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론

허접하지만 솔직했던 이론에 대해

by 검정고구마

밤을 지새우며 술을 마시곤 했던 대학 시절.


그럴 때가 있었다. 사법고시라는 인생의 배팅을 두고, 혹은 진지했지만 설익었던 풋사랑에 대한 고민을 안주 삼아 동이 틀 때까지 술잔을 비우곤 했다. 그 고민의 해답이 보이지 않을 때면 어김없이 행복론이 등장하곤 했다.

그래서 너는 행복한가.

고민하는 친구, 선배, 후배에게 우리는 이 질문을 던졌다. 답은 오직 “예”와 “아니오” 에서 택해야 한다. 답이 “예”라면 우리는 그 길을 가라 했고, "아니오" 라면 그만하라며 위로했다.

그것을 행복론이라 불렀다. 행복하다면 하고, 불행하다면 하지 말라는 가장 간단한 명제 앞에 풀리지 않는 고민은 없었다. 물론 술이 깨면 대부분의 고민은 다시 시작되었다. 하지만 술잔을 비우는 시간만큼은 가슴이 후련해지도록 명쾌한 해답을 내려주곤 했다.

"행복해. 행복해. 그런데 말이야......" 혹은,
"행복하지 않은 것 같아. 하지만......"

이러한 부언이 이어지면 우리는 어김없이 대답을 끊어버렸다.

"아니. 그 뒤의 사정과 이유는 행복보다 중요하지 않아. 오로지 네가 행복한지가 가장 중요한 거야. 네가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을 하라고."


우리는 모두 취해있던 게 분명하다.

십 년이 훨씬 지난 술자리들 중 기억나는 것은 연애 문제로 고민을 하던 선배와의 대화였다. 동아리에 남자 후배와 여자 후배가 사랑을 했고 또 이별을 했다. 그런데 또 다른 남자 선배와 이 여자 후배가 눈이 맞아 버렸다. 모두가 친한 관계였기에 모두가 당황스러웠다. 당사자들 역시 어찌할 수 없는 사랑의 감정과 정체 모를 도의감 사이에 괴로웠을 터였다.

그 날 술자리의 주제는 사랑과 우정이었고 우리는 그 선배를 욕하며 술을 따랐다.

"선배.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그러면 안되지."
“그러게...... 면목이 없다.”

오지랖이었고 헤어진 후배 커플의 사연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착해 빠진 후배 녀석이 슬픔에 힘들어하다 군대를 갈 모습을 상상하며 그 선배를 탓했다.

하지만 취기가 오를수록, 선배의 사랑이 술잔 가득 담긴 소주만큼이나 투명하고 순수해 보였다. 그래. 그래도 사랑이다. 우리는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는 낭만주의에 금세 빠져들었다. 그리고 행복론의 질문을 꺼냈다.

"형. 그래서 행복해요?"
"행복하지. 그런데......
"아 됐고. 그래서 행복하냐고요?”
"응...... 행복해."
"그럼 됐어요. 우리 은주까지 눈물 나게 하지 말아요."
"응. 고맙다......"
"됐고, 잔 비우세요."

돌이켜보면 철없는 논리였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행복이 중요하다는 가장 본질적인 것을 쫓는 논리이기도 했다.

십 년이 훌쩍 지났다. 모두 어른이 되었고, 수없이 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가야 할 길을 택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그리고 또 선택의 순간을 마주하며 답을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선택에 걸리는 시간은 점점 더 길어져만 간다.

가고 싶은 방향을 알면서도 온갖 변수와 조건을 붙여 계산을 복잡하게 만든다. 혹은 답이 나올 것 같으면, 이런저런 이유를 끄집어내 스스로 계산을 방해한다. 최악은 간절히 하고 싶은 무언가를 포기하는 슬픈 선택을 하는 경우다.

그래서 행복하세요?

이 짧은 물음에 항상 “예”라는 답을 하며 살아왔을까? 그러기는 어렵다. 마음속 바라는 행복의 길과 세속적인 성공이 늘 부합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가고 싶은 행복의 길이, 가시밭길 혹은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갯속 길이라면 우리는 가끔 그 길을 택하지 않는다.

만약 이 행복론에 충실히 살았다면, 과연 우리는 지금 행복했을까. 각각의 선택들이 세속적인 성공으로 향하지 않았던들 여전히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그렇다면 행복론에 충실하지 않은 채 세속적인 성공과 타협해 살아온 우리는, 과연 지금 행복할까.

퇴근을 하고 샤워를 하고 거울을 보며 스스로에게 그 물음을 던져봐야겠다. 그래서 너는 지금 행복하냐고.

아 참. 다행히(?) 선배와 후배 커플은 백년가약을 맺고 이제는 아이를 키우며 우리 행복론이 옳았음을 보여주는 증표가 되어주고 있다. 물론 그 속은 아무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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