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 소리

혹은 꼰대짓

by 검정고구마

후배에게 쓴 소리를 했다.

요즘 들어 부쩍 눈에 띄게 농땡이를 피는 모습에 마음이 불편했고, 바로 잡아줘야겠다는 오지랖이 발동했다. 쓴 맛을 줄이기 위한 나름의 노력을 섞어봤지만 그 소리는 곱씹을 수록 쓴 맛이었을 것이다. (아닐 수도 있다.) 후배를 아낀다는 명분으로 건넨 소리를 그는 고맙다며 받아드렸다 .


하지만 그것은 폭력이었을지 모른다. 심리학자 '아들러'는 칭찬이란 상하관계의 수직성을 기반으로 한 긍정을 가장한 채찍이라고 얘기했다. 이 쓴 소리 역시 내가 선배였기에 가능한 일종의 폭력이었을지 모른다. 만약 나의 불만 혹은 걱정의 대상이 나의 선배 혹은 상급자였다면, 나는 더 많은 고민과 갈등 끝에 조심스런 시도를 했거나 아예 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 후배는 조언을 가장한 파렴치한 강요를 눈치채지 못하고 숨겨진 자그마한 진심, 즉 나의 걱정을 발견해준 것 같다. 물론 그의 속은 모를 일이지만.


내가 후배에게 갈 것을 요구한 바른길은, 다양성 혹은 주관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불편한 권유였을 수 있다. 그의 행동들 역시 성인으로 자라오며 형성된 자아와 가치판단 기준에서 나오는 행동들이었을 것이다. 나의 가치관을 보편적인 선과 교묘히 짜깁기해 조언 아닌 강권을 한 것은 아닐까.


조언의 폭력성을 감추기 위해 내가 했던 말은, 내게 소중한 이를 다른 누군가가 안 좋게 보는 것이 싫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싫음마저 나 혼자만의 불편함이었다. 그리고 후배가 조언을 받아드리던 아니던, 스스로 할 만큼 했다는 안도감을 느끼려는 치사한 시도가 아니었을까. 또는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말라는 항의였던 것은 아닐까.


무엇보다 쓴 소리를 했다는 사실이 쓰디쓰게 느껴진 이유는, 과연 나는 잘 하고 있는가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나는 매사에 최선을 다했는가. 나는 항상 정직했는가. 하루를 보내는 나의 모습을 마주앉아 지켜봤을 때, 나는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겠는가.


아니었다. '열심히 좀 해라' 라는 마음을 “알아서 잘 해” 라는 무심한 말로 대신 했던 것은, 열심히 하라는 말이 떳떳하지 못한 조언이었음을 이미 느껴서인지도 모른다. 후배에게 했던 쓴 소리는, 결국 내 스스로에게 내뱉어야 했을 쓴 소리였다.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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