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08 생각조각

작심삼일의 마지막 날

by 페르마타

작심삼일, trilogy, 또... 뭐 3과 관련해서 생각나는 게 특별히 없네 제길. 암튼 작심삼일을 마쳐야 해서, 또 어제 쓰려다가 못 쓴 이야기들도 쓰기는 써야 할 것 같아서. 오늘이 지나가버리기 전에 브런치를 켰어. 아니 사실 엄청 귀찮긴 귀찮더라. 왜냐면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크게는 ㅇㅇ. 하나는 내 계획이 틀어졌기 때문이야. 화요일부터 오전 8시 전에 학교에 도착하는 생활을 하고 있었고, 가능하면 좀 더 유지해볼 작정이었고 그게 된다면, 작심3일이라도 된다면 기분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난 목요일인 오늘도 아침 8시 전에 도착한 학교에서 브런치에 생각조각을 쓰려고 했어. 그런데 호호호 뜻하지 않게, 전날 새벽 3시까지 술자리에 있어버렸다? 둘째, 사실 한 번 쓰고 말 것이었던 글이 작심삼일이라는 말까지 쓰면서 생명이 연장된 것은 첫 번째 올린 글이 생각보다 반응이 괜찮았기 때문인데 두 번째 올린 글은 올린 시간 때문인지 내용이 넘 대학원스러워서였는지 아니면 정말 말이 씨가 된다고 소포모어 징크스가 된 것인지 사람들이 많이 안 읽고 반응이 시원찮더라고. 하지만 결국 의무감으로 켠 브런치에 한 글자 한 글자 타이핑하다보니 다시 흥미를 찾아가고 있는 중이야.


오늘은 크게 두 가지 얘기를 쓸 생각인데, 아마 지난 두 글 보다는 짧을 것 같아. 하나는 공부하는 혹은 말하는/쓰는 삶에서 나타나는 특이한 방언들에 대한 간단한 고민이고, 다른 하나는 주고 받기의 문제에 대한 거야. 이렇게까지 쓰고 보니까 근데 둘 다 머리 속에서 생각은 여러 번 했던 거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게 어쩐지 뭔가 어쩐지 그냥 끼적이기에는 좀 어려운 문제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시작해본다.


대학원 다닌지 4년이 다 되었지만 가끔씩 이 세계 사람들이 하는 특정한 단어들이나 말습관들에서 이질감을 느낄 때가 있어. 왜 예전에 페이스북에 '노정하다'라는 단어 너무 어색하다 '노정태 생각난다' 이런 거 올렸던 적이 있는데, 뭐 나도 최근에 한 번 글에 썼지만 '기실'이라는 단어도 그렇고 여간, 그런 어휘들 말고도. 그러니까 내가 오늘 진짜 하고 싶은 얘기는 '흥미롭다'나 '관심이 있다'라는 말을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관한 것인데, 한국말로는 두 개가 아예 다른 어휘지만 영어로 하면 interesting과 be interested in이군. 암튼. 최근에 밥 먹다가 얘기를 한 건데, 나는 '흥미롭다'는 표현이 학계에서 뭔가 굉장히 의례적인 차원에서 영혼없이 사용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구. 그런 얘기 했었거든. 나도 실제로 '흥미롭다'라는 표현을 그런 식으로 쓰는 문화에 사회화되었는지 정말 영혼 없이 흥미롭다고 말하면서 고개를 끄덕거리거나 하는 일이 많아.


