푸코의 이론과 한참의 망설임 끝에 번역본으로나마 푸코의 글을 직접 읽기 시작하면서 직접 느꼈던 푸코의 이론은 매우 큰 차이가 있었다. 내 경우에, 전자는 ‘신자유주의/권력 비판’ 이상의 것을 할 줄 모르는 대안도 현실감각도 없는 강단 좌파의 모습이었다면 – 어쩌면 저자 김형효가 인용하고 있는 메르키오르가 말하는 푸코의 ‘네오 아나키스트’적인 면모와 유사한 느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 후자는 권력의 작용, 국가의 문제, 주체성의 문제 등을 최대한 엄밀한 방식으로 설명하면서 기존의 단순한 설명 체계에 대항하고자 하는 사회과학자 혹은 이론가의 모습이었다.
아마도 나의 푸코에 대한 느낌 변화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또 싫어하는 푸코를 읽는 방식이 각각 있다는 사실 자체가 푸코 이론의 복잡성과 모호성을 반증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이번 발제문을 쓰기 위해 텍스트를 읽는 과정에서 또 한 번 했다. 이 텍스트 속의 푸코는 내가 아는 푸코와는 꽤나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텍스트의 주 내용을 요약하고, 마지막에 약간의 논의를 덧붙였다. 논의에서는 주로 텍스트 내에서 저자 김형효가 푸코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과는 다르게 푸코를 비판하거나 푸코 이론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있는 부분과 관련한 의문점이나 생각거리를 풀어보았다. 대부분 텍스트의 워딩을 그대로 가져왔으나, 일부는 나에게 더 익숙한 방식으로 다시 옮겼다(ex. 인식성 → 에피스테메, <성욕의 역사> → <성의 역사>).
<말과 사물> (Les mots et les choses) - 5. 질서와 표상의 분류학 / 6. 역사와 인간시대의 철학적 특징
<말과 사물>은 르네상스 시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양사에서 지식구조의 변형을 비판적으로 논술한 고고학이다(445). 인문과학의 고고학(Une archéologie des science humaines)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저서는 서양사를 르네상스 시기, 고전시대, 근·현대 등으로 서양사를 3분하여 논파하면서(<표 1> 참고), 19세기 이후 인문사회과학에서 어떻게 해서 인간학과 인간개념이 주제로 등장하였는가를 밝히고 있다(446).
르네상스(16세기) 시대의 에피스테메(인식성), 담론형성과 언표의 기술은 닮음(la ressemblance)의 법칙에 의하여 모든 담론의 실천양식이 집합되어 있다(448). 고전시대(17세기)에 언어활동은 사물을 표상하기 시작했으며(450), 푸코는 고전시대 지식의 특징으로서 ‘질서를 진술하는 일반과학’을 이야기했다(452). 이때 철학에서 인간은 창조자가 아니며, 사유의 본질은 이미 있어 온 세계질서를 인위적인 진술과 기호로 나타내는 기능에 있다(453). 고전시대에 ‘최고의 주체로서의 인간’은 어떠한 자리도 차지하지 못한다(454). 고전시대에 대표적인 세 가지 학문 – 일반문법, 부의 분석, 자연사 – 은 공통적 에피스테메를 지닌다. 일반문법(la grammaire génerale)은 모든 언어가 복종할 수 있는 원칙을 찾으려는 언어문법학이다(455). 푸코는 고전시대의 언어이론은 사물과 사물을 표상하는 개념(기호)과의 사이의 상보성과 차이성을 어떤 도면에 의해서 질서화할 것인가에 관한 노력이라고 본다(461). 자연사(l’histoire naturelle)의 연구는 눈으로 직접 보고 관찰하여 단지 표면에 나타나 있는 것을 통하여 그것들의 성격이나 공통성에 대한 명명의 방법을 사용하였다(462). 뷔퐁의 생명진화설과 린네의 생명고정설은 모두 이후 다윈의 진화론과는 성격이 다른 공통된 에피스테메 – 차이의 일반적 그물에 의해서만 동일성을 정의하는(465) - 에 기반하고 있다. 정치경제학으로 변형되기 이전의 부의 분석(l’analyse de richesse)은 고전시대 사회과학의 중심이었다(467). 17세기 고전시대 이후 화폐는 고유한 폐쇄적 가치나 대용가치의 성격보다 다른 것과의 교환기능을 중시하게 된다. 즉 화폐는 이제 순수한 교환기호의 가치만을 지닌다(469). 종합하면, 고전시대의 자연존재는 서로서로 연결된 고리처럼 이웃관계를 형성하여 자연이 하나의 영원한 연속체이게끔 하며, 고전시대에는 인식과 지식의 기원이나 진보나 생산과 같은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으며(472), 그 시대에는 질서의 조직자인 유별만이 전부였으며 원인과 결과는 존재하지 않았다(473).
