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세대담론의 역효과에 대한 단상
정치이론가 라클라우의 글을 읽는 세미나에 참여하고 있는데, 지난 시간에 이런 문장이 나왔다.
If 'worker's struggle' becomes the signifier of liberation as such, it also becomes the surface of inscription through which all liberating struggles will be expressed, so that the chain of equivalences which are unified around this signifier tend to empty it, and to blur its connection with the actual content with which it was originally associated. Thus, as a results of its very success, the hegemonic operation tends to break its links with the force which was its original promoter and beneficiary. (Ernesto Laclau, Emancipation, p. 45)
번역엉망주의> 만약 '노동자들의 투쟁'이 그 자체로 해방의 기표가 되면, '노동 투쟁'은 모든 해방적인 투쟁들이 그것을 통해 표출되는 기표(기입의 표면)으로도 기능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기표를 둘러싸고 통합되어 있는 등가성의 사슬은 그 기표를 비우고, 기표와 그것이 본래 연관되어 있던 실제 내용과의 연결을 흐릿하게 하는 경향을 갖는다. 즉, 기표 자체의 성공의 결과로 인해 헤게모니적인 작동은 그 기표의 원래의 촉진자들과 수혜자들이었던 그것의 힘과의 연결을 깨뜨리는 경향을 보인다.
내용을 아주 간략하게 요약하면, 예컨대 최초에는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나 삶의 개선을 위하여 고안된 '노동 투쟁'이라는 언어가 모든 정치 투쟁의 언어로 확장되게 되는 경우에는(인권 운동이나 표현의 자유 운동 등도 '노동 투쟁'이라는 언어를 빌리게 되면) '노동 투쟁'이라는 기호가 실제 노동자의 현실과 맺고 있던 강고한 관계가 모호해지고, 이 언어가 노동자와의 연관성을 일정 부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논리는 다른 차원에도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내 경우엔 '세월호'의 예도 생각났고.) 오늘날의 청년세대담론에 대해서도 이 논리를 대입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서 청년세대담론이 지속적으로 재생산되고 있고, 점점 더 많은 사회 문제들이 청년/세대의 이름을 끼고 논의되고 있는 이 판국에, 어쩌면 청년세대담론은 실제의 청년층 인구와는 전혀 무관한 담론의 방향으로 흐르고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다.
청년세대담론에 대해 분석한 내 석사학위논문의 기본적인 주장 중의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1) 기존에 개별 담론 - 88만원세대, 실크세대 등 - 의 함의나 한계를 짚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온 청년세대담론에 대한 분석은 청년세대담론이라는 총체 그 자체를 문제삼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2) 청년세대담론은 청년층을 철저히 비주체의 위치에 놓음으로써 청년을 타자화하는 문제를 낳고 있다. 3) 청년세대담론은 청년세대와 기성세대라는 가상의 분리선을 실재하는 것으로 보이게 하는 집단 범주에 대한 사회적 상상을 낳고 있으며, 이것은 잠재적으로 세대갈등이 심화되는 메커니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청년세대’에 관한 담론의 활성화는 청년의 삶이 더 나아지는 밑거름인 것처럼 여겨지(고 실제로 그러한 부분도 없지 않)지만, 동시에 이 현상의 정반대면에 대해서도 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담론이 ‘청년세대’를 더욱 강조하는 방식으로 생산될수록, 잠재적인 세대갈등의 가능성이 커지고 동시에 정작 젊은층의 개인들은 담론적으로 주체성을 상실당하고 타자화되는 방식으로 소비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천정환 선생님이 <동국대학원신문>에 기고한 글에서도 비슷한 문제의식이 드러나 있어 반가웠다.
"'헬' 바깥으로, 세대담론을 넘어" - 링크: http://www.dgugs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1487
2016년 새해를 맞아, 주요 일간지들이 청년 관련 기획연재 기사를 내놓고 있지만 - <한겨레> 더불어 행복한 세상 - 청년에게 공정한 출발선을 <경향신문> 부들부들 청년 <한국일보> 한중일 청년 리포트 <시사IN> 헬조선 다시 읽기 등 - 이것이 내 눈에 그렇게 좋은 신년기획기사로 보이지 않는 것은 이러한 까닭이다. 새해가 되면 청년 관련 기획기사가 나오고, 명절이 되면 고향 안/못 가는 청년들 기사가 나온 것이 이미 하루이틀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다시 점화되고 있는 청년에 대한 논의는 2012년 말 대선 이후로 이미 실패했다고 여겨졌던 정치적 세대론이, '헬조선'이라는 말을 타고, 다시 한 번 총선/대선이라는 정치적 국면을 타고, 이름만 조금 바꾸어 다시 귀환하는 모양새로 보이기도 한다. 아직은 청년세대담론의 새 버전이 '청년'이라는 기표만을 다시 한 번 헤집어 놓게 될지 아니면 다른 어떤 단계로 질적 전환을 할 수 있을지 단언하기엔 섣부르지만, 난 기대보다는 우려가 더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