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를 넘기는 이틀의 기록

어느 부적응자의 새해맞이

by 검정고구마

화면에 깜빡이는 커서는 말이 없다. 그저 내가 한 글자 한 글자 누르는 대로 흰 화면에 춤을 춘다. 낱말을 만들고 문장을 뒤로 남기며 그 안에 내 마음을 꼭꼭 숨겨놓는다.


2019년의 마지막 날 무엇이라도 써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커서는 어찌할 줄을 모른다. 한 글자 한 글자, 한 단어 한 단어를 찍어 내려가다가도 다시 되돌아온다. 아련한 마음, 슬픈 마음, 좋은 마음 오락가락하며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모를 기분이다.


좋은 일들, 아쉬운 일들, 슬픈 일들. 그 일을 나눈 사람들. 한 해 나를 둘러쌌던 모든 관계와 감정들이 흰 화면에 회색 글씨로 쓰였다 지워지기를 반복한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시간. 그 속도는 가늠하기 어렵지만 무척 크다는 우주 공간을 생각하면 그리 짧은 시간은 아닌 것 같다. 지구가 무려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동안 나는 무엇을 했을까. 때로는 한가히, 때로는 바쁘게 하루를 보냈지만 내가 온전한 나로 살아온 날만 따진다면 지구는 태양 주위에서 얼마나 움직일 수 있었을까.


지구의 공전은 출발과 끝이 없는 연속된 움직임이다. 그 선에 1월 1일이라는 점을 찍은 것은 지극히 인간적이며 인공적이다. 그것을 축하하는 것 역시 그렇다. 그렇게 새해의 의미를 괜히 무색하게 만들어본다. 밤 열두 시가 됐고 사람들이 해가 바뀜을 축하하고 있었다. 창 밖으로 폭죽 터지는 소리들이 울리고 핸드폰에는 비슷한 메시지와 사진들이 도착한다.


그리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북적이는 사람들 속 왠지 나를 뺀 모든 사람들이 즐겁고 행복해 보인다. 물론 그럴 리 없다는 것은 알지만, 나는 홀로 점점 더 가라앉는 것 같다. 불행의 그림자는 행복들에 둘러싸였을 때 더욱 어둡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몇 살 때부터 시작된 것일까. 그래도 꾸역꾸역 살아왔건만 나는 지금 누구의 삶을 살고 있는가. 어느 노래 가사처럼 누군가 손을 잡고 잘 해왔다고 토닥여주면 왈칵 눈물이 날 것만 같고, 그 생각만으로도 떡국에 눈물이 떨어질 것 같다.


새해가 됐다. 그리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나도 행복한 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깜빡거리는 커서가 대신 써 내려가지만, 그것이 때로는 거침없는 커서의 움직임처럼 쉽게 이루어지면 좋으련만.


새해가 됐다고 푸른 잎이 만개하고 꽃잎이 축하하듯 휘날리고 따뜻한 기운이 세상 모든 곳에 스며들지 않듯. 여전히 길거리는 춥고 잿빛 하늘 아래 가로수는 삐쩍 마른 그대로이듯. 새해가 됐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Happy new year.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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