반면 19세기 이후 역사와 인간의 시대가 등장한다. ‘질서’의 고전시대는 원인과 결과에 대한 ‘시간적 선후’와 ‘계기’가 도입된 ‘역사’의 시대에 의해 대체되었으며, 인간(l’homme)이라는 특이한 개념이 모든 사고의 중심을 이루게 되었다(475). 새로운 단절 이후 일반문법, 부의 분석, 자연사는 각각 언어역사학(la philologie), 정치경제학(l’economie politique), 생물학(la biologie)으로 변형되었으며, 이 삼원체제의 중심개념으로 언어활동(le langage), 노동(le travail), 생명(la vie)이 대응되었다(474). 18세기 말 칸트 철학의 사유와 사상은 근대세계를 열어놓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는데, 고전시대적 인식의 매체였던 ‘표상’이 어떤 조건에서 대상의 인식을 가능케 하게 하는 물음에 대해 선험적 주체(le sujet transcendental) - 경험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대상과의 관계에서 모든 가능한 경험일반의 형식적 조건을 규정하는 유한한 존재 - 라는 개념을 등장시키고, 인간의 표상이 대상(객체)을 완전히 그 배후까지 인식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하여 현상(표면)과 물자체를 구분하였다(478). 푸코는 칸트철학에서부터 인간중심주의적 사고, 즉 인간학적 사유가 발아되면서 인간의 유한성, 주체의 선험성, 대상의 불가지적 심층부가 발생하였으며(480), 인간은 존재연쇄 속의 한 존재가 아니라 객관과 대결하는 주체로 탈바꿈되었다고 보았다(481).
그런데 푸코가 보기에, 이러한 근대적 인간개념은 초점이 맞지 않는 이중렌즈처럼 어색한 모순지점들을 지닌다(482). 우선, 칸트의 선험적 경험론과 선험적 변증론은 전자는 자연주의적 견해이며 후자는 역사주의적 견해라는 면에서 모순이며(485), 실증주의적 유형의 진리와 종말론적 유형의 진리가 애매모호하게 불일치한다는 점에서 모순이다(486). 이러한 근대철학의 이론적 혼동은 오로지 인간주의적 철학과 지식에서 오며, 경험과 선험의 이중렌즈를 극복하는 길은 인간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포기하는 것이다(487). 또한, 인식의 근대성은 존재와 표상의 상관관계를 포기하고 주관과 객관으로 세계를 양극화하였는데, 이와 동시에 불가지의 객관세계로서 물자체가 존재한다는 것은 묘한 이중성이다(488). 근대·현대철학에서의 cogito는 언제나 자신이 투명하게 알지 못하는, 푸코에 의하여 사유되지 않는 것(l’impensé)이라고 호칭된 것을 뿌리에 갖고 있다. 마지막으로, 푸코는 하이데거 비판을 염두에 두고 인간이 기원(l’origine)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기원이 후퇴하면서 동시에 역설적으로 다시 재귀하는 현대철학의 모순을 짚어낸다(492). 이러한 근대철학의 모순에 대한 푸코의 비판을 토대로 들뢰즈는 푸코의 철학이 근대 이후 왜소해진 인간적 형성의 사상에서 다시 무한과 벗하는 신적 형상으로 되돌아갈 것을 주장하는, 니체 이후의 새로운 초인의 사상이라고 해석하였다(494).