흥미롭다, 재미있다 이런 말이 (특히 어쨌든 논리적이고 지적인 교류를 전제하는 학계 컨텍스트의) 대화 상황에서 '영혼 있게' 사용되려면, 그 말을 뱉는 사람에게 왜 그 이야기가 흥미로운지, 재미있는지에 대한 이유를 물었을 때 거기에 대해서 적당히 합리적인 답을 할 수 있는 상황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러니까 정말 지금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연구주제든 가설이든 이야기든 거기에 진정으로 흥미를 느낀다면(be interested in이기도 하네), 흥.미.롭.네.요 다섯 글자 이상으로, 혹은 맞아요 그런 주제 재밌을 것 같아요. 말고 왜 그게 재밌는지에 대한 이유를 댈 수 있어야 하고, 영혼 있는 상황에서라면 흥미롭다는 말 한 마디를 뱉지 않는 대신 그 이유에 대해서, 또 더 깊숙하게 혹은 조금 다른 각도에서 궁금해지는 내용들을 질문하게 되지 않을까? 뭐, 소개팅 같은 곳에서도 앞에 있는 상대에게 호감이 있다면, (물론 너무 말을 많이 하지 않으려고 자제하는 스킬의 필요성 - 밀당의 필요성 - 따위에 대한 지식이 적당한 조절을 유도하겠지만) 영혼 없는 단답 대신에 이것저것 물어보고 시도하게 되겠지(시도의 차원에서 본다면 조용하고 진중한 남자인 척 하는 것도 그냥 시도라고 볼 수도 있겠다). 여간.


관심이 있다라는 표현을 들을 때도 그래.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데, 나는 이곳에서 사람들이 '저는 ~~~에 평소 관심이 많아서요' 라고 말하는 걸 굉장히 자주 듣고 나도 어떨 때 그런 얘기를 하곤 한다는 사실을 알아. 그리고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 꽤 자주 뭔가 당혹스러움을 느껴. 첫째, 와 나는 관심 있는 게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은 관심 있는 게 참 많구나 하는 감탄. 둘째, 아까 흥미롭다를 증명하기 위해서 이유를 대야 하는 문제와 비슷하게 '관심이 많다'라는 것의 기준이 무엇일까 하는 문제에 대한 고민. 꼭 관심을 남한테 증명하면서 관심이 있다고, 관심이 많다고 말해야 할 필요는 절대로 없지만 그냥 내가 무언가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 라고 말할 때 내가 뭔가 거짓말을 했다 과장을 보탰다라는 느낌을 스스로 받지 않는 단계가 되려면, 그것은 어떠한 기준에 이르렀을 때 가능한 일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보는 것이지. 관련된 기사가 눈에 띄면 꼬박꼬박 클릭하는 것? 가끔 검색하는 것? 체계적으로 자료를 모아두는 것? 관련된 책이나 논문들을 꼬박꼬박 찾아 읽는 것? 어떤 단계일까?


특히 연구자들이 항상 연구자로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연구자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는 방법 혹은 직업적으로 그 관심을 지켜가는 것은 어떠한 노력과 함께 가야 하는 일이 아닐까 하는 반성을 해 보는 거지. 근데, 그게 사실 나는 그런 식으로 따지다보면 관심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 심지어 내가 계속 연구하는 청년만 해도 나는 청년 관련된 기사 읽는 것도 피곤해하고... 난 일단 뉴스를 만드는 일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뉴스 소비 자체를 매우 피곤해하고 그래서 소비량이 엄청 적은 편이라... 암튼 꼭 덕후만이 관심이 많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닌 건 아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관심 많은 혹은 관심 있는 무언가가 매우 적다는 생각을 하면 그냥 왠지 고민을 하게 되는 거야. 내가 이렇게 연구자로 살기를 생각하는 사람인데 관심 있는 영역이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적다니!!!!!!!!!!!... 관심 있는, 관심 많은 척이라도 해야 하는 건가? 뻘이지 뻘. 뻘글미안.


이제 주고 받기에 대한 문제야. 주는 것. 받는 것. 사실 이걸 선물경제(gift economy), 증여 같은 개념하고 얘기를 할 수도 있는 얘기겠지만 그냥 그런 거 빼고 내 경험하고 내가 무엇을 느끼고, 걱정하면서 사는지에 대해서 써 보고 싶었어. 나는 돈 쓰는 게 헤픈 편이야. 그런데 그게 주로 내 것을 사는데 쓰는 돈은 아니야. 뭐랄까 사실 난 비싼 옷도 비싼 거 사는 것도 없고...... 응. 요즘은 사실 장학금도 받고 돈도 벌면서 살아서 그렇다고 치지만, 사실 용돈에 의존하는 삶을 살 때부터 어느새부턴가 주변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나누거나, 밥/술을 사거나 혹은 더치를 한다고 치더라도 내가 조금 더 많이 부담하는 식으로 분배를 하는 식의 습관을 갖게 됐어. 아마 이건 우리집이 빈곤층에 해당되었다면 불가능한 습관이었겠지.


