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06 수업후기

괜히 이런 날도 있는 거지

by 페르마타

오늘은 두 개의 수업을 들었어. 화요일엔 항상 두 개의 수업을 들어왔지. 이번 학기. 해서는 안 될 짓은 아니었어. 왜냐하면 자주 해 보았거든. 하루에 두 개의 수업을 듣고 다음 날 또 하나의 수업을 넣어서 준비해야 하는 것도 이번 학기에만 했던 일이 아니야. 생각해보니 항상 그랬네. 이건 그냥 잡설이고. 왠지 그냥 이런 투로 글을 끼적이고 싶은 것, 그리고 또 혼자 간직하고 싶은 게 아니고 난 항상 오픈하고 싶은 것. 댄이 내가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양상에 대해서 엄청 신기하다(?) 좋아보인다(?) 비슷하게 최근에 얘기했는데, 뭐 그냥 이게 관종이라는 걸 나도 알지만 난 왜 내가 이러는지 사실 정확하게는 모르는 것. 인간의 행위는 역시 언제나 '혹시나 해서'일까? 10대 후반 어느 수업시간에 김이진의 순발력으로 만들어진 '혹시나 해서'라는 이야기는 웃기게도 나의 계속되는 레파토리로 사용되고 있는 거고, 또 아무래도 평생 그렇게 남을 것 같기도 해.


오전 9시부터 듣는 수업은 인류학 수업이야. 나는 특히 오전 9시(1교시)에 수업이 있을 때 9시에 딱 맞춰 학교에 도착하는 기분을 정말 좋아하지 않아. 왠지 다들 함께 바쁘게 백양로를 걸어올라가는 그 일방향적인 움직임 속에 내가 끼어있는 느낌을 싫어하고, 그래서 만약에 9시 수업인데 8시반 가까운 시간에 눈을 뜨는 참사가 벌어졌다고 한다면 그것은 내게 '오씨 30분은 남았네. 빨리 씻고 뛰어가야 겠다' 류의 생각 대신에 '아이씨 학교 가기 싫어, 계획이 틀어졌잖아' 류의 생각을 들게 만들어. 아무튼 그래서 나는 9시 수업이 있으면 7시 반 근처에 학교에 도착해 있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오늘은 아주 다행스럽게도 성공했어! 어제 2시가 넘어서 잤기 때문에 불안해 했는데도 불구하고. 사실 인류학 개론 수업을 들어봐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어서 도무지 흥미를 못 느껴서 리딩을 잘 못 따라가는 편이었는데, 이번엔 더더욱 다른 일들이 너무 많이 겹치고 있어서 (사실 언제나 겹쳐 있는 일들은 많았어) 제대로 못 읽었어. 사실 클리퍼드 기어츠의 문화의 해석을 읽는 커리큘럼은 참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거든. 왜냐면 thick description 말고는 아무 것도 기어츠에 대해 아는 게 없었는데 관심은 뭔가 가는지라. 그래서 7시반부터 읽어보는데 눈에 도저히 안 들어오더라.


