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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르마타 Sep 26. 2016

사회운동,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

집합행동과 사회운동 3주차 쪽글

Diani(1992)는 사회운동 연구가 많이 진척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사회운동(social movement)’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적 합의가 충분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 착안하여 사회운동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였다. 사회운동론의 큰 조류인 집합행동이론, 자원동원이론, 정치과정이론, 신사회운동적 접근을 모두 검토하여 사회운동의 정의와 관련해 강조되고 있는 4가지 측면 중 3가지 – 비공식적 상호작용의 네트워크, 공유된 신념과 연대감, 갈등적 이슈에 대한 집합 행동 –를 확인하고 1가지 – 제도권과 시민 생활의 일상적 절차 바깥에서 발생하는 행동 - 는 반박한다. 이상의 논의를 바탕으로 Diani는 사회운동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나름의 정의를 내린다. “사회운동은 공유된 집합적 정체성의 기반 위에서 정치적이거나 문화적인 갈등에 개입하는 복수의 개인, 집단, 조직들 사이의 비공식적 상호작용의 연결망이다.”


이러한 사회운동에 대한 ‘느슨한’ 정의에 대해서는 ‘그렇다면 정치와 사회운동 간에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하긴 하는 것인지’에 관한 의문이 생겨나면서도 – 에르네스토 라클라우가 논의하는 ‘정치적인 것’의 일반적인 원리와 사회운동 사이를 결정적으로 구분지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잘 떠오르지 않았고, 라클라우가 담론이론가인 것과 비교해봤을 때, Diani도 글에서 사회운동을 분석하기 위해서 ‘사회적 연결망과 의미가 구성되는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고, 즉 조금 바꾸어말하면 담론의 구성 과정에 주목할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 크게 공감이 되었다. 일단 학문적으로 보았을 때 개념적인 구분에 천착하여 무엇은 운동이고, 무엇은 운동이 아니라는 식으로 그 구분에만 집착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데, 정치에도, 또 행정 영역에도, 또 부르디외 식으로 말하면 사회세계의 다양한 장(field) 안에는 ‘운동적인 성격’을 지닌 행위와 현상들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제도권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혹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행동이기 때문에’ 굳이 운동 바깥으로 구분해야 할 이유를 찾기 힘들다는 생각이다. 또한 운동적(혹은 문화정치적)인 차원에서 보았을 때도 사회운동(특히 운동권)이라는 어휘 자체가 타자화되고 게토화되어 있는 한국적 상황에서 다양한 일상적 행위의 운동적 성격을 발굴하고 그것을 더 강조할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른 두 저자의 글은 사회운동에 대한 개념적 논의라기보다는, 꼭 사회운동이 아니더라도 사회의 변화나 어떠한 현상에 대한 사회학적 설명을 어떻게 표현하고 제시할 수 있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적 논의라고 여겨진다. Tilly(1984)는 그가 19세기 사회과학의 해로운 유산이라고 명명한 여덟 가지 가정들을 비판하고, 이러한 가정에서 벗어나서 ‘진정한’ 역사적인 분석, 실제적인 시간, 장소, 사람이 존재하는 구체적인 분석을 수행할 것을 제안한다. 구체적으로 이러한 시각은 비교연구방법(comparing)을 설명하고 제안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Tilly는 역사의 수준을 세계사적(world-historical), 세계체제적(world-systemic), 거시사적(macrohistorical), 미시사적(microhistorical) 수준으로 구분한 후 그 자신은 거시사적 영역에서 거대한 구조와 광범위한 과정들에 대한 대규모의 비교(big structure, large processes, huge comparison)를 수행할 것이라고 언급한다. 이어서 구체적인 비교연구방법으로 사례들의 공유성(share of all instances)과 형식들의 다중성(multiplicity of forms)에 따라 개별화(individualizing), 보편화(universalizing), 변이발견(variation-finding), 포괄화(encompassing) 비교 방법을 구분하고, 그중에서 포괄화 비교 방법이 비교역사사회학에서 중요한 연구방법임을 강조한다.


결론에서 Tilly는 세밀화의 함정(trap of refinement)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4장에서 Tilly가 많은 수의 사례를 수집하는 것은 오히려 사례수만 많으면 옳은 분석이라는 환상을 심어준다면서 오히려 적은 수의 사례가 개별 사례를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분석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논의를 한 것과 연관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이 흥미롭고 공감되었는데, 통계적 연구 방법이 사회학/사회과학 연구의 대세가 되어 있는 상황에서 많은 제대로 훈련되지 않은 양적 연구자들이 기초 데이터들을 가지고 통계 프로그램을 돌린 후 무엇이 중요한 변수인지 구분하지 않은 채 통계치만을 나열하는 그런 연구들을 양산하기도 하는 상황인데, 사실상 하물며 커다란 기간의 사회변동에 대해 보는 역사연구에서는 ‘사회학의 대가’들이 했던 것과 같이 사례에 대한 세밀한 비교가 필요하고, 고도의 수학적 지식을 필요로 하는 통계 연구를 통해서 어설픈 인과 – 별이 뜨느냐, 마느냐에 천착하는 –를 규명해내려 하기 보다는, 근접한 원인들 정도를 찾으려고 하는 연구 접근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 글을 통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Becker(1992)의 글은 사례연구 이후 이를 표현하는 단계에서, 이 사례를 원인들(causes)을 중심에 두고 인과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방법, 다양한 요인들을 함께 논의하는 국면(conjuncture)으로 표현하는 방법, 조금 더 나아가 과정을 더 중시하고 내러티브를 표현하는 이야기(story)식으로 표현하는 방법, 아예 사례연구에서 분명하게 드러난 것 이면에 있는 상상/가상(imagery)에 관하여까지 표현하는 방법 등을 검토한다. 또한 사회학에서 사용되는 재현적 관례에 대해서 이것이 학문 세계 내에서 유용함을 던져주는 반면에, 어렵고 불가능한 종류의 결과들에 대한 소통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단점이 있다고 언급한다. 이러한 논지는 최근에 번역된 <사회에 대해 말하기>(Telling About Society)에서 보았던 논의와 거의 비슷한데, 그때나 지금이나 사실은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할 수 있지? 어쩌라는 건가?’ 라는 생각이 먼저 들기는 한다. 다만, 어쨌든 사회운동론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넓게 일반적인 학문적 결과를 재현하는 관례 – 양적 연구의 통계치 제시뿐만 아니라 질적 연구에서도 ‘객관적이라고 여겨지는’ 방법과 연구 절차에 대해서 상당 부분 서술을 할애하고 또 연구결과를 제시함에 있어서도 ‘표준적으로 보이는’ 스타일을 따라해야 하는 것 - 가 오히려 조금 더 풍부한 지식의 생산을 막는 것이라고 한다면 여기에 대해서 의문을 던져봐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온전히 동의한다.



* 참고문헌

Becker, Howard. (1992). Causes, causes, conjunctures, stories, and imagery. in Ragin, C, C. and Becker, H, S. (eds.) What Is A Case?: Exploring the Foundations of Social Inquiry. Russell Sage Foundation.

Tilly, Charles. (1984). Big Structures, Large Processes, Hugh Comparisons. Cambridge Univ. Press. Ch. 1, 4, 9. 

Diani, Mario. (1992). The Concept of Social Movement. The Sociological Review, 40(1),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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