그런데 그게 직접적으로는 내가 돈이 많아서라기보다는 고함을 이끌어온 시간이 축적되면서 쌓인 습관인 것 같아. 사실 고함이라는 조직에 들어오면 다들 노동력으로 조직되고 거기에 값이 돈으로 지급되지 않는 경우들이 많은데, 영리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다들 합의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사실 우리는 돈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라는 데 합의를 하고 있다는 걸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건데. 사실 그런 진정한 의미에서 극단적으로 평등한 공동체라는 게 있기나 할까? 어쨌든 나는 점점 더 리더로서의 정체화 과정을 강하게 겪었고, 또 그럴수록 한편으로는 돈 못 주는 편집장/대표여서 미안하다는 생각, 사람들을 허울좋은 말로 포장해서 착취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자기반성들에 빠져들었어. 그리고 그러다보니 원고에 대한, 노동에 대한 임금은 못 주지만, 내가 줄 수 있는 것들을 주는 방식으로라도 사람들에게 잘 해 주어야지 하는 생각들을 하게 되고 그걸 실천해 온 듯해. 이건 나의 품성자랑으로 읽힐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난 이게 나의 자기합리화이기도 하고 반의식적으로 '나를 보호하는 행동'이었기도 하다는 걸 알아. 왜냐면 '줄 수 있다'는 것은 권위와 권력을 이야기하기도 한다는 걸 알거든. 임금은 주지 않았음에도 평소에 돈을 많이 지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내 의도가 그렇든 그렇지 않든 나의 리더로서의 위치를 안정적으로 만드는 역할을 어느 정도 했겠지.


이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데. 고함 사람들에게도 그렇고, 대학원 사람들에게도 그래. 특히 이게 더 심해진 건 대학원에 오고 나서 여기 사람들의 각자의 경제 사정을 100% 아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우리들 사이에 경제적인 능력 혹은 배경 격차가 상당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또 그러한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주고 일방적으로 받는 관계들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그것이 미덕으로 여겨진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야. 아주 간단하게는 교수님이 자꾸 학생들에게 밥/술을 사시는 게 그렇고, 또 직업이 있었거나 있는 대학원생이 다른 대학원생에게, 박사과정이 석사과정에게 무언가를 베푸는 일이 많았고 나도 그런 상황 속에서 많이 '받아 보았거든'. 처음 대학원에 왔을 때 내가 가장 놀랐던 경험 중의 하나는 (특히 인문사회계) 대학원생들이 가난하고 찌질하다라는 일종의 편견과는 완전히 다르게, 비싼 양주 같은 것을 먹는 술자리들이 생기고 돈이 꽤 비싸게 나오지만 누군가가 그걸 계산한다는 걸 알았을 때였어. 마치 포틀래치적인 성격이 있는 느낌 그런 게 들었지. (물론 이게 가능한 것은 우리 대학원의 말도 안 되게 비싼 등록금이 구조적으로 경제적으로 여력이 있으면서 공부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을 더 많이 인도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과도 관련되어 있을거야.) 그래서 마치 선배한테 받은 걸 후배한테 돌려주는 걸. 마치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고 나서, 내가 잘 되어서 학교 후배들을 위해 장학금을 마련해주고 싶다는 걸. 그것을 인생목표 중의 하나로 삼게 된 사람처럼. 나도 그런 상황이 되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기도 했어.