수업시간에도 발제를 들으며 멍을 때렸지. 솔직히 말해서 발제가 그렇게 쏙쏙 들어오는 발제도 아니었어. 졸리기도 했고. 뭐 무튼 그렇게 멍을 때리면서 세 시간을 보내는데, 막판에서야 갑자기 지금 돌아가는 논의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막 떠오르더라. 시계는 11시 50분을 넘고 있는데 내가 말을 시도하려던 찰나에 먼저 말할 기회를 가져가신 분의 말이 5분을 넘는 것 같았어. 마치 부르디외의 글마냥, 그분의 말에는 계속해서 온점이 찍히지를 않더라고. 그리고 사실 내가 인류학과 분들하고는 관심의 방향 자체가 다른 것인지 아무튼 인도네시아 얘기나 중국 얘기에는 사실 나는 관심이 잘 안 가더라고. 그래서 내가 말하고 싶었던 얘기를 살짝 정리해서 와이섹(사이버강의실)에 써 두었어. 하지만 그 와이섹 질문과 답변 게시판은 학기가 시작한 이래로 단 한 번도 이용된 적이 없어. 강의 첫 시간 때 발제문은 전날 밤까지 올리는 걸 약속으로 정했었는데, 이 수업에서는 다들 발제문을 오전 9시 수업 직전, 그러니까 8시 50분 이럴 때 업로드하는 경우가 다반사고 와이섹에 올려두기로 했던 걸 까먹었는지 아직 안 올라온 발제문도 많아. 결론은 와이섹을 이용하지 않는 수업이라는 거지!!!! 헝헝... 조회수는 지금까지 0이고, 아마 학기가 끝나고 나서도 0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어. 그래서 나는 여기에 그 얘기를 조금 가져와 볼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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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저는 기어츠의 문화의 해석이라는 텍스트 전체가 기어츠의 인류학에 대한 '방법론적 비판'이라는 견지에서 읽히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중간중간에 직접적으로 그런 내용들이 돌출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관련해서 두 가지가 이야기해보고 싶은 부분인데..


1.

하나는 수업시간에 나왔던 문화와 사회의 구분에 관한 것인데요. 처음에는 문화는 문화이고 사회는 구조를 얘기하는 건가? 이런 식으로 혼자 생각해보다가.. 사실 다시 생각해보니 문화도 의미/상징 체계의 '구조'이더라고요... 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이건 기어츠 얘기일수도 아니면 기어츠를 읽고 생각한 저의 잡설일 수도 있지만, 저는 기어츠가 '문화와 사회를 분리하지 않는 인류학 분석 방법'을 비판하면서, 문화와 사회를 별도의 분석대상으로 분리하였다고 읽었는데, 여기에서 나오는 강점이 무엇인가 생각해보다가, 또 기어츠도 자신이 문화와 사회는 결국 같은 것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라고까지 쓰고 있기도 한데 (그것 비슷하게 쓴 부분이 있었죠..) 도대체 문화는 뭐고 사회는 뭘까 고민해 보다가 구조와 행위의 문제가 떠올랐어요.


기어츠가 문화와 사회를 분리시켰을 때, 문화라는 부분이 좀 더 agency가 쉽게 발현될 수 있는 부분으로서 좀 더 의미를 갖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전의 인류학적 방법이 문화와 사회를 분리하지 않고 하나로 봄으로써, 구조나 행위 둘 중 하나를 쉽게 간과하게 되는 측면이 강했다면, 또한 사회가 왜 변동하는가에 대해서 적확한 설명을 할 수 없었던 것에 비교하여, 기어츠가 확보한 문화라는 영역은 (아마도 상대적으로 조금 더 간주관성의 영역일) 사회에 비해서 그것이 '의미, 상징'의 차원이라는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주관적인 성격을 더 많이 갖는 것 같고, 그렇기 때문에 행위자성이 발현되기에 더 쉬운 영역인 것 같아요. 그래서 한 사회 내에서도 다양한 의미체계를 갖는 개인들 혹은 소집단들이 존재할 수 있고, 그러한 차원에서 사회 내의 갈등을 의미체계(혹은 문화) 간의 갈등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고, 이러한 과정에서 갈등이 사회변화를 추동하고 결국에는 사회라는 영역에도 일정한 agency가 관철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2.

이건 발제자 선생님의 토론거리를 보다가 생각한 것인데요. 사실 저는 '청년' 담론을 연구했었고 요즘은 청년운동 영역을 보고 있는데, 그래서 '당사자주의'나 '당사자 중심성'이라는 단어에 뭔가 예민하게 꽂히는 편이거든요. 정리는 완전히 되어 있지 않지만 생각은 많은? 그래서 생각하다보니 저는 기어츠가 "현지인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해석하는 방식"(비슷하게 쓰여 있엇죠?)을 보아야 한다고 한 것의 의미를 발제자 선생님과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됐어요.