<감시와 처벌> (Surveiller et punir) - 7. 근대 부르주아 사회의 생리와 그 비판
<감시와 처벌>은 푸코가 형정사를 역사·철학적으로 분석한 것으로, 형벌을 다루는 제도와 그 역사에 관한 내용에 초점을 맞춘다(497). 1830년 이후에 고문의 남용은 억제되고 그 대신 지나칠 정도로 세심하고 자질구레한 형벌의 규칙이 제정되는 형벌의 변화가 나타나고, 이것은 감옥사회(la société carcérale)의 탄생을 예고한다(498). 르네상스 이전의 구경의 사회(la société de spectacle)은 감시의 사회(la société de survéillance)로 변화한다(507). 이전의 공개고문과 형벌의 법적 권위는 주권자인 국왕이었으며 ‘복수’의 성격이 강한 형벌체계였던 반면, 18세기 후반부터 감옥은 지식의 도구장치로서, 죄수의 생각을 통제함으로써 죄수의 몸을 바른, 유용한 생각에 복종시키자는 지배적인 새로운 형법사상과 관계되었다(499). 푸코는 라메트리의 인간기계론(L’Homme-machine)의 이념을 인용하면서, 형벌의 변화는 전통사회에서 시행되었던 것보다 더 엄격하게 사회통제의 교묘한 형식에로 치닫는 도덕적 기술(la technologie morale)을 창안하면서 권력의 의지(a volonté de puissance)를 오히려 더 교묘히 감추고 있다고 판단하였다(500). 이러한 맥락에서 특히 감옥 안에서 완전한 감시와 세심한 통제의 체계가 완벽하게 기능을 발휘하도록 고안된 것이 영국 공리주의자 벤담이 생각한 원형감옥(la Panopticon)의 제도이다(502). 이러한 형벌체계의 변화는 병원제도나 종합병원, 학교, 군대 교육 관리제도 등의 도입과 구조적 동형성을 지니며 부르주아 사회의 정치적 이상인 규율사회(la société disciplinaire)의 창조와 관련된다(503). 감시와 규율은 부르주아 사회 – 합리성, 효율성, 기술성, 생산성 - 에 적응하고 거기에 알맞은 유순한 순종적 인간(homo docilis)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며 이에 따라 선량한 시민과 불량한 시민이 나뉜다(505). 푸코는 이러한 감옥이 범죄자를 줄이는 일보다 오히려 복종의 전술 속에 인간으로부터 범법자를 구분하고 분할시키고 이용하는 데 성공했다고 비판한다(506). 부르주아 사회는 형식적으로 평등적인, 법전화한, 명백한 법률적 틀의 배치를 방패로 삼아서 본질적으로 불평등적이며 비대칭적인 미시적 권력의 모든 체계를 유지한다(506).
푸코는 형벌체계에 대한 니체의 계보학(la généalogie)적 분석을 통해 권력(le pouvoir)와 지식(le savoir)의 상호 연관성을 이론화한다. 권력의 관계가 중단된 곳에서 지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권력은 지식을 생산하며 권력과 지식은 서로서로를 함축하고 있다(511). 니체가 말하는 권력에의 의지(la volonté de puissance)는 지식에의 의지(la volonté de savoir), 진리에의 의지(la volonté de vérité)와 다른 것이 아니다(512). 이렇게 권력-지식이 규율된 인간을 만들려고 하는 근대사회의 요구에 응답하고 있는 작태를 푸코는 지식의 생체적 권력(le bio-pouvoir)라고 불렀다(512).
