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컬레이터 관계론

앞 뒤 간격에 관하여

by 검정고구마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면 앞사람과 본능적으로 한 칸을 비워둔 후 올라선다. 앞사람과의 한 칸을 그 사람과 나의 공간으로 나누고 뒷사람과의 한 칸 역시 나와 그 사람의 공간으로 나눈다면, 결국 앞뒤로 반 칸씩 총 한 칸 의 공간이 나온다. 스스로 보호 받고 싶은 최소한의 영역이자, 다른 사람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최소한의 거리다.

이 거리를 지키지 않고 앞 사람의 바로 뒤 칸을 밟고 서면, 내 숨소리나 움직임이 앞 사람에게 전해질 것만 같다. 내 뒷사람이 그 공간을 지키지 않고 바로 뒤에 붙어 섰다면, 왠지 모를 불편한 기운에 한 칸을 더 올라서게 된다.

애매한 순간은 나는 앞 사람과의 거리를 지켜 한 칸을 무르고 올라 섰는데, 내 뒤에 그 공간을 지키지 않는 무뢰한이 올라 섰을 때다. 이럴때면 등 뒤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앞사람의 영역을 지켜줄 것인지, 아니면 앞 사람의 영역을 깨고 들어가 내 눈에 보이지 않는 등뒤의 안정감을 얻을 것인지 고민한다.

이러한 최소한의 거리가 파괴되는 곳도 있다. 만원 지하철. 그 공간이 침범당할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생계를 위해 만원 지하철에 오른다. 나를 점점 둘러 싸는 사람들의 밀도에 내 공간이 파괴되어 감을 느끼면서도 가능한 최소한의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애쓴다. 팔짱을 낀다거나 마주보는 이와 빗겨 서며 작게 저항해본다. 그러다 내 몸의 가슴과 등, 양팔이 모두 타인의 신체와 밀착되면 그 저항은 무의미해진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지하철의 출렁임에 몸을 맡긴채 (나는 비교적 큰 키 덕분에 나름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있을 거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그 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나의 공간을 보호하려는 것은 본능이라기보다는 학습된 욕구인 것 같았다. 사람 가득한 엘리베이터에 아이들과 탑승해보면, 그들이 얼마나 자신과 타인의 공간에 대해 무신경한지 알 수 있다. 튼을 누르는 일 따위에 행복을 느끼는 아이들은, 그 일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의 몸을 건드는 일의 부당함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다. 이제 막 걷는 재미를 알게 된 아기들이 아장아장 걷다가, 난생 처음 보는 사람의 다리를 붙잡고 까르르 웃을 때도 마찬가지다.

아니라고 한다. 신체 언어 전문가 토니야 레이맨의 저서 ‘몸짓의 심리학’ 에 따르면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고 보호하는 것이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이라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60~90 센티미터에 이르는 작은 공간을 갖고자 하는 욕구를 갖고 있다는 것.

그 아이들은 아마 자신의 욕구는 있지만 타인의 욕구를 존중하기에는 아직 어렸을 뿐이었나보다. 다음에 그럴 기미가 보인다면, 내가 먼저 아이들의 영역을 침범해봐야겠다. 저 이론이 맞다면 아이의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엿보이지 않을까.


오늘 누군가와 길을 걷고 에스컬레이터를 타다가 그가 나의 영역을 비집고 들어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불편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어느덧 그와 신뢰와 친근감을 쌓을 만큼 쌓았다고 느껴왔던 것 같다. 우리의 래포는 이제 서로 보호받고 싶은 최소한의 공간을 열어줄만큼 두터워졌나 싶어 따뜻하기까지 했다.

* 라포르(rapport), 래포, 라포 또는 라뽀는 사람과 사람사이에 생기는 상호신뢰관계를 말하는 심리학 용어라고 한다.


누군가의 공간에 들어가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하지만 누군가 나의 공간에 들어왔을 때 그것이 전혀 불편하지 않다면, 조심스레 그의 공간에 발을 들여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것이 서로에게 불편하지 않다면 우리는 더욱 풍성한 감정과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관계일 것이다.

이를 친구라 부른다. 삭막하고 치열한 회사에서도 신뢰와 우정은 꼬물꼬물 자리를 잡고 행복을 꽃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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