결론부터 말하면, 발제자 선생님은 '당사자 중심성'을 언급하셨는데 저는 그게 아니라 오히려 '현지조사'라는 방법론을 일정 정도 물신화해 온 이전의 인류학에 대한 기어츠의 비판으로 읽혔거든요. 그래서 그 차원에서 이어보면, 현지인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해석하는 방식을 수집하는 것, 이 수집대상에는 현지에서 인터뷰 등을 통해 채록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텍스트 안에 써 있듯이 '유물'과 같은 재현물들도 광범위하게 포함되죠. 그리고 그것을 다시 '해석'하는 문제를 인류학이 문화(의미/상징체계)를 분석하기 위해서 수행해야 할 하나의 대안적인 방법론으로서 제시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당사자가 해석하는 방식 그 자체만 중요하다면(물론 발제자 선생님을 포함해서 이렇게 완전히 극단 쪽에서 생각하시는 분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사실 '다른 사회'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지 않다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될 수도 있지요. 어차피 내 얘기는 당사자인 내가 하니까 우리에게는 소통이나 정치도 필요하지 않거나 가능하지 않거나 혹은 그것 자체가 오만한 일로 여겨지게 될 수도 있고요 (그런 극단적인 관점에서라면).

저는 당사자주의 자체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다 보면, 항상 '나는 나를 잘 알 수 있을까?' 라는 인식론(?)적인 물음에 빠져버리곤 하는 편이라...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

막상 마지막 에세이 과제에 더 정리된 문장으로 쓰면 되겠다는 생각도 들면서...

아무튼 혹시 다른 분들 생각도 어떤지 궁금하거든요.

막 쓴 글이지만, 관심 있으신 분들의 댓글을 조용히 기다려봅니다.




암튼 그래. 이걸 여기에 올리는 이유? 하나, 내가 관종이어서. 둘, 그냥 오늘 또 생각한 건데 내가 문화연구 공부를 어느새 만 4년을 채워서 하고 있는데 아직도 문화가 뭔지 나에게 얘기해보라고 누군가 이야기한다면 a whole way of life임ㅋ 따위의 넘겨버리기 스킬을 발휘할 뿐 무언가 제대로 설명하지는 못하겠구나 하는 걸 또 느낀 거야. 어떨 때는 사실 여기 4년 있었고, 우리 학과 내에 열리는 수업들을 거의 다 들었고, 학회 같은 데도 나름 많이 찾아다닌 편이고 해서, 이 분야 언저리에서 만들어지는 지식들을 내가 아직 정확하게 들어본 분야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이 분야의 지도에 대한 지식과 스키마들을 통해서 소화는 할 수 있는 수준 정도는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아니 여전히 왜 이렇게 새로운 게 많은 거야. 물론 여기에서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지. 하나, 새로운 건 당연한거야. 지금뿐만이 아니라 학위를 받아도, 60이 되어도 다 새로운 것들이 있을 거야. 그래야 지금 느끼는 짜릿함처럼 공부하는 삶을 사는 재미가 있는 거 아니겠니? 그리고 그게 너가 생각하는 나이주의/연령주의적이지 않은 학습에 대한 관념 아니었니? 둘, 이번 학기 듣는 수업들은 결과적으로는 날 많이 생각하게 하니까 잘 고른 것 같긴 하다. 그렇지? 셋, 공부하는 재미가 이제야 점점 더 제대로 생겨가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 중단할 수밖에 없을 걸 생각하니 으..