저자 김형효는 푸코 철학이 몇 가지 내재적 모순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첫째, 푸코는 고전시대의 고고학적 지식체계를 예찬함과 동시에, 그것과는 전혀 판이한 광기, 몰이성, 성욕의 쾌락을 예찬하고, 기율과 기강에서의 도피를 노래한다(507). 둘째, 푸코는 니체의 인간주의적이지 않은 초인사상을 ‘사랑’했지만, 니체는 고전시대의 성향을 지니지 않은 디오니소스적인 것이었다(508). 셋째, 푸코는 실증적으로 언제인가를 확실히 알 수 없는 고대 희랍의 시대로 마음이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에서, 그의 하이데거에 대한 비판과 마찬가지로 기원의 후퇴와 재귀의 시간적 애매모호함에 빠져 있다(509). 넷째, 푸코는 <말과 사물>에서 예찬된 고전시대의 질서를 <감시와 처벌>에서는 강압과 감시의 대명사로 둔갑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모순적이며, 왜 부르주아 시대에 대해서는 부정적 시각만을 제시하고 있는지 의문이다(510).
<성의 역사> (Historie de la sexualité) - 8. 성욕의 역사
<성의 역사> 3부작 - <앎의 의지>(17세기 이후), <쾌락의 사용>(기원전 4세기), <자기에의 배려>(기원전 2세기) - 을 통해 푸코는 니체가 말한 계보학의 방식대로 성에 대한 담론이 어떤 문화적 구조의 배경으로 나타나게 되었고, 그런 가치판단이 나오게 된 구조적 토대를 성의 언표와 담론을 기초로 하여 그 에피스테메에서 표명하려고 하였다(513). 기본적으로 푸코는 오늘날 서영사회에서 종교, 교육, 도덕관습, 정신의학, 생물학이 지배하고 있는 성과학(la science du sexe)과 성의 본질을 존중하는 ‘관능의 술’을 비교함으로써 성과학의 현주소가 인간에 관한 현대문명의 억압과 어떻게 연관되는가를 해석하려 한다(514). 기독교로부터 성에 대한 죄의식의 강요와 그리고 성과학으로부터 성을 객관적 인식의 대상으로 보아 나온 자료와 고백의 사회체제가 합쳐져서 서양사회의 생체적 권력(le bio-pouvoir)이 작용하고 있다(515). 서양사에서 17세기까지만 해도 성과 성욕은 종교적, 도덕적인 판단의 영역에 속했지만 근대 이후 그것은 권력에 의한 관리 체제에 들어갔다(515).
고대 희랍이 지금의 기독교 도덕보다는 성에 대해 훨씬 관대한 것이 사실이지만(518), 고대 희랍과 교양인들은 방종한 성생활을 영위하기는커녕, 그들의 생각은 기독교적인 엄격성과 수치감을 기독교가 생기기 이전에 벌써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저자는 <성의 역사>에 드러난 푸코의 주장으로 보고 있다(519). 고대 희랍과 로마 교양인들의 성도덕과 기독교의 성도덕 사이의 차이는 고대인들은 도덕법칙을 법전화해서 모든 이에게 획일적으로 강요하기보다 개인의 금욕주의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며 특히 그러한 금욕주의는 스스로를 교양인, 자유인응로 여겼던 지도층의 윤리 혹은 기술 – 양생술, 가정관리술, 연애술 - 이었다는 점이다(519). 성의 과다한 추구는 그 자체 악이라기보다 오히려 잠재적 위험으로 간주되었다(520).
저자 김형효에 따르면, 푸코는 주체의 소멸과 반인간주의의 기치를 내거는 철학적 사유를 수행해 왔으나, <앎의 의지>에서부터 암암리에 주체 개념이 나타나기 시작해 <쾌락의 사용>과 <자기에의 배려>에서 본격적으로 주체 개념이 부정되지 않고, 욕망의 인간적 주체로서 적극적으로 나타나고 있다(518). 푸코가 ‘욕망으로서 성욕의 경험이 주체에게 있어서 어떻게 구성되어졌던가’를 계보학적 입장에서 분석했다는 것이다. <말과 사물>, <지식의 고고학>, <담론의 질서>에서 푸코에게 주체는 형이상학의 쓸데없는 잔영이었으며, 그러한 한에서 푸코는 분명히 구조주의자였으나, <성의 역사>에서는 본격적으로 주체개념이 등장한다(524). 특히 김형효는 자기 제어(la maîtrise de soi)는 주체의 능동적 의지를 배제하고는 설명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푸코철학의 이율배반성(?) – 9. 네오 모랄리스트냐, 네오 아나키스트냐?
