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07 생각조각

이런 기분은 원래 연이어 찾아오는 거지...

by 페르마타

난 사실 작심삼일의 대표주자야. 꽤 자주 그렇다면 3일에 한 번씩 작심삼일을 계속하면 되는 거겠지! 하는 말도 안 되는 낙관적인 생각도 해보곤 하는데, 그러면 그게 왜 작심삼일이겠어. 아니 이 말을 쓰는 게 어제 그런 글을 쓰고 나서 오늘 아침에 바로 또 그런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 아무래도 또 뭔가 잠깐의 분위기를 탔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지. 어제는 이런저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그걸 정리하기 위해 글로 쓴 것이지만, 오늘 지금 쓰는 글은 글을 또 쓰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고 거기에 넣을 내용들을 이것저것 우겨넣은 것이기 때문에. 이미 형식화 되어 버린 이 글은 어제보다는 당연히 별로일 거야. 소포모어 징크스 같은 거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요즘 거의 유일하게 챙겨 보는 TV프로그램이 tvN의 <소사이어티 게임>이야. 뭔가 이상한 방식으로 많은 것을 생각해 보게 해서. 사실 더 지니어스도 좋아했었는데 오히려 정치가 더 두드러지는 이쪽편이 난 더 재밌더라고. 오히려 두뇌가 자연스럽게 좀 더 강조되었던 (그래서 오현민이 그냥 아주 가지고 놀았던) JTBC의 <코드>가 요즘 유행하는 방탈출카페의 형식을 그냥 그대로 차용했음에도 불구하고 폭망했던 건 다 이유가 있는 게야. 아니 근데 하려던 말은 그게 아니고. 그러니까 <소사이어티 게임>에는 거의 다 일반인이 정말 많이 나와. 유명하다고 할만한 사람은 양상국과 윤태진 아나운서가 끝이었는데 둘 다 초반에 광탈했고, 권아솔, 최설화, 박하엘, 올리버장 같은 인물들은 어느 정도 셀럽이긴 하지만 유명한 사람들은 아니고. 여간 나처럼 약간의 관종끼를 가지고 있는 일반인들이 많이 나온단 말이지. 그리고 일반인인데도 불구하고 거기에 참여할 수 있었던 조건은 대부분 학력자본. 프로그램 안에서 '서울대'라는 말을 얼마나 거리낌없이 쓰던지, 좀 거슬리더라. 뭐 그건 차치하고.


여간 이렇게 비-연예인들이 이런 리얼리티에 많이 출연하기 시작한 것 같아. 한국 TV에서도. 예전에 외국 리얼리티랑 한국이랑 비교할 때, 외국 리얼리티에는 정말 평범한(?) 사람들이 캐릭터화되서 많이 나오는 반면에, 한국 리얼리티는 연예인들의 원래 구축된 캐릭터를 많이 이용한다고 봤던 것 같은데, 변화라면 변화지. 그런데 이건 뭐 싸이월드 시절에도 그랬던 것 같지만, 워낙에 이제는 쉽게 그 일반인들의 신상을 털 수 있는 시대이다보니까, 인터넷에 검색하면 출연자들의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주소를 쉽게 찾을 수 있어. 웃기지만 나도 1인분 인간이라서 왜 그들의 인스타에 들어가보고 싶은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욕망을 가지고 그들의 인스타를 눈팅할 때가 있어. 나랑 관계가 있는 사람도 아니고, 그 사람들한테서 매력을 느끼는 것도 아니고. 포장된 삶을 보면서 속으로 부러워하건 욕을하건 아무튼 그러고 싶다는 저열한 욕망일 수도 있어.


암튼 그렇게 인스타를 돌아다니고 있는데, 한 출연자 인스타에서 자신이 로스쿨 붙었다는 인증을 올린 걸 봤어. 그러면서 그가 쓴 멘트는 "세상 나쁜 놈들 다 잡아넣을게요" 였나? 암튼 비슷한 거였는데... 괜히 또 마음이 비뚤어지는 거 있지? 하하하하하하 정말 이거야말로 궁예에 불과하지만, 예비법조인이라는 신분에서 오는 느낌과 단순선악구도를 아마도 전제하는 '나쁜 놈들'이라는 워딩이 솔직히 밸런스가 안 맞는다고 생각했어. 그러면서 동시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에서 내게 존재하는 일말의 꼰대성을 느꼈지. 하지만 뭐 내가 뭐라고 아니 나는 뭣도 아니기 때문에 내가 이런 생각을 하건 말건 이기는 하지. 뭐, 그렇다고. 의도한 건 아니지만 나는 이 글을 내용이 형식을 잡아먹는 이야기로 시작했었지? 여기서 다시 한 번 그런 비유를 쓰고 싶어지네. 근데 이 내용은 더 안 쓰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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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쓴 후 잠시 쉬었어. 연구실인데, 아이패드를 켜서 비스트 노래를 틀었다. 픽-션 인 픽-션 인 픽-션)


지금도 이미 글이 꽤 길어지고 있지만, 어제 글은 사실 더 길었잖아? 그래서 어제 사실 두 번째 수업에서 한 생각들을 제대로 다 정리하기에는 타이핑 체력이 쳐지더라고. 그래서 지금 더 해 보려고. 나는 사실 채쌤 수업이 일단 대학원에서 했던 모든 수업들 중에서 가장 독특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서 많이 혼란스러웠어. 오감을 다 동원해야 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대학원 수업이 아니라 학부 수업 같다는 생각도 들고. (어쩌면 그런 기획 자체가 요즘 한국 대학원 수준이 엉망이라는 선생님의 판단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망상을 해 본 적도 있어.) 암튼 그런데 전반적인 수업 방식보다 더 혼란스러웠던 것은 페이퍼에 "이론을 쓰지 말라"는 가이드라인이었는데, 왜냐면 나는 이론덕후가 빠지는 함정들에 대해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경험했고 또 그 폐해를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도하지만 않다면 이론이 주는 장점이 굉장히 많다고 생각하는 편이거든. 그런데 앞뒤 없이 이론을 쓰지 말라니...