암튼 이런 잡생각들과 관련없이 난 요즘 푸코읽기 세미나 하는 걸, 사실 처음에는 많이 망설였는데 왜냐면 수업부담에 나 하는 다른 일도 많은데 그래서 언제나 혁규찡(그의 이름이 들어간 것은 우리 학과에서 스터디를 제안하는 것은 언제나 그이기 때문이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제안하는 스터디는 다 끼는 버릇을 버려보고 싶었는데 암튼 그랬거든. 근데 사실 1주일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 중의 하나야. 재밌으니께 후후후..... 암튼 그래서 결론은 기어츠 문화의해석도 한 장 한 장 조금 더 꼼꼼히 읽을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사실 읽고 싶은 게 많아. 읽고 싶은 책들의 목록 유형도 점점 더 달라지고 있어. 난 내가 빠른 면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느리게 젖어드는 사람인지도 모르겠어.


오후 수업은 우리 학과 수업이었어. 오늘 수업은 앞 파트에서는 버틀러/스피박/그레이버의 책을 읽은 것에 대해서 다시 공부할 점들을 되짚었고, 뒷 파트에서는 다음주에 발표할 기말페이퍼 주제를 논의했는데 둘 다 좋았어. 일단 앞부분에서는 정말정말정말 단시간 내에 머리가 많이 아팠거든. 좋았어. 사실 뒷 파트가 더 좋았는데, 물을 오늘 수업에서 너무 많이 마셔서 (1L를 2시간 내에 마셨더니..) 요의가 심해서 안 나가고 버티기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의 연구설계에 대한 센스가 여러가지로 좋았다고 할까.. 많은 선생님들이 언제나 천재 같다고 느끼지만 채샘에게도 약간 그런 게 느껴지는 것이지. 그런데 그것보다 두 가지 감상이 내게 남아서 좋으면서도 집중하는 시간이었는데. 하나는, 내가 놀랍게도 <고함20>의 2009년~2016년의 역사를 저널리즘 생산자연구 관점에서 접근하는 페이퍼를 쓰게 되었다는 것이고. 사실 흥분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인지 아니면 난 굉장히 무던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지나온 날들에 나름 힘들었던 점이 있었던 건지 조금 흥분해서 말하게 되더라. 암튼 좋았고.


그리고 두 번째 감상은, 다른 원우들이 자기기술지 방법으로 이번에 페이퍼를 여럿 쓰는데, 논의하는 걸 듣고 있으니 나는 특별한 변화가 없는 이상 자기기술지 연구는 못하겠다 싶더라. 자기기술지를 제대로 쓰려면 연구자가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고 무한히 솔직해질 수 있고 또 그걸 드러내는 단계에까지 이르려면 결심히 필요하겠다 싶은데, 지금의 나로썬 절대 그걸 못 할 것 같더라고. 나는 완전히 투명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솔직하고 쿨해보이는 정도의 나를 가공하여 전시하는 일을 잘한다고 생각 혹은 착각해. 지금도 그러고 있다고 생각하는 정도로만 쓰고 있는 거야. 물론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누군가는 저 자는 척 해보려고 하지만 척도 제대로 할 줄도 모른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여간 그래. 난 내 자신을 똑바로 바라볼 자신이 별로 없는 사람이고. 그 투명함을 들키는 건 더더욱 두려운. 아니 오히려 반대로 내가 날 아는 게 더 두려운 사람이기도. 그래서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 사람, 꾸밈없이 자신을 잘 보여주는 사람, 그런 용기가 있어보이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동경해. 뭐, 쓰고 보니 아니 쓰기 전에도 알았지만 연구자로서 아니면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좋았던 시간이라기보다는 그냥 생각 많이 해서 좋았던 시간이었다구.


이런 말투로 이렇게 긴 글을 쓰고 보니 괜히 이거 다 라디오처럼 읽고 싶다. 혹은 마왕의 고스트스테이션 생각난다. 왠지 좀 놀아본 오빠의 미심쩍은 상담소(맞나?)에 보내보고 싶어지고 그렇다. 부끄러운 글이지만, 어느 정도 포장했다고 내가 착각할 수 있을 정도로 포장했기 때문에 나는 이걸 또 올린다. 이 긴 글을 당신이 다 읽었다면, 그냥 다른 거 모르겠고 감사하다. 모두 행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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