저자 김형효는 푸코의 고고학과 계보학의 기본 틀은 구조주의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았지만, 1980년 이후에 주체의 능동성을 부각시키면서 푸코는 학자들로부터 해석학을 암암리에 전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고 정리하였다(525). 이와 같이 푸코 철학의 의미론적 성격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이견이 있다. 허버트 드레이프스와 폴 레비노우는 푸코의 사상과 철학을 네오 모랄리스트(néo-moraliste)로 보려고 한다. 이들은 푸코가 스토아 학파의 모랄을 이상으로 삼고 있다고 주장한다(527). 푸코는 생활철학을 종교와 법에 맡기는 순간 우리는 법과 의학의 표준화된 권력의 노예로 전락하고 자유인의 긍지를 상실하게 된다고 보며, 그러한 면에서 푸코의 모랄은 획일적 규범이 점차 산업사회에서 강화되어 가는 것을 극복하려는 노력과 같다(527). 이러한 면에서 푸코가 권력-지식에 의하여 조종되거나 지배당하는 주체에서부터 새로운 윤리의 주체를 출현시키려 하는 철학적 의도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526). 그러나 생체적 권력에 대한 비판철학인 푸코의 모랄리즘 역시 – 모든 역사에는 인간이 미리 사유하지 못한 불행이 도래하기에 - 역사 앞에서 완결된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저자는 주장한다(529).
반대로, J.-G. 메르키오르는 푸코의 사상과 철학을 네오 아나키스트(neo-anarchiste)로 논의한다. 푸코는 진리로서 군림하는 것에 대하여 크게 의심을 품고 있는데, 메르키오르에 따르면 푸코 자신의 주장조차 권력적 이성의 도구가 아니라는 보증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푸코의 철학은 중대한 인식론적인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530). 또한 역사의 불연속성을 강조하는 푸코의 면모도 ‘모든 형태의 역사적 연속성을 부정한다면 어떻게 역사를 만드는 것이 가능한가’ 라는 의문에 마주하게 된다(531). 메르키오르는 푸코가 적극적 이상을 제시하지도 않았고 단지 근대·현대문명의 강압성을 비판만 하였으며, 자기 자신의 사상에 대한 과학성을 주장하지도 않았다는 면에서, 푸코를 반유토피아적인 사상가이자 강단 허무주의(Kathedernihilismus)의 창시자였다고 평가하였다(532).