뭐, 그런데 어제 페이퍼 방향을 한 명씩 토론하는 과정에서 나름대로 왜 선생님이 그렇게 '유연하지 않게' 이론을 쓰지 말라고 얘기해버리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 이건 뭐 또 다시 나름대로의 궁예질이고, 나름대로의 해석이지. 우리 수업에서 읽은 외국 페이퍼들과 한국의 논문들만 봐도 확연하게 사실 구분이 되는데, 나도 한국에서 논문쓰기가 더 기본적인 형식 지키기에 '집착'한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아. 방법론을 명확하게 기술하지 않으면 안 되고, 연구문제 제시- 선행연구/이론적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 논의의 결을 거의 완벽하게 지키기를 요구하니까. 그런데 이건 내 경험인데, 선행연구/이론적배경 부분을 잘 쓰는 것과 연구결과를 잘 쓰는 것, 그리고 두 개를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모두 다른 종류의 능력이더라고. 내 경우에는 석사논문을 쓸 때 앞부분에 너무 공을 들이고 실제로 연구를 수행하고 결과를 쓰는 것에는 미흡하거나 소홀한 편이었는데, 지금도 사실 쓰는 페이퍼들에서 결과를 어떻게 잘 서술할 것인가 혹은 어떻게 더 깊은 해석으로 만들 것인가에 대해서는 덜 생각하는 것 같아.


이건 나 자신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저런 '형식'을 중시하는 한국 학계라는 구조에서는 모두가 비슷하게 겪을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해. 보통 프로포절이라는 것도 이론적틀과 연구방법까지만 보기 때문에 거기에 공을 들이는 시간이 많고, 마치 앞이 잘 되면 뒤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라는 류의 생각들도 존재하기 때문에. 또 아무래도 서술하는 순서가 항상 1. 2. 3. 4. 에서 앞부분이 이론이니까 용두사미의 죄과를 저지르기 쉬운 인간류라면 아무래도 나처럼 되기 십상이겠지. 경험연구라면 당연히 경험적 연구결과가 연구의 메인디쉬이고, 경험연구를 통해서 이론적 함의를 도출하는 게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경험연구를 제대로 수행했을 때 이론의 정교화를 제대로 할 수 있을 가능성이 높을테지.


어제의 토론을 들으면서 난 채쌤이 이론 쓰지 말라고 하는 유연하지 않아보이는 정책(?)이 어쩌면, 한국 대학원의 특수한 교육방식이 낳는 이론의 왜곡 혹은 잘못된 이용을 방지하고, 메인디쉬인 연구결과의 서술을 어떻게 더 잘 할 것인가에 집중하게 만들기 위한 하나의 처방이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간다면, 오히려 경험적인 것에 집중하고 그것을 두껍게 해독하면서 상상력을 넓혀 가는 방식, 이론적 틀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결과에서 나오는 상상력과 결합시키면서 또 해석을 넓혀 가는 과정에서 이론을 이용하는 방식이 특히 질적 연구에는 더 적합한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어. 왜냐면 이런 이분법 좋지 않지만 질적 연구는 양적 연구처럼 가설-연역적인 연구가 아니니까. 그래서 오히려 이론과 일단 방법론적으로 단절함으로써 오히려 더 유연한 연구를 할 수 있을 가능성이 열린다고도 느껴지더라. (특히 이론의 폐해가 많고, 그 폐해부터 쉽게 석사과정에서 배우고 시작하는 게 한국 대학원의 문제라고 여긴다면 이론 쓰지 말라는 얘기를 해 버리는 것도 가능한 처방이라고도 느꼈고. 연구대상, 이론적 틀, 연구방법의 1:1:1 결합으로 replicate 가능한 객관적인 논문을 쓸 수 있다는 식의 '쉬운 상상'이 예비 질방 연구자들에게도 먼저 들어오는 것 같다는 생각은 나도 해 본 적이 있거든.. 나도 그러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하하)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할 때, 뭔가 더 거대한 연구가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20페이지짜리 논문 말고 단행본 사이즈의 연구 말이지. 그냥 토론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 연구주제들도 몇 주 전에 들었을 때는 '저게 논문거리야?' 라는 생각도 들었던 것들도 듣다 보니 '저거 단행본도 되겠네' 싶은 생각이 들더라. 한국 학계-외국 학계(특히 영미권)를 단순비교하면서 후자의 우월성을 이야기하는 걸 경계하는 편이지만(그래서 김종영 선생님 책도 비판할 점이 많다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아, 저게 외국 스타일이지" 하는 이상하지만 그럴듯한 생각도 들더라. 한국 학자들이 10페이지짜리 논문 말고는 생산할 수 없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건,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 건 그게 실적을 중시하는 학문(과학) 장의 구조나 기본적으로는 논문 한 편이나 단행본 한 편이나 실적 점수가 똑같은 제도적인 원인과도 관련이 있겠지만, 이론을 이용하는 특정한 문화적 방식과도 더 연관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더 쓰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앞의 얘기들을 쓰다 보니, 생각보다 나는 말이 많은 사람이구나. 그래서 벌써 이런 투의 글을 1시간 가까이 쓰고 있고 그러는 동안 나는 지쳐버렸구나 생각하면서 더 쓰려고 했던 다른 주제들은 일단 다음 기회로 미뤄 둔다. 접어 둔다. 작심삼일이니까 아마 내일까지는 이런 글을 또 쓰지 않을까도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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