연구재단에서 받게 된 장학금 이후에, 또 고함을 통해 쌓은 내 경력들이 어느 순간 아주 크지는 않지만 나의 경제능력으로 환금되게 된 이후에는 나에게 어떤 이슈도 생겼냐면. 내가 지금 갖게 된 것들을 사실 나 혼자의 능력으로 갖게 된 것이 아니라는 문제와도 마주하게 되었어. 나와 이야기하고 교류했던 모든 사람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니까. 그렇다면 비율적으로 내가 나를 만든 부분에 해서 내가 너무 많은 몫을 가져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를테면 이게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게 연구재단 장학금인데. 매년 1500명이 지원해서 200명 남짓이 받는 이 장학금(경쟁률을 뚫었다는 게 자랑이기도 하다 사실)을 내가 받음으로써 못 받는 사람이 동시에 존재하게 되는데. 또 당장 우리 대학원에도 나이를 먹어서도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못하는 문제, 혹은 절대적으로 학비가 부족하고 부채가 늘어나는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에게 필요한 몫 이상을 나는 가지게 된 상황에서. 이상한 혹은 당연한 부채 의식이 생기긴 생기는거야. 나만 잘해서 지금의 내가 있는 게 아닌데, 내가 가질 수 있었던 어떤 운들에 대한 죄의식? 또 근데 나도 당연히 이기적인 인간류의 하나인지라. 장학금 분배 체계가 잘못됐다면서 이 체제 자체를 바꾸자는 운동은 못 하겠고, 또 내가 얻은 모든 것들을 내놓고 함께 쓰자고도 못하겠어. 그러면서 내가 살 수 있는, 좀 더 낼 수 있는 상황에서는. 내가 기여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그걸 하려고 노력해. 내 걱정은. 그 중의 하나는 이러한 나의 행동 패턴이 어떻게 보면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내 죄책감을 덜어내는 방식으로 작용하는, 하나의 이기적인 행동이 아닐까 하는 것이고, 또 이 행동이 그런 차원으로 어떤 사람에게 읽히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야.


그리고 그것보다 큰 걱정은. 내 주는 행위 때문에 반대쪽에 생성될 수밖에 없는 받는 행위를 하는 사람이 나를 불편해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어. 내 복잡한 감정들을 예리하게 간파해내서일수도 있을 건데. 그것보다 사실 받는 행위 자체가 갖는 불편한 마음, 빚진 마음에 대해서 나도 잘 알기 때문이야. 왜냐면 내가 무언가를 받을 때 그것은 감사한 감정을 낳기도 했지만 동시에 "저 사람은 저렇게 큰 돈을 아무렇지 않게 베푸는 게 가능하구나" 라는 식의 생각을 하면서 자기연민도 생기고, 질투/시기 따위도 생기고 그랬거든. 나도 인간이었으니까. 또 모두들 인간이니까. 그리고 반대로 주는 사람에 대한 미안함도 생기지. 미안함은 관계에 좋게 작용하기도 하지만 반대가 될 수도 있지. 나는 내가 아직 돈 못 버는 학생일 때 일하는 친구들과 만나면 일하는 친구들이 뭘 자꾸 사는 게 괜히 엄청 미안할 때가 있었는데 왜냐면 그 친구가 가지게 된 돈은 노동의 대가이고, 양은 비록 덜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은 그냥 공부만 하면서 얻은 부모님의 지원이었기 때문에 사실. 양 말고 질적으로 비교한다면 내가 얻어먹어야 하는 게 맞는 건가 싶은 생각들도 드는 거지.


그래서 사실 요즘 드는 생각은 '주는 걸 잘 하는 것'도 '받는 걸 잘 하는 것'도 참 쉽지 않다는 것이고, 그걸 잘 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또 부럽다. bureau(뷰로우..) 부럽다.. 매일 부럽다. 나는 잘 못 하니까. 나는 잘 못 하는 평범함보다 못한 사회성이 떨어지는 닝겐이니까........ 그러니까 나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내가 하는 행동을 싫어하지 말아줘...... 제발....~~~~ 날 이해해줘~~ 나도 널 이해할게~~ (오늘 미씽 이언희 감독이 '이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인터뷰를 읽어서 이렇게 이해라는 말을 쓰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생각보다 길어졌다. 이거 쓰다가 지쳐서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 오후 10시 42분이다... 오늘의 마감은 내가 오늘 진심으로 '흥미를 느낀' 아파두라이의 글 캡쳐를 이 글을 끝까지 읽은 당신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주는 행위'를 하면서... 끝내겠다.. 3부작은 끝났다. 작심삼일은 끝났다. 마쳤다. 사실 이런 글 더 많이 쓰는 것도 나 자신의 생각정리를 위해 좋겠다는 생각도 드는데. 그냥 물리적으로 너무 힘드네... 암튼 모두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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