논의: 내가 왜 푸코를 변호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와 공간적으로도 완전히 다른 곳에 살았던 학자를 굳이 찬미하거나 계속 인용하면서 이야기해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도 학회에서 발표를 할 때 푸코의 ‘신자유주의 통치성’을 복수의 ‘통치성(들)’로 확장시켜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요지의 이야기를 했다가 토론자 선생님으로부터 ‘신자유주의’라는 프레임도 문제이지만 우리가 굳이 미시권력 이야기를 할 때 푸코의 통치성 개념을 거쳐야만 하는지도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시 고민을 해보았는데, 나는 나의 주장을 전개하기 위해서 푸코와 통치성 개념을 계속해서 말하지 않을 수 없겠다는 결론을 냈다. 푸코라는 학자와 그의 이론이 이미 내기물로 걸려 있기 때문이었다. 푸코라는 저자는 특정한 종류의 학문적 주장들을 하는데 있어서 정당화된 근거로 활용되고 있는 상황이며 – 예컨대, 서두에서 이야기한 청년주체성의 문제 – 푸코를 근거로 하여 그러한 주장이 계속되는 것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결국 푸코가 그러한 주장의 적당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해명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 탓이다. 유사하게, 이 텍스트를 읽으면서 저자의 푸코 비판 혹은 푸코 이론에 대한 서술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들고 그것과 관련해 (나보다 당연히 더 많이 푸코, 그리고 다른 철학들을 공부했을) 저자의 서술을 비판해보고자 하는 까닭은 내가 푸코를 아주 좋아해서 푸코에 대한 비판을 막아야만 한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푸코에 대한 특정한 방식의 읽기가 반복될 때 혹은 푸코를 비판하는 특정한 관점의 사유가 지속되는 것이 일정하게 사회를 이론적으로 이해하는 데 있어서 부정적인 효과를 가질 것이라는 나의 입장(느낌적인 느낌)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1. 푸코가 어떤 서술에서는 고전시대를 찬양하면서 어떤 서술에서는 고전시대를 비판하고 있다거나, 어떤 서술에서는 고전시대를 찬양하는 반면, 어떤 서술에서는 고대 희랍의 세계를 이상으로 삼고 있어서 모순이 존재한다는 비판은 이해하기 어렵다. 사실 <말과 사물>을 읽은 적은 없지만, 적어도 내가 읽었던 <성의 역사> 삼부작에서의 푸코는 기원전의 시간들을 ‘찬양’하고 있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가령 동성 간의 사랑에 관한 서술에서도 기원전의 세계에는 (특히 소년과의) 동성애와 이성애를 구분하는 범주 구분이 특별히 존재하지 않았다고 서술하는 것이지, 푸코가 그 시대에 특유하게 존재했던 ‘악으로 여겨지는 범주’에 대해서 다루지 않는 것은 아니다. 푸코가 17세기 이후, 기원전 4세기, 기원전 2세기, 그리고 (아마도 4권이 발간되었더라면 읽을 수 있었을) 기독교가 정착된 시기의 섹슈얼리티에 관한 담론들을 분석한 것은 과거를 찬양하면서 현대를 비판하기 위한 목적보다는 계보학적인 분석을 성실히 수행하기 위한 목적이 더 기본적으로 깔려있다고 나는 느꼈다. (그리고 비슷한 관점에서 아마도 <말과 사물>에서도 고전시대를 푸코가 딱히 ‘찬양’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푸코가 광기, 몰이성, 성욕의 쾌락을 예찬했다거나 부르주아 시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면밖에 보지 않았다는 식의 서술은 다소 푸코에 대한 평면적인 이해라고 느껴진다.
2. 푸코의 철학에서 주체 개념이 등장하지 않다가 주체 개념이 후기의 글에서 등장한다고 보는 시각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주체 개념이 등장하고 서술에서 역할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푸코의 반인간주의나 주체의 소멸 논의와 배치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 푸코의 관점에서 주체는 권력과 담론의 작용에 의해서 ‘구성되는 것’이며, ‘자기’는 개인적 자유의 도구라기보다는 권력의 도구이며 지배의 산물일 따름이기 때문이다(Foucault, 1980/1991, 175쪽). 또한 푸코가 권력이 개인을 어떻게 ‘주체화’시키는지의 문제를 분석하기는 하지만, 푸코는 권력을 일방적으로 작동하는 개념으로 보지 않는다. 푸코는 우리 사회를 규율적이라고 특징짓는 태도와 온순하고 규범화한 주체들만이 사는 규율 잡힌 사회를 엄격하게 구별한다(Merquior, 1985/1999, 185쪽). 일단 육체 위에 권력의 효과가 발휘되고 나면 권력은 역으로 그 육체 위에서 저항을 받게 된다(Foucault, 1980/1991, 85쪽). 푸코와의 인터뷰를 진행한 미셸 페로는 감옥 수감자들의 저항, 테일러 시스템의 실패, 기숙사 시설의 실패, ‘성스러운 월요일’ - 매주 첫날에 일하기를 거부했던 유럽 노동자들의 사례 - 등 소극적 저항의 예를 언급하기도 했다. 또한 앞서 텍스트는 메르키오르를 인용하면서 푸코가 그 자신이 생산하는 지식조차 권력의 도구가 아니라는 보증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인식론적 난관에 봉착하고 있다고 비판하는데, 푸코의 권력 개념이 반드시 지배계급에게 귀속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러한 비판은 가능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정통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권력의 정의는 억압에 의하거나 이데올로기를 통해 작용하는 것에 가까운데 비해, 푸코에게 권력은 이데올로기보다는 사회적 실천에 의해서 드러나는 것이다. 권력은 특정 집단에 의해 소유되는 것이 아니라 도처에 존재하는 것이며, 한 사람의 권력 행사자와 다수의 피권력자의 관계를 상정하지 않는다. 권력은 아무도 소유할 수 없는 메커니즘이다(Foucault, 1980/1991, 193쪽). 이러한 맥락에서 푸코는 근대 감옥의 도입과 같은 사건 또한 특정한 권력자의 의도에 의한 프로젝트라기보다는, 여러 가지 실천의 계기가 함께 작용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지식인은 이러한 사건들에 대해 계보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았다(Foucault, 1980/1991, 91쪽). 아마도 푸코는 자신의 주장이 권력 작용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특별히 부정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푸코를 완전한 구조주의의 틀에 묶어두고 주체 개념을 들여왔다는 데에서 혹은 푸코가 구조주의와 해석학 사이를 모호하게 오갔다는 점에서 모순점을 찾고 비판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러한 틀에서 벗어난 푸코 자체를 이해해보아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바로 그렇게 볼 때 푸코는 지난 주 발제문의 (레비-스트로쓰의) 구조주의에 대한 문제제기들 – 서구적 근대성을 내용적으로 비판하지만 보다 우월한 ‘과학’에 의존하고 있는 점, 연구자의 위치가 보편적 법칙 바깥에 서게 되는 점, 구조 자체의 비일관성, 모순, 분열, 잉여, 초과 등에 대해서 사고하기가 힘든 점 – 이 해당하지 않는 부분이 많은 것 같고, 그렇다면 푸코를 또 다른 많은 논자들이 해석하는 바와 같이 구조주의자라기보다는 구조를 보았지만 그 바깥에 대해서도 포함하고 있는 포스트구조주의(탈구조주의)의 흐름으로 보는 것이 오히려 더 푸코에 대한 포괄적인 설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구조주의와 주체의 행위성에 대한 논의가 중첩되는 것 그 자체가 문제되는 것이라면, 구조주의가 구조 바깥의 행위성에 대해서 완전히 부정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푸코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주의의 문제로 논의되고 토론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3. 푸코가 역사의 불연속성을 강조하는 것에 대해서 그렇다면 ‘역사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라는 비판이 있는데, 나는 푸코가 기본적으로 철학자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역사를 쓰는 학자로서의 면모를 그의 거의 모든 저서에서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역사를 다름 아닌 계보학적인 방법을 통하여 쓴다. 푸코의 계보학은 니체로부터 빌려온 개념으로, 푸코는 계보학을 사건이나 역사의 전개 속에서 개념과 초월적 주체에 의존하지 않고, 지식과 담화와 대상의 영역이 어떻게 구성되는가를 설명해 내는 ‘역사서술의 한 방식’이라고 정의내리고 있다(Foucault, 1980/1991, 150쪽). 푸코가 계보학으로 나아가게 된 것은 ‘왜 특정 시기, 특정 지식의 질서에서 일반적으로 용인되는 원만하고 지속적인 발전 도식을 따라가지 않는 갑작스러운 도약과 진화가 발생하는가’에 대한 의문에서 비롯된다(Chomsky & Foucault, 2006/2010, 187쪽).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코의 계보학적 역사서술이 역사의 불연속성과 단절(rupture)에만 집중하여 서술을 하고 있는 것 또한 아니다. 예컨대, <성의 역사> 1권인 <앎의 의지>에서 푸코가 근대사회에서의 섹슈얼리티와 관련한 고백의 문화에 대해서 다룬 후, 2권부터 4권까지 기원전 4세기, 기원전 2세기, 기독교 시기의 담론들을 탐구하는 것은 각 시기들을 섹슈얼리티에 대한 특수한 에피스테메로 구획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현재 나타나고 있는 성담론의 원형들을 수집하고 그것의 계보를 잇는 방식으로 서술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최근 신자유주의 통치성을 분석하는 연구들이 마치 한국사회는 신자유주의 사회가 되었고 그것의 바깥은 없는 것처럼 표상하는 경향이 있지만, <감시와 처벌>에서 푸코는 규율 사회의 정점에 이르렀을 때도, 구경거리의 사회(전근대 사회)의 권력이 갖는 성질이 발현될 수 있다고 적고 있다(Foucault, 1977). 통치권력은 그것이 주권권력이나 규율권력을 완전하게 대체하는 근대 이후의 유일한 권력이 아니다.
4. 푸코를 허무주의자나 모랄리스트로 보는 시각과 비판은 어느 정도 푸코의 글에서 들 수 있는 느낌들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여겨진다. 예컨대, 그렇게 권력이 모세혈관처럼 퍼져 있다고 하면 저항은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해서 푸코가 명쾌한 답을 내놓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의 한국어판 해제에는 푸코가 통치성 권력에 대한 대안으로 ‘자기 자신의 삶을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끊임없는 수행’과 같은 것을 제시했다고 해서 나도 갑자기 허무함을 크게 느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얼마 후에는 어쩌면 그렇게 허무함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 대단한 것을 기대하는’ 나 자신의 습관 때문인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히려 푸코가 단절하고 있는 맑스주의와 같이 분명한 해방의 목표를 제시하고 실천의 방법을 제시하는 이론이 이데올로기적이고 예언자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하면 혹은 자본주의가 철폐되면 정말로 해방이 오는 것일까? 방법론에 있어서 그러한 프로젝트를 단순히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해서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 주장일까? 거대 권력에 대한 상대적으로 단순한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한다면, 권력이 편재해 있으며 언제나 권력은 주체와 일부 공모하는 관계에 놓인다는 관점으로 세상을 본다면, 오히려 그렇게 쉽게 혁명과 저항의 특수한 형태를 특권화시키는 쪽이 더 불가능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그렇다고 해서 푸코가 저항의 가능성 자체를 완전히 닫아둔 것도 아니다. 애초에 푸코는 권력이 일방향적이지도 않으며, 또한 권력을 언제나 초과하는 주체들의 성격에 대해서도 함께 논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육체(신체)는 권력의 작용 지점이면서 동시에 저항의 출발점이 된다.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는 각자의 몫이지만 어쨌든 나는 결국 푸코의 권력 이론이 더 현실에 부합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 보드리야르는 <푸코를 잊어버려라>라는 저서를 통해 “권력에 대해서 너무 많이 말하면 권력은 아무 데서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고 말했지만(Merquior, 1985/1999, 187쪽) 말이다.
참고문헌
김형효 (1989). <구조주의 사유체계와 사상: 레비-스트로쓰, 라캉, 푸코, 알튀세르에 관한 연구>. 고양: 인간사랑.
Chomsky, N., & Foucault, M. (2006). The Chomsky-Foucault debate: on human nature. 이종인 (역) (2010). <촘스키와 푸코, 인간의 본성을 말하다>. 서울: 시대의창.
Foucault, M. (1977). Discipline and Punishment. New York: Pantheon.
Foucault, M. (1980). Power-knowledge: selected interviews and other writings, 1972-1977. C. Gordon. (ed.) 홍성민 (역). (1991). <권력과 지식>. 서울: 나남.
Merquior, J. G. (1985). Foucault. 이종인 (역) (1998). <푸코>. 서울: 시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